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자꾸 나를 못 불러서 안달인 거야!
하바나의 구시가지를 걷다 보면 가장 많이 듣는 소리는 ‘China(치나)’, 스페인어로 중국인이라는 뜻이다. 어른보다는 아이들로부터, 여자보다는 남자로부터 하루에도 50번은 넘게 듣는 그 단어. 길에서 걸어가도 치나, 택시를 타고 창 밖으로 경치를 구경하다 눈을 마주쳐도 치나, 과일을 사려고 기다리는 와중에도 치나, 나를 중국인이라고 부르는 목소리는 하루 종일 끝이 없다. 처음에는 ‘No, soy Coreana!(아니, 나는 한국인이야!)’라고 일일이 대답했지만 나중에는 그냥 거리의 백색소음처럼 여겨야만 했다.
누군가는 ‘정말 중국인인 줄 알아서 그런 거 아냐?’라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내 국적이 어디든 대뜸 인종을 추측해 단어부터 던지고 보는 것은 당황스럽다. 만약 내가 정말 어디서 왔는지 궁금하다면, ‘어디서 왔니?’라고 물어보면 되는 일인데 말이다. 동양인이 드문 쿠바의 하바나에도 차이나타운은 있을 만큼 중국인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중국인이라고 먼저 불릴 이유는 없다. 더군다나 그냥 지나가는 사람을 두고 ‘치나’라고 소리 지르듯 불리는 건 적응하기 어렵다. 이것도 엄밀히 말하면 인종차별인걸! 나만 보면 China라고 외치는 사람들 덕에, 나는 쿠바에서 반쯤 중국인으로 살아야 했다.
눈을 찢는 제스처도 당했다. 서양인에 비해 눈이 작은 동양인을 묘사하는 손동작인데, 실제로 당하면 정말 당황스럽다.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쿠바에서는 딱 한 번, 그것도 한 박에 20만 원이나 넘게 주고 예약한 바라데로의 5성급 리조트 직원이 우리를 보고 눈을 찢었다. 나를 보자마자 양손의 검지 손가락으로 눈꼬리를 잡아 아래로 당기고, 입은 헤헤 웃는 바보 같은 표정을 지은 다음 양쪽으로 몸의 중심을 옮기며 기괴한 인형 같은 모양을 만들어냈다. 처음에는 웃으면서 ‘No, es muy mal!(아니, 그거 나빠요!)’하고 넘겼는데, 눈치 없이 한 번 더 나를 보고 그렇게 인사를 해서 정색하고 이거 무례하다고 영어로 말을 했다. 손님마다 말을 걸었던 활발한 서버였는데, 그 뒤로는 우리한테 오지 않았다.
인종차별은 정말 정도와 종류가 다양하다. 한 블록을 걸어갈 때 최소 5번은 듣는 치나 소리 외에도, 레스토랑에서 유난히 서비스가 늦거나 우리의 눈짓에 답을 하지 않을 수도 있고, 심하면 폭력을 당할 수도 있다. 나는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냥 쿠바인들의 중국인이 되는 것에 그쳤다.
사실 쿠바에서 겪었던 인종차별이 언어적/비언어적 표현에만 그쳤던 이유를 굳이 찾아본다면, 여기서 동양인은 차별의 대상이기보다는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코로나 이전에는 동양인 관광객이 꽤나 있었다고 들었지만, 내가 여행했던 2022년 5월 초중순의 쿠바에는 단 한 명의 한국인도 보지 못했다. 일본인은 아예 보지 못했고, 바라데로 리조트에 머물면서 중국인을 몇 명 본 게 전부였다. 코로나가 시작된 지 2년이 넘었고 그 사이에는 거의 보이지 않던 동양인이, 갑자기 하바나 시내를 휘젓고 다니니 신기할 만도 하다.
‘치나’라는 단어 또한, 인종차별이라는 것을 모르고 그냥 관심을 끌기 위해 사용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분위기 상 우리를 기분 나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냥 한 번 돌아봤으면 좋겠어서, 아니면 옆의 일행들과 낄낄거리기 위해 던지는 말인 것이다. 동양인을 대표하는 단어라고나 할까. 치나라고 부르다가도 내가 막상 실제로 말을 걸면 부끄러워하고, 또 이후엔 친절하게 묻는 바를 답해주곤 했다.
나름 재미있었던 것은, 이렇듯 동양인들은 호기심의 대상인 것과 더불어, BTS와 블랙핑크의 영향으로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는 것이다. 내가 예쁘고 못 생기고를 떠나 그냥 인종이 같다는 사실 자체로 나를 거의 동경의 눈빛으로 바라보는 여자 아이들이 많았다. 지나가면 고개를 돌리면서까지 쳐다보고, 인사를 하면 부끄러워서 도망치다 손을 내미는 예쁜 아이들이었다.
바라데로에서는 리조트에서 밥을 먹고 있는데, 한 아이의 어머니가 다가와 혹시 괜찮으면 아이들과 사진 한 장 찍어줄 수 있겠냐는 부탁을 하시기도 했다. 두 명의 귀여운 아이들은 BTS 팬이었는데, 휴대폰 배경화면은 뷔였고 나한테 어떤 멤버를 가장 좋아하냐고 물었다. 나는 사실 누가 있는지 잘 몰라서 그냥 나도 뷔 좋아한다고 대답했다는... 다음날 신기하게도 그 어머니가 우리를 또 찾으셔서,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어주고 선물용으로 가져온 BTS 스티커를 넘겨주었더니 정말 좋아했다.
쿠바에 한국인으로서 처음 도착했을 땐 나에게 쏟아질 수많은 관심에 조금 당황스러울 수도 있다. 특히 당신이 예쁜 비치 원피스를 차려 입고 돌아다니는 여자라면 더더욱. 하지만 내가 여행했을 때 쿠바는 다른 국가에서 경험할 수 있는 'aggressive'한 인종차별은 드물어 보였다. 애초에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엄격하게 금지되는 나라니까. 다만 'China'소리를 들을 마음의 준비만 해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