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슬란드 2주살기 : 소박한 하루
아무 일정도 없는 날엔 뭘 할까?
에어비앤비로 예약한 집은 다운타운 중심가에 위치했는데도 정말 넓고 쾌적하다. 하루에 27만 원 정도인데, 높은 아이슬란드 물가와 위치를 고려하면 꽤나 좋은 집을 잡은 셈이다.
한국엔 오직 에이비앤비를 위해 꾸며진 오피스텔형 숙소가 많지만, 레이캬비크의 이 집은 ‘진짜 현지인이 사는’ 집이다. 아주 예전부터 누군가가 살아온 흔적이 가득하다. 벽엔 지금은 훌쩍 큰 아이의 어릴 적 사진들이 붙어 있고, 주방의 무쇠팬은 100년도 더 된 듯하다. 벽장 속엔 앨범이 겹겹이 쌓여 있고 벽에 걸린 그림은 아주 오래되어 보인다.
외국의 집들이 대부분 그렇듯 노란 간접등이 여러 개라 저녁엔 분위기가 더 좋다. 아기자기한 소품들도 많고, 할머니댁 냄새도 나 며칠 사이 이 집에 정이 푹 들어버렸다.
방도 정말 아늑하다. 건조하기만 하고 따뜻하지는 않을 거라는 예상을 깨고, 라디에이터를 5로 맞추면 훈훈한 공기가 가득해진다. 나무와 맞은편 집들이 보이는 큰 창으론 새벽과 저녁 파란빛이 들어온다. 호텔 침구 못지않은 침대와 이불, 다정한 나무 가구들이 예쁘다!
아이슬란드 외식 물가는 한국의 2-3배이기 때문에 우리 가족은 이민가방 하나를 먹을거리로 가득 채워 왔다. 다행히 시내에 있는 크로난, 보누스 마트의 물가는 한국과 거의 비슷하기에 맛있는 음식을 가득 해먹을 수 있었다.
특히 감자와 당근, 사과와 오이가 맛있었다. 양파와 파, 마늘은 덜 익은 채로 수입해 들어와서 그런지 향이 세지는 않아 아쉬웠다. 소시지도 하나 사두면 김밥, 파스타, 감자볶음 등 여러 모로 활용할 수 있다!
장기여행 시 한국에서 가져오면 좋을 식재료 :
코인육수, 김밥김, 고춧가루, 고추장, 된장, 쌀, 참치, 김치양념, 조미김, 배홍동 소스, 짜장소스
크로난에서는 두부도 팔아서 된장찌개, 고추장찌개에 넣어 야무지게 먹었다. 배추도 있어 가져온 김치양념에 고춧가루와 함께 비벼 먹었더니 훌륭한 겉절이가 되었다!
현미는 가져올까 고민하다 챙겼는데, 여기서 쌀을 사는 것보다 훨씬 맛있어서 좋았다. 마트에서 15,000원짜리 우둔살을 사서 무쇠팬에 구워 먹으니 부드럽고 든든했다.
한식 말고 파스타와 빵을 먹기도 했다. 루꼴라는 한 팩에 4,000원 정도였고, 마트에 있는 파스타면과 모짜렐라 치즈, 바질페스토로 맛있는 한 끼를 요리했다.
또 한식이 그리울 즈음 먹은 짜장밥과 고추장찌개. 당근, 양파, 감자, 오이 등 야채는 아주 풍부하니 양념만 있으면 뭐든 만들어 먹을 수 있다!
아침은 요렇게 간단히 뚝딱 해결했다. 강력 추천하는 ‘스키르’는 아이슬란드 요거트인데, 맛도 다양하고 적당히 꾸덕해 아침으로 제격이었다. 딸기와 블루베리 맛이 제일 맛있었고 코코넛, 크림브륄레 맛도 있었다. 단백질 함량도 높고 가격도 몇 천 원 정도라 빵에도 발라 먹고 아몬드도 넣어 먹으며 거의 매일 먹고 있다.
동네를 약간 걷고 잘 먹다 보면 작은 이벤트가 필요할 때가 있다. 이럴 때는 동네 수영장에 가보는 것을 강력 추천한다! 아이슬란드 수영 문화는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에 등재될 정도로 유명한데,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보내는 멋진 방법이다.
집에서 걸어서 20분 정도면 동네 수영장에 갈 수 있다. 안에는 따뜻한 노천탕이 여러 개가 있는데, 풀장의 사진을 찍을 수는 없어 구글맵 이미지를 넣어 두었다. 얕은 풀은 37도 정도, 레일이 있는 큰 풀은 36도 정도 되는 듯하다. 아예 수영을 즐기기엔 약간 차가워서 우리 가족은 얕은 온천풀에 몸을 담그고 시간을 보냈다.
옥상에는 39도 정도 되는 뜨거운 핫터브가 있고, 또 실내에는 경기에 쓰이는 3m짜리 풀과 어린이 풀장이 있다. 할아버지 손잡고 온 세 살배기 아이랑 물안경 벗기기 놀이를 하며 신나게 웃고 떠들며 몸을 풀었다!
그리고 또다시 시내 즐기기. 아이슬란드 핫도그가 유명하다고 해서 찾아간 두 번째 핫도그 집 Víkinga Pylsur에서는 풀드포크를 먹었는데, 잡내도 안 나고 기름기가 가득해 부드럽고 정말 맛있었다.
시내를 걷다 오래된 12 Tónar라는 LP 음반샵도 들르고, 멋진 수공예 직물들을 파는 상점에도 들어가 보면서 슬슬 집으로 향했다.
잔잔히 산다는 건 이런 것일까! 여기서 살면서 일찍 일어나 8시간 근무하고, 오후에는 수영을 하고 식료품점에 들러 요리를 하면 좋겠다. 긴 밤은 뜨개질과 영화로 채우고. 여긴 좋은 차도 집도 대학교도 명품도 큰 힘이 없으니 한국처럼 조급해하지 않고도 잘 살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