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나는 추억 앞에서, 결국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지난주 토요일, 어린시절 친구의 결혼식에 다녀왔다.
우리는 부모님끼리 사이가 각별해서,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종종 붙어 놀았다. 친구 집에 가면 우리 집에는 없는 장난감이 한가득이었고, 우리 부모님이 끝까지 안 사주던 게임보이와 닌텐도 게임큐브까지 마음껏 할 수 있었다. 게임보이 속 포켓몬스터 시리즈와 게임큐브를 꺼내 친구와 했던 디지몬 배틀 크로니클은 아직도 선명하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는 자주 오가며 놀았던 것 같은데, 4학년을 넘어 고학년이 되면서부터는 예전처럼 막역하게 붙어 지내진 못했다. 생각해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사춘기로 넘어가면서 친구의 범위가 새로 정해지고, 우리는 같은 반이었던 적도 없었고, 지금처럼 카톡이나 DM으로 쉽게 연결될 수 있는 시대도 아니었다. 부모님끼리 자주 보지 않으면 멀어지는 게 당연했다.
초등학교 3학년을 기준으로 잡아보면…
19년이 흘렀다.
시간이 참 많이도 흘렀다.
엄마는 현재 매주 치료를 받으러 서울에 온다. 그때 하루나 이틀, 길게는 2~3일 정도 우리 집에 머물다 가시는데, 어느 날 갑자기 그 친구 결혼식이 곧이라며 같이 가자고 했다. 청첩장을 받은 것도 아닌데 내가 굳이 가야 하나 싶었지만, 엄마는 “그래도 추억이 있는데 같이 가야지”라고 말했다. 그렇게 나는 ‘냄새만 맡고 오듯’ 당일치기 8시간 일정으로 결혼식장에 잠시 다녀왔다.
결혼식장은 사람이 정말 많았다. 친구 아버지가 아직 퇴직을 안 하셨다고는 해도, 가족들 모두 인간관계가 좋았나 보다 싶었다. 돌이켜보면 그 친구는 나에 비해 모난 구석이 적었던 것 같기도 하다.
도착하자마자 친구와 마주쳤다. 축하한다는 말을 건네고, 다시 친구를 보내줬다. 그날의 주인공은 내가 오래 붙잡아둘 사람이 아니었다.
그리고 친구 어머니를 만났다. 보자마자 눈물이 맺혔다. 애써 눈물을 참고 인사를 급하게 마무리하고 화장실로 도망쳤다. 무너졌다.
그림을 잘 그리시던 아주머니는 친구와 나에게 그림 그리는 법을 가르쳐주셨다.
스케치는 괜찮게 했으면서도 물을 잘 못 써서 결국 망쳐버린 수채화가 떠올랐다.
셋이서 이기대 입구 쪽에 가서 풍경화를 그리던 순간도 생각났다.
친구네 집 거실에서 둘이 게임을 하고 있으면 아주머니가 아무렇지 않게 간식을 내어주시던 장면도 떠올랐다.
그렇게 거의 20년이 흘렀다.
그동안 너무 많은 일이 있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집을 나와 낯선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야 했고, 정말 많은 사람을 만나며 상처도 받고 상처를 주기도 했다. 사랑도 하고 이별도 겪었다. 나이지리아도 다녀왔다. 경험이 쌓인 만큼 깊어진 것도 맞지만, 어쩌면 그 골이 너무 깊어졌는지도 모르겠다. 오르락내리락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건 분명한데, 그날만큼은 이상하게도 ‘그때의 나’로 잠깐 돌아가면서 그 사이에 겪은 일들이 한순간에 빨려들어가 버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결국 그 공간이 따뜻했던 거다. 사람도, 말도, 분위기도.
먼저 경계하지 않아도 됐던 시간.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아도 됐던 자리.
그 따뜻함이, 너무 큰 덩어리로 한 번에 돌아와버린 것이다.
그땐 엄마가 아프지 않았지.
그땐 바둑 프로기사가 되고 싶었지.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았고, 사람들이 너무 좋았지.
나는 그때로 돌아가고 싶었던 것도 아니고, 슬퍼서 운 것도 아니다. 다만 20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 사이 거리가, 생각보다 너무 멀어져 있었다.
이건 애도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