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꿈바꿈 2호 (18.06.22)
나는 아름답지 않을 권리가 있다.
아침 7시, 창문으로 과다하게 많은 빛이 쏟아져 들어온다. 해가 일찍 뜨고, 늦게 지는 여름이다. 여름이 되면 하루를 길게 살 수 있어 좋지만, 몸을 관통하여 들어오는 듯한 뜨거운 태양 때문에 괴롭기도 하다. 사람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변화하는 날씨에 맞춰 옷 차림을 달리한다. 노출의 계절, 여름이 찾아왔다.
계절이 바뀌었으니 옷장 정리를 해야 한다. 손이 자주 가는 곳에 있었던 긴팔과 도톰한 니트들은 이제 넣어둘 시기이다. 아침마다 입을 옷을 찾아 헤매는 것이 지겨워져 옷장 정리를 결심했다. 여름옷을 모두 꺼내어 펼쳐보았다.
20살 때 샀던 딱 달라붙는 티셔츠와 프릴프릴한 블라우스를 보며 ‘이걸 어떻게 입었지?’라며 경악했다. 한참 다이어트에 집중했던 22살 때 입었던 딱 달라붙는 치마를 보며 ‘이게 들어갔던 때가 있었나?’라며 추억에 잠겼다.
딱 붙는 티셔츠와 팬티가 보일락 말랑한 미니스커트를 다시 입어보았다. 딱 달라붙는 옷들은 너무나 활동하기가 불편했다. 한 두 걸음만 걸어가도 치마는 올라갔고, 달라붙는 티셔츠에 볼록 나온 배가 보기 싫어 배에 자동으로 힘을 주게 되었다. 게다가 뽕브라를 입지 않아 볼록하지 않은 가슴 때문에 헐렁한 옷 핏이 얼마나 볼품이 없는지, 거울 앞의 내 모습을 보고 기분이 한껏 나빠졌다.
옷을 바로 벗었다. 작년에 산 통 큰 바지와 박스티로 갈아입었다. 세상 이리 편할 수가 없었다.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이 예쁘지는 않았지만, 편안해 보였다. 옷들을 찬찬히 훑어봤다. 딱 붙는 옷과 숨이 트이게 하는 편한 옷, 달라붙는 스키니진&치마와 통풍이 잘되는 바지를 나누었다. 그리곤 손이 잘 닿지 않는 옷장 뒤쪽에는 딱 달라붙는 옷을 넣고, 앞쪽에는 편한 옷을 넣었다.
이번에는 속옷 장을 열어보았다. 달라붙는 옷을 입을 때 작아지는 나 자신을 위해 구매한 뽕 브래지어와 최소한의 자극을 주는 브라렛이 함께 널브러져 있었다. 매일 속옷을 갈아입을 때마다 나를 선택의 갈림길에 두었던 뽕브라들을 눈에 보이지 않는 깊은 곳에 넣었다. 나를 숨 쉬게 하는, 편하게 하는 브라탑과 브라렛을 앞쪽에 배치해두었다.
‘여자라면 화장은 예의지.’
‘여자가 예쁘게 태어나는 것은 고시 3개를 패스하는 것과 같다.’
‘너는 살 좀만 빼면 예쁘겠다.’
최근 '탈 코르셋'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탈코르셋운동은 위와 같이 주변에서 쉽게 들을 수 있는 편견 섞인 말들에 정면대응하는 운동이다. 예의라고 치부되던 화장을 그만두는 사람, 여성들만 입는 속옷인 브래지어 착용을 거부하는 사람, 긴 머리를 짧게 숏컷으로 자르는 사람. 여성들은 각각의 방식으로 그들에게 가해졌던 고정관념에 브레이크를 걸고 있다.
전보다 편한 옷을 즐겨 입게 된 나지만, 아직 ‘여성스럽지 못한 나’가 두렵다. 화장하지 않은 채로 밖을 나서면 깨끗하지 않은 피부가 부끄러워 작아지곤 한다. 샤랄라한 예쁜 옷을 입고, 핑크핑크한 화장을 한 나를 쳐다보는 시선들에 뿌듯함을 느끼곤 한다.
나는 탈코르셋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변화의 바람을 지켜보며 내가 코르셋 안에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보통에서 마름으로 가는 다이어트 방법을 검색하며 1일 1식을 했던 어떤 날들. 남심저격 메이크업을 보며 연약해보이는 이미지를 연출하던 그 때의 나. 이러한 노력들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한 몸부림이었을 뿐.
한 여성주의자에 글에서 본 문구인데, 모든 여성은 예쁘지 않을 권리를 가진다. 여성인 동시에 사람인 나는 예쁘지 않을 권리를 가진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예쁘지 않다고 해서, 사람들에게 피해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티비 속의 아이돌을 보며 다이어트 자극을 받을 때면, ‘연예인도 아니고 그들처럼 말라야 할 필요가 있는가?’라고 스스로 질문한다. 아니요. 나는 보여지는 직업을 가진 것이 아니기에 그들처럼 날씬해야 할 이유가 없다. 더는 사회적 미의 기준에 나를 가두고 싶지 않다.
누군가를 위해 나를 바꾸는 것이 아닌, 나를 위해 자신을 가꾸는 내 모습을 꿈꾼다. 나만의 기준( *꾸밈 노동을 하고 싶을 때만 하기.)을 가지고,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걸어가다 보면 내가 원하는 지점에 도착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작년 여름에는 나를 옥죄던 뽕브라와 달라붙는 바지에서 벗어났으니 올여름에는 땀과 뒤섞여 나를 갑갑하게 하던 피부화장에서 벗어나 볼까 한다.
올여름, 굳게 다짐해본다.
화장하지 않고도 스스로 작아지지 않기.
더 나아가 당당해지기.
by.김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