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호선 지하철에서 전 남자 친구를 만나다

가꿈바꿈 1호 (18.6.15)

by 김꿈


1호선 같은 칸에서 전 남자친구를 만났다.



유난히 알람 소리를 듣고도 일어나기 힘든 날이었다. 알람과 함께 또랑또랑해지는 특기가 있던 나지만 그날에는 평소와 다르게 알람을 끄고 눈을 다시 감았다. 젠장, 눈을 뜨니 재빨리 나가지 않으면 출근 시간에 늦어버리는 시각이었다. 세수만 하고 보이는 옷을 대충 골라 입고 밖으로 나섰다.

3분 후에 온다는 버스는 웬일인지 모습을 보이지 않고, 7분이나 지나서야 도착했다. 전속으로 뛰어 간당간당하게 지하철을 잡아탔다. — 다행이다. 지각은 면했겠구나. — 한숨 돌리며 앉을자리가 없나 두리번거리던 그 순간, 굉장히 낯선 얼굴에 시선이 고정됐다. 까만 피부, 쌍꺼풀 없는 선한 눈매를 가진 남자였다.

2013년의 초반부터 2014년의 중반까지 만났던 전 남자친구이자 첫 남자친구인 그와 굉장히 닮은 얼굴이었다. ‘혹시…?’의 마음으로 발걸음을 늦추었다. 닮은 사람을 발견해 심장이 떨렸다거나 그가 그리워서 응시했던 것은 아니었다.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나의 시선이 느껴져서였을까? 자리에 앉아있던 그가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았다. 눈이 마주쳤다.


이럴 수가,

아는 눈빛이었다.


재빨리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당황스러웠다. 구남친과 지하철에서의 조우라니, 1번 칸, 그와 멀지 않은 곳에 한 자리가 남아있었다. 걸음 속도를 올려 자리에 가서 앉았다. 같은 라인이었기에 고개를 돌린다면 그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가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 사람이 아닌 증거를 찾기 위해 열심히 관찰했다. 그 역시도 나를 알아본 것일까, 내가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 다시 눈을 마주쳤다. 사람이 가지는 고유의 눈빛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 그였다. 그가 확실했다.

전 남자친구와 지하철 같은 칸에서 만나는 드라마 같은 일이 나에게 일어났다. 이미 끝난 관계라고 할지라도 구 애인에게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욕심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카메라 앱을 켜서 내 모습을 확인했다. 급하게 나온 탓에 꼴이 말이었다. 왜 하필 오늘인 거야. 전혀 예상치 못했기에 더욱 속상한 나의 외양이었다.

몇 분간 걔가 날 뭐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혼자 상심하다 그가 이 시간에 지하철을 타는 이유가 궁금했다. 다시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바닥에 내려둔 가방을 보니 4년 전과 같은 백팩을 아직 쓰고 있었다. 아직 학교를 다니고 있는 듯했다. 같은 가방을 본 후 또 한 번 그라는 것을 확신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었다. 그래도 500일 정도를 만난 구 남친을 만난 것인데 마음이 아리다거나 그를 제외한 모든 요소가 페이드아웃되고 그 사람만 보인다거나 하는 드라마틱한 효과는 없었다.

그는 첫 연애 상대이자 첫 이별 상대였다. 헤어질 때 떠나는 그를 자존심 다 버리고 울며 가지 말라고 붙잡았다. 헤어진 지 한 달이 지나고도 그를 잊지 못해 ‘다시 만나면 안 될까?’ 질척거렸던 내 흑역사의 주인공은 그였다. 그렇게 나름대로 애틋했고, 뜨거웠던 사랑이었는데 다시 보아도 심장이 터질 듯이 뛴다거나 사귈 때의 좋았던 감정 같은 것들이 떠오르지 않았다.

4년이나 지났다. 헤어지고 서서히 그를 잊었고, 다른 사람을 만나기도 했고 그 없는 삶을 열심히 살았다. 시간이 지나자 아물지 않는 상처와도 같던 첫 이별에 새 살이 돋았고 상처의 흔적조차 사라졌다. 그라는 사람은 알아보았지만, 그와의 추억은 기억 저 너머로 휘발되어버렸다. 자꾸만 머릿속을 헤집다 보니 잊고 지내던 풋풋했던 때의 기억이 야금야금 떠올랐다. 한참 추억에 잠기다가 갈아타야 할 역이 되어 같은 칸에 탄 그를 두고 갈 길을 갔다.

지하철에 내리자마자 갈아타는 수많은 사람에 치였다. 사람들에 치이자 자연스럽게 생각을 멈추고 지금의 내 상황에 집중했다. ‘아 맞다, 나 지각 위기에 처해있었지!’ 서둘러 4호선으로 향했다. 4호선으로 갈아타며 삐져나오려는 추억은 다시금 넣어두자는 결론을 내렸다.

술자리에서 친구들에게 그날의 사건을 말했다. 친구들은 특별한 우연이자 인연인데 인사라도 해보지 그랬느냐고 말했다. 순간 ‘아는 척을 해야 했나? 설마 그와 나는 운명의 데스티니일까?’라는 생각이 스쳤다. 이내 고개를 저었다. 처음이라 서툴렀지만, 누구보다도 풋풋했던 그때의 기억이 변색할까 두렵다. 풋풋했던 사랑의 기억은 평생 익지 않도록 기억저장소 안에 냉장 보관을 해둘 것이다.




by. 김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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