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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Mar 29. 2021

엄마를 사랑하지만 전화는 곤란해.

오랜만에 지방에 사는 언니한테 전화가 왔다. 쉬는 날이라 그냥 전화했다는 말을 시작으로 코로나 얘기와 저녁 반찬 얘기, 이야기는 두서가 없다. 그러다가 내가 말했다.


"언니 엄마가 전화 좀 하래?"

"일하니까 잘 안 하게 되네. 너는 엄마한테 전화 자주 해?"


순간 허를 찔린 기분이다. 나는 전화를 거의 하지 않는다. 엄마한테도 언니들한테도.


"음.. 전화를 하지는 않지만 최선을 다해 열심히 받고 있지."

"그래 고생이 많다."


언니의 목소리에 약간의 비아냥이 실려 있다. 나도 내가 어이없는 말을 했다는 것을 알지만 다시 한번 나의 노력에 대해 언니에게 어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언니야! 내가 이런 말까지는 안 하려고 했는데 내가 전화를 안 받던 시절을 생각해봐. 지금은 꼬박꼬박 전화를 받아주잖아. 사람이 변하려고 노력하면 기특하게 봐줘야지 더 잘하지 못한다고 기죽이면 안 돼. 이제는 전화를 하라고까지 하는 건 너무 심한 거 아니야?"

"맞다. 니 잘났다."


언니는 장난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전화를 걸거나 받는 것을 두려워한다. 여기에 더해서 문자나 카톡에 답을 하는 일도 내게는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전화벨이 울리면 나는 전화를 건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하기도 전에 등줄기가 서늘해진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 나는 전화가 울리면 전화기를 이불이나 쿠션으로 덮어서 벨이 멈추기를 기다렸다.


아이가 태어난 후에 남편이 내가 계속 전화를 안 받자 화를 냈다. 물론 내가 전화를 안 받아서 욕을 먹거나 나한테 화를 내는 사람들은 그 전에도 아주 많았다. 나도 그러지 않으려고 애써봤지만 쉽지 않았다. 그런데 아이가 태어나고 난 후에 남편이 심각하게 말했다. 일하다가 전화를 했는데 전화를 안 받으면 아이한테 무슨 일이 있는 것은 아닌지 별의별 상상이 돼서 일이 손에 안 잡힌다고. 예전에는 그냥 답답한 정도지만 지금은 걱정이 돼서 미치겠다고 했다. 제발 내 전화는 꼭 받아줘.라고 하는데 나도 더 버티기 힘들었다.


그렇게 남편의 전화를 받기 시작하고, 이제는 나이가 들어 더 걱정시키기도 죄송하고 먼저 전화를 하지는 못할 망정 받기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엄마의 전화까지 허용했다. 물론 지금도 나는 전화벨이 울리면 등골이 서늘해진다. 전화를 안 받고 싶다는 생각을 떨쳐내고 아무렇지 않다고 전화를 받는 것뿐이라고 나를 설득한다.


그런 내가 누군가에게 전화를 한다는 것은 전화를 받는 것보다 더 많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아이가 아파서 결석을 하거나 다른 일 때문에 학교에 전화를 해야 할 때는 남편에게 전화하라고 한다. 남편은 여전히 전화에 자유롭지 못한 나에게 짧은 한숨을 보낸다. 그것은 비난일지도 모르고, 나에 대한 안쓰러움일지도 모른다.


내가 이렇게 전화를 무서워하게 된 것은 22살쯤이었던 것 같다. 정확하게 무슨 일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쯤에 나는 내가 전화를 전혀 안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모든 것이 서툴던 스무 살을 지나면서 사람 관계에서 상처를 받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같은 학원에서 공부하던 언니가 어쩜 전화 한번 안 하냐?라고 묻고 난 후부터였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날부터 나는 전화를 받는 것조차 하기 어렵게 됐다.


전화를 해도 받지 않고 부재중 전화에도 답을 하지 않는 나에게 사람들은 섭섭해했고, 엄마와 언니들은 화를 내기도 했다. 전화 때문에 욕먹은 것만 모아도 책 한 권 분량은 될 것이다. 결혼 전에 엄마랑 살 때도 퇴근해서 집에 올 때까지 전화 한 통 안 하고 전화를 해도 받지 않으니 엄마는 항상 나 때문에 애가 탔다.


결혼해서 멀리 살면서 전화를 안 받는 나 때문에 엄마 머릿속에서는 전쟁이 날 때가 많았다고 한다. 부부싸움을 한 것은 아닌지, 몸이 아파서 병원에 있는 것은 아닌지 눈에 안 보이니까 더 불안하다고 했다. 불효인지 알지만 잘 고쳐지지 않아서 나 역시도 괴로웠다.


엄마가 나이가 일흔 중반이 되고 보니 이런 불효를 멈춰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한테 하루에 한 번 전화를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매일 오전 10시에 알람을 맞췄다. 알람이 울리면 전화를 하기로 한 것인데 첫날만 전화를 하고 다음날부터는 알람이 울리면 끄고, 나중에 해야지 미루다가 하루를 넘기고 말았다. 결국 나는 전화를 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기로 했다. 그래도 최소한 전화를 잘 받아야겠다고 결심했다. 엄마가 전화를 하면 이제는 꼭 받는다. 등골이 서늘해지고, 머릿속에서는 받기 싫다는 생각에 짜증이 나기도 하지만 이제는 엄마의 전화를 받는다. 그리고 언니들의 전화도 받기 시작했다.


엄마를 생각하면 항상 죄송하고 고마워서 엄마에게 전화를 하지 못하는 이유를 말하지 못했다. 전화가 무섭다는 말을 차마 할 수 없었다. 아마 엄마는 말할 것이다.


"네가 뭐가 못나서 전화를 무서워해. 내가 너를 얼마나 고생해서 그렇게 번듯하게 키웠는데 뭐가 못나서."


엄마가 얼마나 고생해서 나를 키웠는지 알고 있기 때문에 차마  말할 수가 없다.


"엄마 나는 세상이 무섭고 사람이 무섭고 나를 세상과 사람과 연결하는 전화는 더 무서워."


힘들게 나를 키워준 엄마의 인생을 배신하는 것 같아서 차마 그 말을 못 했다. 나는 항상 엄마를 만나면 허세를 떤다.


"엄마 이서방이 나 안 만났으면 어쩔뻔했어. 나처럼 잘하는 와이프 어디서 만나?"


기죽지 않고 사는 멋진 딸로 키워줘서 고맙다는 마음을 이렇게라도 표현하는 것이다. 하지만 엄마가 없는 곳에서는 나는 사실 아무것도 아니고, 약하고 겁에 질려 있다. 전화 따위와도 싸워서 이기지 못하는 딸로 자란 것이 엄마한테 항상 미안하다. 더 당당한 딸로, 더 멋진 사람으로 살아가지 못하는 것이 항상 죄스럽다. 그래서 엄마가 전화를 하면 여전히 두렵지만 이제는 피하지 않고 받는다.


엄마를 세상 누구보다 사랑하지만 여전히 전화는 두렵다. 다행히 조금씩 전화 공포증보다 엄마에 대한 사랑이 강해지고 있는 것 같아서 언젠가는 내가 먼저 엄마한테 당당하게 매일 전화를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고 있다. 그때까지는 전화벨이 울리면 전화기를 쿠션 밑에 넣어두지 않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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