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 Wien
20대가 되어서, 혼자 찾아갔던 첫 번째 도시. 클림트의 '키스'가 있고 '비포 선라이즈'의 배경이 되었다는 이유로 무조건 찾아갔던 곳. 하지만 첫인상은 그렇게 따뜻하지만은 않았다.
모든 게 어수룩했던 20대 초반, 정말 아무것도 모르면 용감하다는 게 나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유럽의 바닥길이 얼마나 험한지 모른 채로 대형 캐리어를 선택해 끌고 다녔고(이후 여행은 전부 배낭), 추위가 나를 괴롭힐지, 혹은 뒷골목이 얼마나 무서운 지조차 몰랐다. 그렇게 도착한 한밤중의 빈의 모습은 낭만보다는 한기로 가득 찬 도시였다.
"Give. um...... Your. um...... Handphone!"
낯선 나라에서 가장 처음 써본 언어가 콩글리시라니. 밤 1시에 열리지 않는 숙소 문 앞에서, 추위에 떨던 내가 마지막으로 택한 경찰을 붙잡고 핸드폰을 빌린다는 계획은, 내 언어적 한계뿐만이 아니라, 상대의 언어적 한계에 의하여 실패로 돌아갔다. 그리고 새벽 3시가 다 되어 숙소에 들어갈 때까지, 문 앞에서 추위에 떨며, 골목을 배회하는 집시들이 나에게 다가오지 않기만을 바랐던 그날 밤의 기억은, 안 그래도 무모했던 나의 여행에 기름을 붓는 일이 되었다.
그로부터 빈에 머물렀던 1주일간은, 무서울 게 없으니 모든 걸 즐길 수 있는 시간이었다. 5시간을 기다려 3시간을 서서 본 오페라도, 클림트의 키스 앞에서 대성통곡을 했던 시간도, 훈데르트 바서의 건축물 앞에서 느꼈던 경이도, 에단 호크와 줄리 델피가 걸었던 도나우 운하에서의 산책도 전부 그 차가운 밤의 기억이 바탕이 되어 할 수 있었던 일이었다.
다음 마을인 할슈타트로 떠나기 전까지, 내가 원했던, 그리고 기대하지 못했던 다양한 일들로 시간을 가득 채웠다. 빈의 첫날밤이, 빈을 즐길 수 있는 통행료였던 것처럼,
처음 여행한 첫 도시의 기억이,
이후에 벌어지는 여행들의 지침이 되어 지금까지 나를 이끌고 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다시 방문한 빈은 처음 방문했을 때와 달랐다. 빈이 바뀐 것은 없었지만, 그전 몇 년 동안 방문한 수백 개의 도시들로 인하여 내가 바뀌어 있었기에, 첫 혼자 여행했을 때의 짜릿함과 우연을 기대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돌아갔던 그곳에서, 20대 초반의 나를 만나 볼 수 있었고, 그 기억을 곱씹을 수 있었다.
그렇게 그곳은 돌아가면 어수룩했던 나를 다시 볼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생긴 도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