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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다영 Aug 02. 2022

하바나에서 만난 사기꾼 이야기(상)

‘오늘은 정부에서 공인한 시가 반값 판매일이야!’     


 하바나에 도착해 짐을 풀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 설레는 마음으로 거리에 나선 첫날이었다. 처음 보는 생소하고도 아름다운 광경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던 나는, 누가 봐도 하바나에 처음  여행객이었다.


긴 팬데믹 이후로 오랜만에 찾아온 동양인이 신기한지, 길을 걸어갈 때마다 말을 거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어떤 인사를 받고 어떤 인사를 무시할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아서, 일단은 눈을 마주치고 말을 건네는 사람마다 일일이 대꾸하며 반겨주었다(나중에 알았지만, 이렇게 사람들을 친절하게 대하고 다니면.... 사기꾼의 표적이 되기 쉽다!).



긴 원피스를 걸쳐 입고 구시가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내가 포즈를 다 취할 때마다 옆에서 곱슬머리에 살집이 있는 한 언니가 영어로 너무 예쁘다, 최고다 감탄사를 연달아 날렸다. 한참을 옆에 서서 칭찬을 해주니 머쓱한 마음에 Gracias! 를 외친 후 그 자리를 떠나가려고 하는데, 언니가 갑자기 다가와 영어로 말을 걸었다.      


"Is this your first time here in Havana?(하바나는 오늘 처음이야?)"    


"Si, hoy es mi primer dia en La Havana!(응, 오늘이 하바나에서의 내 첫날이야!)"


쿠바에 와 짧은 스페인어로 대화하는 데에 한창 재미 들려있던 나는, 반갑게 영어로 말을 건네는 언니에게 스페인어로 대답했다. 그랬더니 언니가 세상 친절한 웃음을 지으며 ‘그럼 오늘 5 2일이 특별한 시가 판매일인  알고 있었어?’라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때 머리를 굴려 생각해보니, 오늘이 특별한 시가 판매 날이라는 것을 집까지 걸어오면서  번은 넘게 들었었다.  번은 짐을 옮겨  천사 같은 아저씨에게서,  뒤로는 우리에게 말을 건네는 사람들에게서 말이다.




유심이 없으면 와이파이를 찾아 인터넷을 연결해야 하는 쿠바는, 어딜 가든 반드시 다음 목적지의 주소를 미리 알아 놓아야 한다.  중요한 것을 깜빡한 우리는 하바나에 도착하자마자 무거운 짐을 끌고 와이파이 존을 찾아다녀야 했다. 이때 거리에서  아저씨가 나타나, 우리가 머무는 까사 주인에게 전화를 걸어 주소를 받고 직접 목적지까지 데려다주었던 적이 있다. 그때 아저씨가 우리에게 자꾸 오늘이 시가 반값 판매일이라고 홍보를 했었다. 아저씨는 우리에게 자꾸 시가를 같이 구매하러 가자고 했는데, 그때는 짐이 너무 겁고 땀이 나서 일단 씻고 싶은 마음에 전부 거절했다.


이렇게 오늘 하바나에서 만난 사람들  대부분이 자꾸 시가 이야기를 하길래, 언니의 말을 듣고서는 ', 오늘이 시가를 파는 특별한 날이구나!'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내가 하바나에 도착한 날이  시가를 저렴하게 판매하는 날이라니!


나는 흡연을 하지 않지만, 쿠바에  김에 시가  개를 구매해  생각은 있었다. 한국에서 만날 친구들에게 하나씩 선물하면 부피도 크지 않고 의미 있겠다 었기 때문이다. 내가 조금 관심을 보이니, 언니가 우리를 안심시키려는  설명을 덧붙였다.


"원래 공장에서 나오는 시가는 상점에 가야 살 수 있는데, 정부에서 매달 2일만 일반 사람들도 시가를 판매할 수 있도록 허락해줬어. 일반인들이 판매하는 거니까 더 저렴하게 줄 수 있으니, 관광객들한테는 오늘 구매하는 게 최고지!"    


언니의 적극적인 설득과 더불어, 어차피  시가라면   실물이라도 보고 가면 좋겠다 싶은 마음이 조금씩 었다. , 오늘밖에 저렴하게 판매하지 않는다고 하니, 직접 봐서 나쁠 건 없겠다는 판단이었다.




일단은 경계를 풀지 않고 언니를 조금씩 따라가 보았다. 다행히 목적지는 대로변 근처의 1층이었고, 바로 앞에는 아이들도 놀고 있어 조금 안심이 되었다.



건물 안쪽으로 들어가니  남자가 ‘Cohiba’라고 쓰여 있는 주황색 박스에 담긴 시가를 내놓고 있었다. 남자는 나와 일행한테 코히바 시가가 쿠바에서는 최고로 좋은 시가라며, 자기들은 원래 500불짜리 박스를 250불에 판매하고 있다고 자랑을 했다. 만약  커플이 길에서 대뜸 시가를 반값에 준다고 하면 의심부터 했겠지만, 여태 사람들이 자꾸 시가 반값 판매일이라는 말을 해서 그런지 '되게 싸게 파네'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남자는 시가 품질을 확인시켜주겠다고, 시가가 딱딱하면 좋은 것이라며 직접 만져보게 해 주었다. 나는 시가를  모르지만, 그냥 드려 보았을 때는 안쪽 시가 잎이 단단하게 매여 있는 것을 느낄  있었다.  시가를 털었을  가루가 떨어지지 않아야 한다고 말하며 흔들기도 하고, 정품이라며 안에 붙인 스티커와 패키지를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시가  개비 정도를 사갈 생각이었지, 20개비가  250불짜리  박스는 전혀 필요가 없었다. 옆에 있는 개들이 코히바 시가의 가격을 물으니, 이건 150달러라고 답했다. 원래는  박스를 자꾸 팔려고 했던  같은데, 우리가    사려고 하니 그렇게 탐탁지는 않아하는 모습이었다.


사실 원래의 나라면 인터넷으로 '쿠바 시가  사는 ' 이렇게 폭풍 검색을 해보고 구매를 결심하든 했을 텐데, 앞서 말했듯이 쿠바는 인터넷이 안된다. 와이파이도 없고, 주위에 물어볼 사람도 없고.


일단은 숙소에 가서 검색을 하고 오자 마음을 먹고 남자에게 조금만 기다려달라, 다시 오겠다고 말을 하니, 갑자기 우리를 재촉하며 20 뒤에는 저렴한 시가 판매가 중지된다고 말을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뻔한 수법이기는 하지만... 마침 시간도  5 40 정도여서 , 6시에 영업이 대부분 끝나니 여기도 마찬가지겠구나라고 짐작만 했다.      


 핑계를 댈까 싶어 지금 현금이 그만큼 없다, 나중에 다시 오겠다고 다시 말을 해보기도 했다. 그런데 꽤나 친절하게도 남자는 ‘그럼 우리가 너가 사는 까사까지 가서 앞에서 기다릴게라는 배려를 보여주었다.


이렇게까지 하는데  사기도 뭐하고, 가격도 나쁘지 않고. 일단 일행이랑 얘기를 나눠보았는데, 어차피 시가를  거면 그냥 오늘 세일할  사는  낫다는 결론이 났다. 150불을 둘이 나누면  사람당 7  정도인데, 예전에 검색하다 흘끗  괜찮은 쿠바 시가의 가격도 5 원은 넘으니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명품 시가  개비에   정도라면 나름 괜찮아 보였다. 




어디선가 중남미 여행할 때 흥정하는 법을 보았는데, 절대 물건을 사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이면 안 된다고 했다. 그래서 마음속으로는 이미 살 생각을 다 해놓았는데도, 고민하는 척을 하며 150달러 말고 120달러를 불러 보았다. 사실 이렇게 되면 정가의 60%, 제시한 가격의 20%를 깎은 건데, 우리가 계속 시간을 끌어서 그런지 남자가 머뭇거리다가 제안을 받아들였다. 게다가 원래는 USD로 120불이었는데, 우리가 캐나다달러밖에 없다고 하니 이것도 마지못해 승낙해주어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우리가 작은 박스만 CAD 120에 산다고 하니 남자는  알겠다면서 박스 위에 스티커를 붙였다. 설명하기를, 이 스티커는 정품을 인정해주는 스티커인데, 한 번 붙이면 뗄 수 없으니 마음을 바꾸어도 무조건 구매해야 한다고 했다. 이때 조금 찝찝하기는 했지만 별 수 있나! 일단은 알았다고 대답을 하고, 돈을 주기 위해 남자와 함께 우리가 머무는 까사로 걸어갔다.  



까사로 돌아가는 길은 다시 생각해봐도  이상했다. 가는 길에 남자의 동네 친구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우리를 보며  웃고 떠들었고, 남자는  친구들을 보며 환호를 하고 농담을 주고받았다. 하루 종일 온갖 캣콜링과 사진 요청과 말을 거는 사람들에게 지쳐있었던 나는 그냥 현지인이 동양인을 앞세워 걸어가니 그런가 보다, 했는데, 다음 브런치 에서 설명하겠지만.... 알고 보니   이유가 있었다!



    

하바나 구시가지는 그렇게 크지 않다. 5 정도 걸으니 우리  앞에 도착해서, 일행과   중에  명이 올라가서 돈을 가져오기로 했다. 일행은 나와 남자 둘만 거리에 두는 것이 불안했는지, 자기가 아래 있을 테니 내가 위에 가서 돈을 찾아오는 것은 어떻냐고 말을 했다. 알겠다고 대답하고 까사로 올라가 돈을 챙겼다.


까사에서 나오는 길에 주인인 까를로스를 거실에서 마주쳤다.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하고, 혹시 원래 쿠바에서의 시가 시세는 어떤지 궁금해 까를로스에게 ‘시가를 사려고 하는데, 120불이면 괜찮을지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갑자기 까를로스의 눈이 커지며, ‘안돼!’ 외치는 것이었다! 주방에 있던 까를로스의 아내 일리아나까지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 거실로 나와 'No, no, no!' 반복했다. 처음에는  구매를 말리는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알고 보니,  시가.... 완전히 짝퉁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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