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써니 Mar 01. 2021

엄마의 국시기가  코로나 별미가 되었다

엄마가 해 주던 국시기가 생각났다.

밥하기가 싫다. 돌밥의 시대를 살아가는 것이, 게으름이 질병처럼 몸 구석구석에 자리 잡은 나에게는 코로나보다 끼니를 챙긴다는 것이 재앙일 때가 있다. 나 혼자면 사과 한쪽, 과자 몇 조각과 커피면 족하다. 아이와 집에서 세끼를 먹는 시간이 일 년이 되었다. 학교 급식을 그리워하는 아이만큼 나도 학교급식이 그립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니면서 점심을 고민하지 않고 살았다. 그 편리함에 익숙했는데 다시 삼시 세 끼를 찍고 있다. 아침을 먹고 잠시 책이나 휴대폰을 뒤적뒤적하다 보면 금세 점심이다. 점심을 먹고 퇴근하는 남편이 너무 놀라지 않을 만큼만 청소, 설거지, 빨래를 하다 보면 저녁이다.


밥하기가 싫다. 오늘은 또 무슨 반찬? 개구리라도 한 마리 잡아다가 구워야 할판이다. 메뉴 정하기가 쉽지 않다. 갑자기 집에 고구마도 콩나물도 있다는 사실에 기뻤다. 간단하게 국시기나 해 먹어야겠다.


어릴 때 엄마가 해주던 국시기를 나이가 들어서는 먹어보지 못했다. 시골에서는 엄마가 자주 해줬는데 도시로 오면서는 엄마가 해주지 않았다는 것도 나중에야 알았다. 그러다가 다시 생각난 것은 임신 때였다. 임신하기 전에는 임신만 하면 삼시 세 끼를 고기만 먹을 생각이었다. 남편이 고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한 달에 한번 고기를 먹을까 말까 했던 결혼생활이었다. 그래서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때 매일 고기 먹어야지 생각했다. 그런데 입덧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임신 기간에 고기가 먹고 싶었던 날이 거의 없었다. 오히려 고기를 생각하는 것만으로 입맛이 달아날 때도 있었다. 막상 고기를 입에 한입 넣으면 맛있게 먹을 수 있었는데 고기를 생각하면 비위가 상했다.


내가 임신 기간에 가장 많이 생각하고 먹고 싶었던 것은 국수였다. 남편과 나는 산책을 하고 저녁으로 거의 매일 국수를 먹었다. 국수를 먹으면서 나는 어린 시절 5일장에서 먹은 국수가 그리웠다. 5일장이라고 시장에 가는 날은 많지 않았지만 시장 한쪽 구석에 자리 잡은 그 국숫집에서 딱 한번 먹어본 국수 맛을 나는 평생 잊지 못한다. 멸치육수에 국수와 부추를 얹어주는 국수 맛은 그 이후에는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는 완벽한 국수 맛이었다. 임신기간 동안 그 국수 한 번만 먹어봤으면 좋겠다 싶었지만 맛있다는 국숫집을 찾아가 봐도 그 맛은 아니었다.


그렇게 1일 1 국수를 하던 중에 어떤 계시처럼 떠올랐다. 국시기! 국시기가 먹고 싶었다. 엄마가 해 주던 그 국시기가. 입덧의 속성은 먹고 싶을 때 바로 먹어야 효과가 있으므로 나는 바로 엄마의 국시기를 만들어봤다. 엄마가 만들어주면 먹기만 했지 내가 만든 건 처음이었다.


멸치육수를 내고, 고구마와 김치를 넣고 끓였다. 나는 김치가 오래 삶아진 식감을 좋아해서 한참 끊였다. 그리고 콩나물을 넣는다. 콩나물을 처음부터 같이 끓이면 질겨질 것 같아서 나중에 넣었다. 그리고 콩나물이 익을 때까지 끓이고 밥과 참기름을 넣고 한소끔 끓으면 그릇에 담는다.


나는 고구마와 김치를 한 숟가락에 담아 한입 먹어봤다. 뭔가 부족한 듯 하지만 얼추 비슷한 맛이 났다. 남편은 국시기를 처음 먹어본다며 맛있게 먹었다. 남편의 고향인 전라도에는 국시기를 안 먹는지도 모르겠다.


코로나로 끼니 다가오는 공포에 시달리던 나는 가끔 국시기를 끓인다. 만들기도 간단해서 좋았다. 특히 날씨가 유난히 추운 날에 달콤한 고구마가 들어간 뜨끈한 국시기는 아들도 남편도 좋아하는 음식이 되었다.


며칠전 남편이 친정엄마 집으로 전복을 보냈다는 말에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 이서방이 전복 보냈대. 맛나게 먹어."

"어려븐데 뭐한닷꼬?. 시장에서 봐도 비쌀까 봐 물어보도 안 했다."

"엄마 먹고 싶다 하지 말고 사 먹어. 먹고 싶은 거 참으면 병나. 엄마! 나는 어제 국시기 해 먹었어. 엄마가 어릴 때 자주 해 줬잖아."

"국시기 맛있지. 외할머니는 국시기에 떡을 많이 넣어서 맛 좋게 끓이고 그랬다."

맞다. 떡이었다. 내가 뭔가 부족하다고 느낀 한 가지.

"아! 떡을 안 넣었네. 어쩐지. 그런데 엄마는 왜 국시기에 고구마를 넣었어?"

"그냥 있으니까 넣은 기지. 콩나물도 다 길라서 묵었다이가."

"맞아 생각나."


다른 집에서도 국시기에 고구마를 넣는지는 모르겠지만 엄마의 국시기에는 항상 고구마가 들어갔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엄마가 고구마를 넣어서 국시기를 끓여준 것은 봄이었다. 가을에 천장에 닿을 만큼 커다란 포대 2개에 고구마를 가득 수확했었다. 겨울에 구워도 먹고 삶아도 먹고, 생으로도 먹었지만 봄에는 고구마가 많이남았다. 따뜻한 방에 있는 고구마에서는 싹이 나오고 있었다. 엄마는 싹이 나서 버리게 될까 봐 봄에 그 고구마를 국시기에 넣었던 것 같다.


토요일에 오전 수업이 끝나고 한 시간 가까이 걸어서 집에 오면 배가 많이도 고팠다. 집에 오면 엄마가 국시기를 한 솥 끊여서 마루에 상을 차리고 있었다. 뜨끈한 김이 나는 국시기를 보면 더 허기가 밀려왔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코로나 때문인지 자주 그때가 생각이 난다. 토요일 오후의 봄햇살이 국시기 그릇에 담겼다. 지금 내 나이의 엄마가 끓여준 국시기 한 그릇에는 나처럼 돌밥이 무서운 엄마의 걱정도 함께 끓여냈다는 것을 이제야 나도 어렴풋이 알 것 같다. 달콤한 고구마와 매콤 짭짤한 김치 국물까지 맛있는 국시기 국물이 이제는 우리 가족의 코로나 별미가 되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명절이 사라졌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