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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nto Mar 14. 2022

#4. 거품을 내면 팔이 아프다

바쁘게 움직이는 손과 단숨에 들이켜는 '말차'

1월의 둘째 주까지는 쌤이 명상 수련으로 지방에 내려가는 일정이 있으셔서, 찻집 'D'를 방문하지 못했다. 그리고 나 역시 아는 사람이 불러 제주도에 잠시 머물렀다. 이리저리 먹으러 다니고, 개인적으로 작업하고 있는 일들로 인하여 결코 평온하다고는 볼 수 없는 시간일 때, 쌤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말차 수업 있는데, 오시겠어요?"


쌤의 인스타그램을 확인한다는 것을 까먹고 있었다! 쌤은 매달 초, 그 달에 있을 있을 일정을 SNS에 올리시고 관련된 예약을 받으신다. 그때까지만 해도 SNS를 전혀 하지 않았기에, 일정이 올라오는 것을 비회원으로 확인했어야 했는데, 제주도의 먹거리에 정신이 팔려 까먹은 것이다(지금도 인스타그램은 다른 용도로 쓰이고 있어서 찻집 'D'의 일정 알람을 받지는 못한다. 이래나 저래나 아날로그 한 사람이다).


"참여하겠습니다. 이번 주에는 서울로 올라가요!"


3주 만에 방문한 'D'의 온기는, 1월 영하의 날씨에도 변하지 않았다. 탁자 위에 개인별로 올려진 다완들과 나무로 만들어진 뭔가 희한한 물건의 모습들도, 한쪽에서 끓고 있는 솥(?)도 평소와 달랐지만, 'D'의 온기를 올려줄 뿐 어색하지 않았다. 쌤의 왼팔을 감싸고 있는 흰색 물체만 빼고.


"쌤?! 어쩌다가 그러셨어요?"


연초부터 넘어졌어요. 액땜 제대로 했네요.


골절상이라고 웃으시며 이야기하시는데, 웃는 게 웃는 게 아니다. 우리네 어머니들은 다치고 나서 왜 다 똑같은 반응이신지. 걱정하지 말라며, 충분히 혼자 준비할 수 있다고 이리저리 움직이시는 쌤의 모습에 좌불안석의 마음인 건 다우들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도와드릴 게 없냐며 묻는 다우들과 나에게,


"필요하면 요청할 테니 다들 앉아 계셔요."


라며, 이것저것 혼자 준비하신 뒤 쌤은 자리에 앉으셨다.


"아무래도 팔이 편하지 않아서, 다식을 많이 준비하지 못했어요. 부족할 것 같아, 급하게 우키시마(일본식 화과자)를 만들고 단팥죽을 쑤었는데, 그 와중에 단팥죽은 태워먹어서... 급하게 호박죽으로 대체했습니다. 혹시 호박죽에서 팥의 탄 향이 나도 이해해 주세요. 에휴... 정말 정신을 어디에 두고 사는 건지."


아이고야... 이제는 말이 더 나오질 않는다. 아들딸들한테는 몸 챙기라며 잔소리를 그리 하시면서, 본인 몸들은 챙기시지 않는다. 쫌 움직이지 마시라는 나와 다우의 잔소리가 몇 차례 반복된 후 말차에 대한 쌤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일본 말차 수업이기는 하지만, 다른 차들도 함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해요. 현미녹차, 교쿠로(옥로-玉露)차, 호지차, 말차를 준비했어요. 말차의 경우는 실습도 함께 진행할게요."


가볍게(?) 호박죽으로 속을 채운 후, 고소한 현미녹차부터 마시기 시작.


"보통 다도(茶道) 수업을 듣는다고 한다면, 일본 차문화와 관련된 수업을 뜻합니다. 차와 관련된 의식을 한국은 예절을 중시하기에 다례(茶禮)라고 하고, 중국은 차를 예술의 시점으로 봐서 다예(茶藝)로 표현해요. 일본의 다도(茶道)는 말마따나 도를 닦는 정신수양의 일종으로 바라보고요."


그리고 계속된 일본의 차 문화의 역사와 그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계속된다. 일본 다실의 모습과 정원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는데, 대학생활 때 배웠던 일본식 조경에 대한 내용과 맞물려, 몇 가지 퍼즐이 맞춰지는 기분이었다. 단순히 차의 이야기뿐만이 아니라, 역사와 문화를 함께 들을 수 있는 게 차 수업의 재미다.


교쿠로차와 호지차의 설명까지 끝나고, 쌤은 체에 거른 말차가루를 준비하셨다.


"이제 말차를 직접 격불(擊拂) 해 보도록 할게요."


새로운 단어들과 기구들이 많았다. 기억력이 좋은 편이 아니라서, 이걸 다 기억할 수 있을지 조차 모르겠다는 걱정이 머릿속에서 빙글빙글.


"차를 덜어 낼 때 쓰는 이 가느다란 숟가락이 달린 막대기 같은 기구를 차시(匙-숟가락 시자를 쓴다)라고 합니다. 말차가루를 차시로 2~3번 떠서 다완에 덜어주세요. 그리고 따뜻한 물을 넣어줍니다. 보여드리는 게 빠르니 잠시 보호대를 빼겠습니다."


아... 네... 보여주신다는 말에, 보호대를 계속하고 계시라는 말은 하지 못하는 우리들.


"옆에 놓인 빗자루 같이 생긴 대나무로 만들어진 기구를 차선(茶筅)이라고 합니다. 이걸로 거품을 내줄 거예요. 다완의 바닥을 긁는 게 아니라, 표면을 휘저어준다고 생각하세요."


빠르게 움직이는 선생님의 오른손. 아무리 다친 왼손은 다완을 잡는데만 이용한다고 하더라도, 언제나 그렇듯 우아한 손놀림이다. 큰 소리는 나지 않지만, 빠르고, 경쾌하다. 그리고 거침이 없다.


그리고 이렇게 거품이 표면을 채우면, 한 번에 들이켭니다.


다완을 양손으로 잡고 드신 후, 단숨에 말차를 마시는 선생님.


"티룸에 가서 보면 가끔 안타까울 때가, 말차는 격불 후 짧은 시간 내로 마셔야 맛있는데, 옆에 두고 천천히 드시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자신만의 방식으로, 다양한 방법으로 마시는 건 괜찮지만 말차의 경우는 오래 두면 맛이 현저하게 떨어지다 보니, 그 모습을 보면 조금 아쉬워요. 이왕 마실 거 맛있게 마시는 게 좋겠죠?"


다완에 남은 가루까지, 물을 한번 더 부어 마시신 후 다시 보호대를 채우셨다.


"자! 이제 모두 다 같이 해보도록 해요."


항상 보기에는 쉬워 보인다. 그리고 역시 해보면 어렵다. 차시가 떨리는 걸 보면서 다완에 차를 덜고, 따뜻한 물을 부은 후 차선으로 젓기 시작. 분명 움직인다고 움직이는데 빠르지가 않다.


"손목의 스냅을 좀 더 이용하세요."


말이 쉽지, 해보면 팔만 아프다. 평소 운동부족이라고 하기에는, 꼴랑 차를 젓는데 온 힘을 하면서 변명하는 내가 한심하다. 기술이 필요한데, 그 기술이 감도 안 오니 팔을 부들거리며 차 표면을 저을 뿐이다. 정말 도 닦는 기분.


미묘하게 거품이 생긴다. 쌤이 하신 거처럼 풍성하지는 않지만, 조금씩 거품이 생기는 게 보인다. 하지만 빠르게 사라진다. 다시 한번 깨닫는다. 사람은 빠른 포기도 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는 다완을 잡고 들이킨다. 기분 나쁘지 않은 씁쓸한 맛이 고소한 맛, 단맛 등과 어우러져 혀에서 목으로 한 번에 넘어간다. 생각보다 많지 않은 양의 차가 속으로 들어온다. 가루를 그대로 마시기 때문일까. 차의 향이 입속에서 오래 머문다. 그 향이 나쁘지 않다.


"팔이 아픈가요? 나중에 또 해보면 훨씬 쉽게 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럼 오늘은 말차로 할 수 있는 다른 차들도 만들어봐요."


우유에 말차를 부어 말차라떼를 만들어 보기도 하고, 거품을 낸 말차에 뜨거운 우유 거품을 부어 즐기기도 했다. 다양한 변주들. 그리고 언제나 그와 함께하는 다식들. 홍차 수업과 같게 'D'에서 꽉 채운 수업시간을 보냈지만, 한 가지는 달랐다. 집에 와서도 팔이 아팠다.

사진들은 전부 원작자의 허락을 받고 이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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