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팍끌림 Jun 05. 2024

코코를 기억하려고 쓰는 글

잘 가 코코

며칠 전 엄마한테 온 카톡.


' 너 여행 갔을 때 코코가 잘 자고 일어났는데 서지도 못하고 제자리를 계속 돌더니 먹지도 않고 해서 병원에 갔었어. 병원에서 힘들 것 같다고 해서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갔어. '


친정에서 키우고 있던 코코가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여행 다녀와서 친정 식구들을 만나 밥도 먹었는데 그때까지 나한테는 아무도 얘기해주지 않았었다. 아마도 여행 중이었고, 다녀와서는 남편의 생일 축하 자리였기 때문에 안 좋은 소식을 전하지 않았던 것 같다.


결혼을 하면서 오래 떨어져 지냈고 아직 친정집에 가보질 않아서 코코의 빈자리가 크게 와닿지는 않지만 문득문득 코코가 없다는 생각에 울컥하고 눈물이 올라온다.


코코의 이야기를 쓰는 게 감정적으로 쉽지 않지만 14년 동안 우리 가족에게 좋은 추억들을 많이 남겨준 우리 집 막내 코코를 오래도록 기억하고자 글을 쓰기로 했다.




2011년 이맘때쯤 코코는 우리 집에 왔다. 3개월 된 코카스파니엘이었던 코코를 동인천 쪽 어느 학교 앞에서 가정분양을 하는 분께 분양을 받게 되었다.

어미와 같이 지냈던 코코는 실컷 젖을 먹고 자랐는지 우리 가족의 예상보다 엄청난 사이즈였다.ㅎㅎ



코코를 위해 사둔 집은 너무나도 좁디좁아서 급히 집에 있는 큰 박스로 코코의 침대를 만들어줬었다.

물방울무늬 무늬의 천과 너무 잘 어울렸던 코코.


엄마와 잘 때, 사람이 없을 때는 울타리를 해두기로 한 약속은 며칠가지 않았고, 에너지 넘치는 코코는 온 집안을 초사이언처럼 계속 뛰어다녔었었다.

3대 지랄견다운 모습들도 종종 보여주긴 했지만 큰 사고 치지 않고 말 잘 듣는 얌전한 편이었다.



코코가 우리 집에 온 뒤로 집안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었다.

각자 방에 있던 가족들이 코코가 있는 곳으로 다들 모이기 시작했고 코코라는 공통주제로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되면서 다같이 웃고 떠드는 시간들이 많아졌다.


나는 소개팅하다가도 코코가 보고 싶어서 집에 일찍 들어간 적도 있었을 정도.ㅎㅎ



덩치와 다르게 겁이 많았던 코코는 천둥번개가 치면 내 침대 밑으로 숨었다. 큰 덩치가 저 공간에 기어들어가는 걸 보면 어찌나 귀엽던지.ㅎㅎ


우리 가족처럼 처진 눈을 가진 코코는 정말 너무 귀여운 내 동생이었다.



호기심이 많고 만득이를 좋아했던 코코.



조카에게 침대를 뺏겨도 싫은 티 내지 않았던 순한 코코.



냠냠 먹는 모습이 너무나도 귀여워서 내가 가지고 있는 대부분이 코코의 먹방 사진이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코코가 내 침대에서 떨어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헛발인줄 알았는데 두세 번 반복되다 보니 이상하다 싶어 바로 병원에 데려갔다.


백내장과 녹내장이 다른 강아지들보다 일찍 시작된 코코는 8살이 되던 해에 시력을 잃었다.

다행히 코코는 안 보이는 환경에 금방 적응했고 우리 가족들은 코코가 잘 지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갔다.



앞이 안 보이기 시작하면서 코코는 꼭 엄마 아빠 가운데에서 잠을 자려고 했는데 한 덩치 하는 코코였기 때문에 엄마는 항상 침대 끝자락에 붙어서 잠을 잤다.


항상 잘 먹고 잘 잤던 코코는 다른 강아지들은 잘 안 먹는다는 기호성 떨어지는 사료도 잘 먹었었다. 다이어트가 필요한 시기에 다이어트 사료로 바꿨더니 오히려 이전 사료보다 기호성이 좋아서 엄청난 식탐을 보이기도 했었다.



내가 결혼하고 몇 달 뒤 친정집은 분양받은 신축 아파트로 이사가게 되었다.

눈이 안 보이는 코코가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했던 것과 달리 이번에도 코코는 너무 금방 적응해서 부딧힘없이 지내게 되었다.


어쩌다 친정에 가보면 코코의 시간은 우리보다 빠르게 흘러 더 빨리 늙어가고 기운이 없어 보이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2024년, 올해는 아빠의 칠순이다.

온 가족여행을 하고 싶어 했던 아빠의 칠순선물로 코코도 같이 갈 수 있는 국내에 애견펜션이나 글램핑장 여행을 가기로 했다.

10월 첫째 주로 약속을 해두고 일정은 다들 비워기로 했는데  코코에게 아무도 얘기를 안 해줬는지 코코는 그날을 기다려주지 않고 우리 곁을 떠났다.


마지막까지 함께했던 엄마 아빠, 그리고 코코를 가장 아꼈던 아빠가 힘들 것 같아 위로하러 가고 싶지만

아직은 코코 없는 친정집에 갈 자신이 없다.


우리 가족에게 많은 추억과 행복을 주고 떠난 코코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며 글을 마무리해보려고 한다.


코코야!

너 때문에 많이 즐겁고 행복했어, 우리 집으로 와줘서 고마워.

다음에 꼭 다시 만나자.

잘 가 코코.






이전 07화 결혼 전 나를 만나고 오는 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