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에도 행복할거다

지난 2년을 돌아보며

by 김동린

24년은 정말 버거운 해였다. 2년 가까이 만난 여자친구와 헤어졌고, 엄마는 4기 암 판정을 받았다. 더는 나이지리아에서 일을 이어갈 수 없어 한국으로 돌아왔다. 회사는 본사 설계팀으로 보내주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부산 현장으로 발령을 냈다. 그 사이 본가를 지켜주던 월이(강아지)도 내가 나이지리아에 다녀오는 동안 상태가 급격히 나빠져 있었다. 10년간 정들었던 집을 정리하고 부모님은 제주도로 이사했다. 그리고 월이는 제주도에서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 씩씩하게 이겨내자고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혼자 있을 때는 계속 무너졌다. 매일 한 시간씩 달렸다. 그것 외에 할 수 있는게 없기도 했고, 오로지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데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다.



상처나고, 아물고, 덧남의 반복이었던 24년이 지나 25년이 왔다. 지난 시간 현장 생활을 하며 모은 돈에 대출까지 보태어 생애 첫 집을 샀다. 무리라는 걸 알면서도, 지난 2년 동안 나이지리아 숙소부터 회사 기숙사, 형 집, 부산 현장 숙소까지 떠돌며 정착하지 못하는 삶을 더는 견디기 힘들었다. 무엇보다 본가가 사라진 뒤, 최악의 상황에서도 가족을 지킬 장소가 필요하다는 갈증이 가장 컸던 것 같다.

근무지도 회사 기술연구원으로 옮겼다. 부산 현장에서 근무하던 중 올라온 AI 연구 분야 직무이동 공고에 지원했고, 운 좋게 합격했다. 새로운 집, 새로운 근무 환경, 새로운 팀원들과 함께 25년을 맞았고, 오늘 해를 마감했다.



돌이켜보면 24년이 너무 힘들었던 덕분인지, 25년 한 해는 유난히 행복했다. 나이지리아와 부산 현장과 비교하면 연구원 환경은 쾌적했고, 밥은 맛있었다. 무엇보다 “해보고 싶은 걸 해볼 수 있는” 자유로운 연구 분위기가 정말 좋았다. 만들고 싶던 AI 사주 앱, AI 통역기, 부모님 펜션 관리 앱, AI 기반 헬스 어시스턴스 앱, 통역 워키토키, AI 인테리어 앱, AI 룩북, 그리고 AI 기반 구글 확장 프로그램까지—생각만 하던 것들을 실제로 만들어냈다. 내 손으로 내가 상상한 것을 구현할 수 있게 되었다.

하고 싶던 일을 ‘일’로 하게 되니, 자연스럽게 퇴근 후에도 노트북을 붙잡게 됐고 책도 더 많이 읽게 됐다. 인생 첫 PT를 시작하면서 운동을 안전하고 정확하게 하는 법을 배웠고, 그 덕분에 웨이트의 재미도 알게 됐다. 출근 시간이 왕복으로 1시간 반쯤 되지만, 그 시간을 지하철에서 책 읽는 시간으로 바꾸니 오히려 즐거웠다. 혼자 중얼거리며 읽어 내려간 책이 올해 20권이 넘는다.


엄마와 해외여행도 두 번 다녀왔다. 4월의 샌프란시스코, 10월의 북유럽. 고3 수능이 끝난 뒤 엄마와 둘이 한 달 가까이 떠났던 중국 배낭여행이 문득 떠올랐다. 그때처럼, 이번 여행의 매순간도 너무 소중했다. 이제 써볼 수 있는 항암제는 더 없지만, 엄마는 그 현실에 적응하려 애쓰고 있다. 그림도 그리고, 가죽공예도 배웠다. 제주도에 구한 집에도 잘 적응했고, 매주 항암도 잘 견뎌줘서 고맙다.


커리어에 대한 고민은 이제 거의 없다. 매일 꾸준히, 성실하게 하면 된다는 걸 알고 있고 실제로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다만 의사 선생님이 말했던 ‘2년’이라는 시간이 다가오는 건 여전히 두렵다. 두려움이 크기에 더더욱, 가정을 꾸릴 수 있는 집과 안정적인 직장, 그리고 아들로서 건강하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성취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여기서 내가 더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엄마와 함께 세상을 더 간절히 사랑하고, 더 많이 베푸는 것, 그것 말고는 내가 할 수 있는 저항이 없는 것 같다. 2025년은, 정말 감사한 해였다. 내가 할 수 있는 저항은 거창하지 않다. 무너지지 않는 척하지 않고, 무너져도 다시 일어나는 것. 그저 과정에서 더 사랑하고 더 나누는 것.


26년에도 행복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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