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쿠바 여행 기록
16일 쿠바 여행 기록
사진으로 보는, 쿠바에서의 여름 (1)
휴양지였던 바라데로를 실컷 즐긴 뒤에 도착한 하바나는 생각보다도 난이도가 높았다. 인터넷이 거의 되지 않는 쿠바는 와이파이를 쓸 수 있는 곳이 매우 드물고, 관광객 신분으로 쿠바 유심을 얻는 것도 힘들다. 바라데로 리조트에서 미리 하바나 숙소 주소를 구글맵에 다운받아 왔어야 했는데, 정신없이 나오는 바람에 이걸 잊은 우리는 하바나에 도착하자마자 무거운 짐을 들고 이리저리 와이파이존을 찾아다녀야 했다.
정말 우연히 주변에서 호객 행위를 하던 한 아저씨가 우리에게 말을 걸었고, 우리가 알고 있는 숙소 주인의 번호로 전화를 걸어 주소를 파악한 후 그곳까지 데려다주셨다. 나중에 적겠지만 이 아저씨는 (예측하건대) 가짜 시가를 판매하는 상인에게 관광객을 연결해주는 호객꾼이었는데, 아저씨의 작업을 떠나 일단 올드 하바나의 복잡한 길거리를 우리와 함께 걸어주셔서 참 감사했다.
하바나 첫인상...은 사실 그다지 좋지 않았다. 캐나다에 살다 보니 깨끗한 공기와 길거리에 나도 모르게 익숙해졌는지, 상대적으로 오염된 하바나 구시가지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감이 들었다. 여행을 좋아한다고 하면서도 사실은 정돈된 관광지만을 경험하며 즐겼던 것은 아닌가라는 반성이 들기도 했다.
사실 날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사람'이었다. 하바나에서 단 한 명도 동양인을 마주치지 못했는데,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의 관심도 정말 엄청났다. 연예인이라도 된 듯한 기분이었다. 거리를 걸으면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우리를 향했고, '치나!(중국인 여자)' 소리도 귀가 닳도록 들었다. 관광객 티가 확실히 나다 보니 호객꾼 들은 무조건 꼬였고 그중에서는 우리의 무지를 이용해 사기를 치려는 사람들도 많았다.
내 경험을 토대로 감히 이야기하자면, 쿠바는 위험하지 않다. 위험한 일에 얽히면 위험해지겠지만, 관광지만 다니고 늦게 나가지 않는다면 소매치기 이상의 큰 일을 당할 가능성이 높지는 않다는 것이다. 다만 관광객과 현지인들의 소득 차이가 어마어마하게 높다 보니, 관광객을 통해 한 탕 노려보려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우리에게 50불이면 캐나다에서 둘이 밥 한 끼 사 먹을 돈이지만, 여기 사람들에게는 몇 달은 먹고 살 큰 금액이기 때문이다. 우리를 돈으로 보는 사람들은 정말 집요하게 달라붙고, 사기 수법도 무지하게 다양하다.
쿠바 눈물 편에 대해서는 이후 자세하게 다루려고 한다. 아무튼 쿠바에 도착한 첫날은 저 시가 사기꾼 때문에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가득 생겼다. '이유 없는 호의는 없다'라는 말에는 예외가 있을 수 있겠지만, 쿠바의 길거리에서는 예외 없이 들어맞았다.
그래도 너무 아름다웠던 올드 하바나. 쿠바 현지 분위기에 대충 적응을 하고 나니 그 뒤의 아름다움이 보이기 시작했다. 쉴 새 없이 셔터를 누르고 감탄했던 나의 쿠바!
첫날 저녁은 그 유명한 갈리 카페에서 랑고스타(랍스터)와 까르보나라 파스타를 먹었다. 물가가 어마어마하게 저렴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캐나다의 반값으로 푸짐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랍스터 살을 숭덩숭덩 썰어 넣은 토마토소스가 정말 맛있었다.
걷다 지쳐 아이스크림 하나 물고 멍하니 거리를 보고 있으면 보이는 풍경. 재잘재잘 떠들다 카메라를 든 나를 보면 씽긋 웃어준다. 눈짓으로 카메라를 보여준 후 후다닥 찍은 인물 사진들.
하바나의 밤! 카를로스 까사의 최대 장점은 하바나 구시가지의 가운데에 위치해 있다는 것이다. 창밖으로 보이는 거리의 풍경이 참 마음에 들었던 곳. 밤에는 나가지 못하니 창 밖으로라도 풍경을 보며 사진 정리를 했다.
그리고 내 레전드 쿠바 여행의 하이라이트, 코로나 양성 판정... (너무 슬퍼서 이하 생략)
쿠바 병원에서의 격리기는 더 자세하게 브런치에서 다뤄보도록 하겠다. 나름 돌아보면 추억이고, 또 재미있기도 했던 일주일. 아깝지 않다면 거짓말이지만, 빡빡했던 여행 일정 속에서의 쉼표였기에 소중하기도 했다.
PCR 음성 판정받고 드디어 해방! 오랜만에 씻고 화장하고 원피스도 입었던 격리 해제일. 방에만 있으면서 운동 부족에 코로나 후유증인지 한 시간만 걸어도 지쳤었지만, 그래도 너무 신났다!
예전에 군대에 있는 친구에게 '지금 가장 가지고 싶은 게 뭐야?'라고 물어본 적이 있다. 맛있는 음식을 말하려나, 면회 때 가져가야겠다 생각하고 있던 와중에, '자유'가 가지고 싶다는 답변을 듣고 멍해졌던 기억이 난다. 나의 6박 7일 격리는 사실 군대와는 비교할 수 없이 짧고 편했을 테지만, 그때 친구가 말했던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던 기간이라고는 생각한다. 편한 침대와 휴대폰과 넷플릭스와 과일이 있지만, 어떤 거대한 시스템이 나를 통제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오는 무력감은 또 다른 문제다. 살면서 너무 당연한 듯이 누려왔던 자유로움의 가치를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격리 이후의 하바나 여행은 똑같이 덥고 번잡했지만, 이제는 모든 공기의, 사람의, 풍경의 아름다움을 눈치챌 여유가 생겼다. 어떤 일을 겪든 가지고 있는 것에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의 공간이 생긴 것이다. 가장 적절한 때에, 적절한 휴식을 얻었다는 것에 감사하게 되었다.
격리가 끝난 날, 예쁜 원피스를 입고 올드카 투어에 랍스터까지 야무지게 하바나를 즐겼다. 하바나 올드카 투어를 비롯해, 다시 바라데로로 돌아가 쿠바를 즐겼던 이야기는 하나씩 천천히 기록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