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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팍끌림 May 29. 2024

결혼 전 나를 만나고 오는 길

남편 없이 떠난 시즈오카 여행


2018년도 늦가을에 남편을 만난 이후 대부분의 해외여행을 남편과 함께했다.

둘 다 여행을 좋아해서 혼자 여행도 잘 다니던 사람이었고, 혼자서도 잘하기 때문에 둘이 함께할 때 더 좋은 시너지가 있었다.


같이 여행을 다닌 지 5년 정도 되다 보니 같이 가고 싶었던 우선순위의 도시들은 거의 다녀왔고 슬슬 의견이 갈리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발견한 좋은 가격의 시즈오카 항공권!

얼마 전부터 도쿄나 시즈오카에 가서 후지산 포토존 투어가 하고 싶었는데 좋은 가격의 항공권을 발견하니 너무 가고 싶어 졌다.


" 오빠, 후지산 보러 시즈오카 ㄱㄱ?"

"ㄴㄴ"


후지산 포토존 투어는 역시나 우리 남편의 취향이 전혀 아니었다.


"그럼 혼자 가도 됨?"

"ㅇㅋ"


그렇게 나는 결혼 후 처음으로 남편 없이 혼자 해외여행을 가기로 했다.

종종 같이 여행을 하던 친한 언니와 시간이 맞아서 함께 여행을 하기로 하고 시즈오카로 출발하는 날. 공항에 도착해서 체크인하러 가는 길에 서점이 눈에 보였다.


혼자 여행을 할 때 보통 책을 가지고 다니면서 시간 날 때마다 읽었었는데, 남편과 함께한 이후에는 둘이 수다를 떨다 보니 책 읽을 일이 없었다.


통로석에 앉으려고 언니랑 자리도 떨어져 있어서 지금이 책 읽기 좋겠다 싶어 책을 골랐다. 보고 싶었던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를 먼저 집고 보니 언니한테도 한 권 선물을 하고 싶어졌다.

때마침 언니가 올해 마흔 살이 되어 같은 책을 두권 살까 하다가 트렌트코리아 2024를 보고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 1권과 트렌드코리아 2024 1권을 계산했다.


' 언니한테 쇼펜하우어 책은 다 읽고 빌려달라고 해야지! '


트렌드코리아는 결혼 전 열정 쏟아 일하던 시절에 매년 읽었던 책이었다. 책 소유욕도 있는 나는 연도별로 트렌드코리아가 책장에 꽂혀있는 걸 보면서 흐뭇해하기도 했었다.

결혼 후에는 이직을 하면서 트렌드와 관련 없는 직종이 되어 트렌드코리아를 잊게 되었고 이상하게도 책에 손이 잘 안 가서 4년 동안 읽은 책이 소설책 세권뿐이었다.


언니를 만나 책을 선물하고 오랜만에 책을 읽고 싶어 샀다고 이야기하면서 여행이 더 설레어졌다. 언니도 오랜만에 책 읽을 기회가 생겼다며 좋아했다.


드디어 시즈오카로 출발.

각자 자리에 앉아 책을 읽기 시작했고 비행기에서 책을 읽는다는 것에 갑자기 이상한 감정이 몽글몽글 올라왔다.


- 남편 없이 떠난 여행, 비행기에서 읽는 책, 트렌드코리아.


마치 결혼 전의 나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나는 결혼으로 함께 사는 사람, 회사가 바뀐 것 외에는 크게 달라진 게 없고 가족을 위해 포기하거나 희생하는 것도 없는데 예전의 나를 만난 것 같은 기분이 참 묘했다.

이래서 가끔은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걸까 싶더라.


시즈오카 이자카야에서 언니와 한잔 하면서 우리가 정말 오랜만에 독서를 한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한참 나눌 수 있었다. 자극적인 영상과 숏폼에 익숙해져 있던 우리가 집중해서 글을 읽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언니에게도 나에게도 시즈오카 여행에서의 독서는 가장 큰 추억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나는 트렌드코리아 2024를 완독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일주일 뒤에 도착한 언니가 보내온 택배 상자 안에는 내가 선물했던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 와 책 한 권이 더 들어가 있었다.


몇 달이 지난 지금, 그 이후로 2번의 여행이 있었고 나는 아직 언니에게 받은 2권을 책의 첫 장을 열어보지도 못했다.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 너무 보고 싶은데 또 한 번 더 떠나볼까?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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