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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nto Mar 10. 2022

#2. 취향이 담긴 공간

'청태전'을 마시며 쌀쌀한 날, 찻집에서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지금은 백수지만, 원래 공간을 디자인하는 일을 했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어떤 공간을 좋아하는지 묻는다. 한편으로, 내 직업을 알았던 사람들은 나에게 본인들의 공간을 보여주는 걸 걱정하기도 한다. 알량한 전문가란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별로라고 말하면 상처받을 수 있기에, 내가 해 줄 수 있는 단 하나의 이야기는, 나는 그 사람의 취향이 담긴 공간이 가장 사랑스럽고, 좋아한다는 것.


처음 찻집 'D'를 만나고 이주일 후, 쌤이 말하신 "자주 보자."라는 그 한마디에 다시 방문했다. 책상의 꽃이 바뀌어 있었고, 접시 역시 날씨에 맞게 바뀌어 있었다.


오늘은 다회이니,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수다 떨면서 즐겨요.


나 말고, 쌤을 제외한 다우는 한 명이 더 있었다. 특별한 자기소개 없이 이어나가는 일상의 이야기들이 진행되는 동안, 옆에서 물이 끓기 시작했다.


"오늘은 청태전으로 시작할게요. 장흥에서 나오고 있는, 한국 발효차의 대표라고 할 수 있어요. 생긴 모양 때문에 돈차, 떡차라고도 불린답니다. 푸른 이끼가 낀 엽전. 처마 밑에 주렁주렁 매달린 청태전을 보면, 정말 이름을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쌤은 동그랗게 빚어진 차를 불에 구운 후, 유리 주전자에 넣으시고 다른 재료들을 약간 더 넣으셨다.


"그냥 마셔도 좋지만, 오늘은 제 나름대로 블렌딩 해서 내놓을게요. 쌀쌀한 날씨에 더 어울리도록 해봤어요."


주전자에서 찻잔으로, 그리고 내 앞으로 온 차로부터 구수한 냄새와 생강향, 그리고 약간은 달달한 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 그리고 한 모금. 한겨울의 날씨와 정말 잘 어울리는 맛이다. 감기 기운이 약간 있었다면, 쑥 내려가게 만들 것 같은 그런 맛. 오히려, 얼굴에 살짝 찬 바람을 맞으면 좋겠다고 생각되는 맛.


"그러니 코로나, 감기 걸리지 말고 이번 겨울 잘 보내길 바라요."


따뜻하다. 차도 따뜻하고, 쌤의 말도 따뜻하고, 공간도 따뜻하게 느껴진다. 테이블에 드러나 있는 나무 나이테의 물결도, 따뜻하게 일렁인다.


"쌤, 이 공간하고 너무 잘 어울리세요."


란 내 말에, 옆의 다우도 고개를 끄덕였고, 한참 쌤의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어떤 공간을 좋아하는지, 혹은 어디서 보았던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서로 간에 한참 이야기를 나누던 와중,


"그런데, 공간 관련 일을 하셨나 봐요?"


라는 다우의 질문에, 지금은 그 일을 하지 않지만, 전공이 그쪽이었고 한 때는 그 일을 했었다는 대답을 했고,


"저도요!! 저 이번에 입사해서 공간을 설계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세상이 좁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닫는다. 그리고 우리는 쌤과 함께 학업 중에 있었던 이런저런 에피소드와 업무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신입으로써 겪고 있는 고민들과, 내가 일을 그만둔 이야기들을 공간을 바탕으로 수다를 떨었다.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와중에도 호우지차와 밀크티를 마셨고, 유자화채와 다마코산도, 슈톨렌을 곁들였다.


개인의 취향에 대한 이야기들. 어떤 공간을 좋아하는지, 어떤 이야기들을 좋아하는지 끊임없이 말을 하면서 쌤의 취향으로 가득 찬 그 공간에서 어느 토요일 오후 시간을 보냈다.

사진들은 원작자의 허락을 받고 이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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