찻집 'D'에서 열리는 차 수업에 처음 참여하는 날은 공교롭게도 크리스마스였다. 가족들도 지방에 있고, 그 외에 어차피 함께 할 사람도 없었기에, 찻집에서 차를 마시면서 따뜻함을 느끼는 게 더 나을 거라 생각해서 홍차 클래스를 예약했다.
'D'에 도착해서야 크리스마스라는 실감이 났다. 책상에 놓인 붉은 양초와 빨간색 카드, 그리고 공간의 한쪽 반짝이는 전구가 크리스마스임을 증명해 주고 있었다. 크리스마스이브인지 당일인지, 백수이기에 그날이 빨간 날인지도 헷갈리던 나에게 이런 감각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은 중요했다.
"쌤! 왜 크리스마스에 수업을 여셨어요?"
"특별히 의미가 있는 건 아니었고, 보통 수업을 여는 월말 토요일이어서 연거예요."
라는 굉장히 심플한 대답을 해 주신 후, 4명의 수강생에게 준비된 차를 보여주셨다. 나열된 7개의 차에 태그(tag)를 달아주시며 설명도 곁들이셨다.
"기문, 정산소종 등 중국의 홍차부터, 인도의 다즐링과 유럽의 홍차, 그리고 이번에는 조금 독특하게 아프리카의 홍차도 준비해 봤어요. 그럼 시작하기 전에, 단팥죽으로 속을 덥힐까요?"
언제나 차를 마시기 전에 속을 보호하라고 든든한 다식을 준비해 주신다.
"각자의 특색이 있겠지만, 보통 다식의 경우는 양을 적게 준비합니다. 속을 보호하거나, 입을 정리하는 정도? 그런데 저의 정서에는 그게 아쉬울 때가 있고 맞지가 않더라고요. 특히 크리스마스고 하니 홍차와 어울리는 티푸드를 여러 개 준비해 봤어요"
전에 한번 언급한 적이 있지만, 쌤의 간단하게는 간단하게 가 아니다. 반대로 여러 개라면? 그건 여기서 끼니도 때울 수 있을 정도의 양이다(지금도 다회에 참여하는 날이면, 점심을 먹지 않는다. 쌤이 먹을걸 워낙 많이 준비해 주시니까).
"그럼 시작해 볼까요? 처음 몇 개는 제가 우리는 걸로 하고, 이따가 나머지는 하나씩 맡아서 직접 우려 보는 걸로 해요."
"세계 3대 홍차 중 하나라고 불리는 기문이에요. 가장 베이직한 홍차라고 할까요? 유럽에도 많이 알려져 있고, 한국에서도 많이 즐기는 홍차 중 하나입니다. 등급이 다양한데, 오늘 준비한 차는 최상품은 아니지만 맛이 괜찮을 거예요."
물을 끓이고, 차를 우리는 시간. 그 시간이 좋다. 무언가 하나에 집중하고 있는 기분.
"과거부터 유럽에도 많이 수출된 차예요. 국빈을 대접할 때도 많이 내놓기도 하고요. 기문이란 지역에서 나와서 이름 역시 지역을 따라간 경우예요."
선명한 빨간색의 차가 하얀 잔에 담긴다. 그리고 올라오는 약한 연기 향. 아... 훈연 향. 그 속에 단향이 닮겨 있다. 혹자가 표현하는 과일향이, 이 향인가 싶었다.
"마셔봐요."
편안하게 입에 올린다. 거슬림이 없다. 차향에서 나오는 약한 훈연 향이 미미하게 담겨 있는 정도고, 전체적인 맛의 밸런스가 딱 잡혀있다. 뭔가... 편하다. 홍차를 떠올릴 때 이 맛을 떠올리면 기준으로 삼을 수 있을 것 같은 맛이 사람을 편안하게 해 준다.
그 후 훈연 향이 훨씬 강한 정산소종부터(개인적으로는 기문보다 조금 더 선호한다. 특색 있는 걸 조금 더 좋아해서일까), 각자가 내려서 서로에게 나눠준 유럽 홍차, 다즐링, 그리고 독특하다는 탄자니아 홍차까지. 그리고 음식에 대해서 수다를 떤다.
"정산소종을 먹다 보면 연어나, 샌드위치 같은 게 생각나요."
"그래서 오이 계란 샌드위치를 준비했어요."
"탄자니아 홍차를 마시다 보니, 이슬람 음식이 떠오르는데요?"
"후무스 한번 먹어봐요."
"................... 오늘 홍차 수업 맞죠?"
이거... 먹는 거에 모두 진심인 사람들이다. 다우들과 함께, 어떤 홍차에 어떤 음식이 어울리는지 이야기하다 보면, 전 세계를 여행하는 것 같았다. 거기에 머물지 않고 나오는 다식들은 그 기분을 몇 배로 만들어준다. 그 와중에 코끝에 걸리는 빵 굽는 냄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