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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다영 Apr 15. 2022

오로라를 본다는 것은

삶에 초록빛 황홀함 더하기 :  오로라를 만나러 알래스카 옆으로!

누가 삶에서 가장 벅찼던 순간을 떠올려 보라고 한다면,
주저 없이 꼽을 수 있는
2022년 2월 24일 밤.
오로라를 본 날.


        라틴어 'aurora borealis'를 어원으로 둔 오로라는 새벽의 여신을 뜻한다. borealis가 북쪽에서 부는 바람을 의미한다고 하니, 결국 오로라는 북반구에서 관찰되는 새벽빛일 뿐이다. 그런데 왜 나는 오로라에 눈물이 날 정도로 벅찼을까? 나뿐만 아니라, 여행을 좀 좋아한다는 사람들은 왜 가슴 한편에 오로라 보기를 버킷리스트로 품고 사는 걸까.


이유는 간단하다. 오로라는 아름답고,

희귀하기 때문이다. 


        고개만 들면 보이는 구름과는 달리, 오로라를 보기 위해서는 돈과 시간, 그리고 무엇보다도 운이 필요하다. 나는 오로라를 보기 위해 학생으로서는 큰돈인 160만 원가량의 비용을 4일에 지불했고, 학교가 쉬는 틈을 타 알래스카 옆으로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내가 노력을 들인 가치가 있기를, 다시 말해 운이 좋기를 기도했다. 이 글은 오로라를 보기 위한 나의 돈과 시간과 운이 담긴, 오로라를 만나러 가기 위한 여정기이다.




오로라를 본다는 것은


 

       다른 생각을 비우고 이 상황에 이입해보자. 두꺼운 방한복을 입었지만 얼굴에 닿는 공기는 차다. 고개를 들면 하늘 위에는 셀 수도 없이 많은 별이 떠 있다. 칫솔에 흰 물감을 묻혀 손가락으로 튕겼을 때 나오는 방울들보다도 더 많은 별들. 나무 한 그루 없는 주위로는 360도로 펼쳐진 밤하늘이 보인다. 그 옆으로 커튼 같은 초록색 오로라가 펼쳐져 있다. 그 자리에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빛은 하늘을 덮고, 빛나고, 춤춘다. 별들 사이를 일렁이는 초록색 빛은 처음 보는 가벼움을 가진다. 때로는 짙어지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하고, 하늘을 가로지르는 기다란 빛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아, 내가 오로라를 보고 있구나, 하는 자각이 현실을 더욱 환상적으로 만들어준다.

알래스카 옆, 캐나다의 가장 북쪽에 서서, 북극의 빛을 바라보고 있는 현실은 황홀하다.

 

       

        

        오로라 투어를 예약하면 밤 10시에 숙소 앞으로 픽업 버스가 도착한다. 무릎까지 오는 방한 부츠, 겹겹이 껴입은 옷, 모자와 장갑까지 무장을 하고 버스를 탄다. 가이드님이 설명해주시기를, 오로라를 보기 위해서는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고 한다. 도심의 불빛은 당연하고, 달빛마저 없는 어두움, 시야를 가리지 않는 탁 트인 장소, 그리고 구름이 없는 맑은 하늘. 도심의 불빛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30분이 넘는 시간 동안 고속도로를 달린다. 오른쪽으로 꺾어 비포장도로를 지나면, 나무 하나 없는 너른 들판이 등장한다. 들판 앞에는 작은 오두막이 있다. 이 오두막과 들판에서 네 시간을 머물면서 오로라를 기다리는 것이다.


        오두막은 오로라 관측을 최적화하기 위해 모든 불을 꺼 놓는다. 핫초코를 타 먹을 때만 휴대폰의 불빛을 잠깐 켜는 정도다. 관광객들도 후레시를 이용한 사진 촬영은 지양한다. 오로라를 사진으로 담기 위해서는 최소 10초 이상의 장노출이 필요한데, 이 과정에서 오로라 빛 외의 다른 빛이 들어가게 되면 빛이 번지거나 뿌옇게 나오기 때문이다. 몇몇은 오두막 안으로 들어가 몸을 녹이기도 하고, 몇몇은 방수 바지 덕분에 눈밭에 그냥 앉아 초록색 빛을 기다린다. 주위는 온통 새카맣고, 서로를 알아볼 수 있는 것은 목소리뿐이다.


        가만히 기다리다 보면 어느 순간 오로라가 둥실 떠오른다. 'Aurora!'라는 가이드분의 목소리에 따라 사람들이 우르르 밖으로 나온다. 하늘에 펼쳐진 초록색 불빛을 쳐다보느라 목을 있는 대로 꺾고, 휴대폰 배터리가 닳을 때까지 사진을 찍었다. 오로라를 이불 삼아 누우면 그 황홀함에 춥지도 않다!


        오로라는 사실 육안보다는 사진으로 찍었을 때 더욱 선명하게 보인다. 빛을 한 사진에 모아 담기 때문이다. 삼각대가 없어 손으로 가만히 초점을 맞추며 들고 있었는데, 혹시라도 흔들릴까 숨을 참고 하늘을 보던 10초의 시간, 그 순간들의 집합. 아름답고, 또 희귀한 오로라를 볼 때 느껴지는 경이로움은 살면서 느끼는 몇 안 되는 황홀한 기억을 만든다.




오로라만큼 황홀했던 것은


우주와의 대면.


        맑았던 첫째 날과 다르게 둘째 날은 온 하늘이 구름으로 전부 덮여 있어 별빛 한줄기도 내려오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두막 안에 들어가 있었는데, 나는 어두움과 답답함이 싫어 눈밭에 그대로 누워 있었다. 서울에서는 느낄 수 없는 고요함과 어두움. 짙은 구름을 덮고 두텁게 쌓인 눈을 깔개 삼아 누울 수 있는 날이 얼마나 있을까 싶어, 영하의 날씨에도 꿋꿋하게 하늘만을 보고 있었던 것 같다. 물론 정말 두껍게 입은 방한복 덕분에 그렇게 몸이 시리지는 않았다. 다만 언제 걷힐지 모르는 구름들이 원망스러웠다.


        그러던 순간, 걷힐 기미가 안보이던 구름 낀 하늘 끝머리부터 별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일기예보에서는 구름 100%인 하늘이라고 했는데, 이렇게 밝은 별들이라니. 간절히 별을 기다렸던 나에게는 정말 기적과도 같았다. 1시간에 걸쳐 구름들이 서서히 퍼지더니, 자정 즈음에는 하늘의 민낯이 환하게 드러났다. 그 장면을 모두 지켜볼 수 있었던 나는 행운이었다. 구름 뒤에 있던 별들은 첫째 날보다도 더 많고 환했고 화려했다. 사람들이 나와 별을 보며 웅성였는데, 그 소음을 피해 허리까지 오는 눈을 파고 초원 안쪽으로 들어가 누웠다. 소음은 사라지고, 오직 하늘과 별과 나만 남은 순간이었다.



        별들을 아주 오래 쳐다보면 그 빛들이 마치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진다. 내가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던 별이 옆으로 슬쩍씩 움직이더니, 옆의 별들과 함께 소용돌이처럼 춤을 췄다. 물론 별은 움직이지 않고 지구의 자전은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미세하지만, 하늘을 오래오래 쳐다보면 정말 별들이 휘몰아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왜 고흐가 별이 빛나는 밤하늘을 그렇게 묘사했는지 완전히 공감이 될 정도로.


        그렇게 춤추는 듯한 별무리를 보고, 또 보다 보면 하늘과 나의 거리가 아주 가까워진다. 그리고.... 지구의 한 면에 온 몸을 대고 누워, 나의 맞은편에 선 온 우주를 바라보고 있는 나 자신을 감각할 수 있게 된다. 두 팔을 벌리고 내 앞에 있는 수많은 별들을 안아보았다. 그 순간, 온 우주가 내 앞에 있구나, 우주와 독대하는 기분이었다. 나라는 사람이, 지구의 다른 어떠한 것들과도 관계 맺지 않고도, 벌거벗은 한 인간으로서 우주 속에 존재함을 느꼈다.  인간은 관계로부터 정의된다는 말과는 다르게, 누군가의 딸이, 친구가, 연인이 아닌 나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나는 별을 실컷 보았던 둘째 날이 오로라를 보았던 첫날만큼 황홀했다. 우주로부터 내 존재를 감각하는 시간이었기에.


        별을 볼 때 꼭 가져갔으면 하는 준비물은 이어폰이다. 노이즈 캔슬링이 되는 에어팟 프로이면 더 좋다. 나는 가장 좋아하는 음악들을 틀고 별을 봤다. 눈을 감기도 했다. 추천하는 노래는 빌리 아일리쉬의 Ocean Eyes. 몽환적이고도 따뜻한 멜로디가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과 정말 잘 어울린다. 한참을 별을 보고, 그 건너의 우주를 보고, 눈을 감고, 노래를 듣다가 눈을 확 떴는데, 별똥별이 보였다. 정말 명확하게, 오른쪽 하늘에서 짧은 궤적으로 휙 떨어지는 별똥별이었다. 영화도 타이밍을 이렇게 설정해놓으면 욕먹을 텐데,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현실이었다. 순간 왈칵 눈물이 났다. 너무 벅차고 황홀한 순간이어서,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누리는 지금이 신기하고 그만큼 소중해서. '행복해서 눈물이 났던' 순간은 오로라만큼 드물다. 그리고 아름다웠다.




 누군가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를 묻는다면,

       

        여행은 인생의 황홀함을 더해줄 기회를 만들기 때문이다. 현실과 떨어져 자연을 마주하고, 그 속에서 경이로움을 느끼는 순간 나는 내 존재를 감각하고 살아있음을 느낀다. 짜릿한 행복이 주는 황홀함이다. 작년에는 제주도에서 스쿠버다이빙을 하며 이 기분을 느꼈고, 올해는 오로라와 밤하늘이 이 순간을 만들어주었다. 인간이 접할 수 있는 가장 거대한 자연현상이자, 가장 아름다운 빛. 한 번도 보지 못했다면, 꼭 한 번은 보길 바란다. 오로라를 처음으로 대면할 수 있는 기회가 남아 있는 누군가가 부러운 지금이다.




더 많은 사진이 궁금하다면, https://www.instagram.com/photo._.ze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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