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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nto Apr 25. 2023

착하다는 건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함에서 비롯된다

[사람 #05] S의 이야기

I는 착하다는 말을 싫어한다.



착함의 기준이 무엇인지도 헷갈리고, 누군가가 말하는 착함은 오히려 멍청함을 내포하고 있다고 보기에, I의 주변에는 좋은 사람은 있어도, 착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S의 첫인상도 마찬가지였다. 보편론적인 표현에서 착하다고 할 사람. 싸우는 것을 싫어하고, 착실하게 학과생활을 유지하며, 누구에게나 만만한 사람. 새벽의 스튜디오에서 S와 I가 첫마디를 나누었을 때, 이 사람은 너무 착하기에 오히려 친해지기 쉽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I는 S보다 한 학기 먼저 졸업했고, 머릿속에서 그를 지웠다.


 

몇 달 후 I가 취업했을 때, 그의 소장이 S에 대해서 물었다. 그 다음 날 I는 S와 술을 마셨고, 그로부터 다시 네 달 후, 둘은 같은 회사에서 2년 동안 함께 근무하게 된다.


 

몇 달 차이는 있었지만 그들은 입사동기였다. 그리고 I는 S의 착함을 이용해 그에게 많은 것을 의지했다. S가 진행하는 프로젝트를 사랑했으며, 그가 그리는 선을 좋아했다. 둘은 너무나도 달라서 마찰은 있었지만, 보통은 S가 틀린 게 아니라 I가 틀린 것이었기에 I의 사과로 일은 마무리되었다. I가 이사를 한 후에는 둘의 퇴근길도 같아져서, 추운 겨울날의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오뎅바에서 함께 마시는 따뜻한 정종을 I는 항상 기다렸다.


 

S는 고집이 있다. 이건 착한 것과는 관계가 없다. S는 자신의 시간을 지킬 줄 안다. 이것도 착한 것과는 다른 것이다. 그럼에도 S가 착하게 느껴지는 이유를 I는 그가 일을 진행할 때서야 알 수 있었다.


 

S는 세상의 모든 것을 따뜻하게 바라볼 줄 알았다.



지나가는 어떤 것이라도 관찰했다. 모퉁이의 잡초도 쭈그려 앉아 쳐다보고, 이름을 공부하고, 그에 대하여 기억했다. 시를 좋아해서 낭독 회에도 나가고, 누군가에게 자신이 읽은 구절을 추천해 주기도 한다. 그리고 그 따뜻한 시선을 가지고 세상의 공간을 다루는 일을 했다. 과거를, 기억을 공간에 녹여내었으며, 사람들을 만나고 거기서 나온 이야기들로 좋은 선을 그렸다. I에게 있어서 S의 시선이, 착함을 대변해 주는 하나의 행위처럼 받아들여졌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착함이란 정의는 모두 다르다.



I 역시 그 기준을 만들지 못하여 세상을 삐뚤게 살아가고 있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착함이라고 정의 내리는 것이 아닌, 느끼게 해주는 주변 사람이 있다면, 비록 그 정의가 모호할지라도 세상을 조금 더 착하게 살아가고 싶다고 생각이 들 수 있다. I가 그랬으니까.


 

I가 퇴사를 하고 가장 아쉬워하는 것은, S를 만날 시간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비록 몇 달에 한 번은 전에 가던 오뎅바에서 여전히 정종 한잔을 함께 마시지만, 같은 회사라는 전쟁터에서 함께 싸울 때와는 확실히 거리가 멀어졌기 때문이다.


 

S와 I가 다시 함께 일할 기회가 주어질까? 그건 S가 아니라 I의 능력에 달렸다. S는 이미 그의 능력을 충분히 인정받았고, 아직 공부하고 싶은 것도 많으며, 앞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는 것을 증명해 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I가 S와 함께 일하고 싶다면, I가 성장해야만 한다. 말뿐만이 아닌 그가 쌓아온 일들로 S에게 인정받아야 한다. S를 받아들일 곳은 수없이 많고, I는 그를 꼬셔야 하는 상황이니까.


 

가끔 지나가다 나무로 가득 찬 외부 공간을 본다면, S를 의심해 봐라. S는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사람들을 위하여 공간을 만들어 낼 것이다.



우리가 앉아 있는 벤치가,
어쩌면 우리에게 휴식을 주고 싶은 S의 배려일지 모른다.


 


PS. 당신에게는 말을 놓질 못하겠어요. 당신의 시선 때문일까요. 4살 어린 동생임에도 전 왠지 계속해서 존댓말을 써야 할 것 같아요. 물론 당신은 그에 개의치 않은 채 저를 존중해 주겠죠. 처음 우리가 대화를 나눴던 밤을 기억하나요? 당신의 스케치를 보면서 전 이런저런 훈수를 뒀었어요. 하지만 당신은 저에게 웃어 보일 뿐이었죠. 그 웃음 때문에 계속해서 우리가 관계를 지속해 올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해 봐요. 당신의 웃음이, 그리고 시선이 계속해서 따뜻하길 조심스럽게 바라봅니다.



Zinaida Serebriakova, 'Eugene',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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