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케시 - Marrakesh
6시가 되기 무섭게, 회사에서 가방 메고 출발한 지 42시간 만에 도착한 마라케시는, 북아프리카의 분위기를 한 번에 알게 만드는 곳이다. 사하라를 들어가기 위한 관문 정도로 생각했던 나에게 있어선, 거대한 자연을 만나기 전(물론 마라케시부터 사하라 외곽의 메르주가까지는 14시간 이상이 걸렸다) 신의 땅(베르베르어로 마라케시의 뜻)을 경험하게 만들어준 도시였달까.
여행은 피곤에 절어있는 사람도 움직이게 만들고, 42시간이라는 이동시간에도 저녁은 시장에서 먹겠다는 의지로 인하여 자마 알 프나(Jamaa al-Fna) 광장이 내려다보이는 가게에서, 타진(Tajine)을 시켜 혼자 맥주를 마셨다. 더운 지방일수록 낮보다 밤이 더 활기찬 느낌이고, 자마 알 프나 광장도 그런 곳이다. 오랜만의 여행에 대한 흥분과 피곤함과 북적이는 사람들로 인한 몽롱함을 느끼고 있을 때, 옆의 학생들이 말을 걸어왔다.
Where are you from?
어디서 왔니?라는 말. 여행자들끼리는 하지 않을 수 없는 말. 그래서 가끔은 너무 귀찮게 느껴지는 그 말을 시발점으로 프랑스에서 온 여행객들과 이야기가 시작되었고, 그들의 입에서 마조렐 정원에 대한 감상을 들을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프랑스 학생들이었기에 당연히 가장 우선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는 이름들이 자크 마조렐(Jacques Majorelle)과 입 생 로랑(Yves Saint Laurent)이었을 텐데, 그 당시에는 그들의 이야기가 흥미로웠고, 다음 날 마조렐 정원(Jardin Majorelle)으로 향했다.
여행 계획을 세워두고 움직이는 편이 아니다. 가서 무언 갈하고 싶다는 큰 흐름만 있을 뿐, 여행지의 정보를 엄청나게 찾아보는 편도 아니다(혼자 여행할 때는). 그래서 마조렐 정원에 대한 사실도, 거기에 존재한다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지, 필수적으로 방문해야겠다는 장소도 아니었다. 정원으로 들어가는 문 앞에 늘어선 수백 명의 관광객들을 보고, 땡볕에서 2시간을 기다리는 게 의미가 있을까라는 생각에 발길을 돌릴까도 했었지만, 그 후의 계획조차 없었기에 더위를 참으며 줄을 섰었다.
마조렐 블루.
그 색으로 덮혀진 건물(건축의 형태나 공간의 의미보다는 그 색 자체)과 어울리는 전 세계에서 들어온 선인장과 대나무, 식물들을 보지 못했다면, 마라케시에 대한 글은 쓰지 못했을 수도 있다. 2시간의 더위와 함께한 기다림은, 환희와 감동의 몇 시간으로 돌아왔다. 발길을 되돌리지 않은 스스로를 칭찬하면서, 마조렐 정원을 돌고, 또 돌아서 보았다.
아름다운 것은 양식을 규정할 필요가 없다. 어떤 형식의 정원인지 파악하는 일도, 내가 그전에 본 공간과 비교하는 일도, 전부 무의미한 곳들이 있는데, 마조렐 정원도 그중 하나다. 붉은 토양과, 초록의 선인장과, 푸른 벽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나에게 아름다움을 주었다. 입 생 로랑이 그 정원을 사랑한 이유에 대해서 공감했다. 마조렐이 바라본 하늘이 어떤 색이었을지도 알겠다.
그래서 나에게 있어 그곳은 아름답다는 단어로 남은 곳이다.
모로코의 도시를 이야기하면서, 프랑스 인들이 주가 되는 이야기가 담긴 마조렐 정원을 가장 먼저 이야기하는 것은 비극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프랑스인들이 사랑했던 곳은, '신의 땅'이라 불리는 마라케시가 아니었으면 만들어지지 않았을 곳이기도 하다. 그들이 남아있지 않은 이 시대에도, 그곳을 이어나가고 가꾸는 사람들은 마라케시 시민들이기에, 마조렐 정원은 식민시대의 기억이기보다는, 모로코가 아니었음 존재하지 않았을 아름다운 장소라고 받아들여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