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슬란드 2주살이 : 비 오는 날 거대한 빙하 투어
아이슬란드 여행을 꿈꾸며 가장 바랐던 것들 중 하나는 빙하 투어. 북극곰이 올라선 빙하, 자꾸만 녹고 있다는 빙하는 오랫동안 여러 이미지로 많이 접했지만 실제로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다른 나라는 긴 시간 하이킹을 하거나 헬리콥터를 타야지만 빙하를 볼 수 있는데 아이슬란드는 운 좋게도 차를 타고 걸어 들어가 빙하를 볼 수 있다.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지!
하지만 빙하 보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적당히 아이젠만 끼고 오를 것이라는 예상과 다르게, 4시간 투어 중 준비만 거의 2시간이 걸렸다. Arctic adventures라는 회사에서 예약을 했고 노란 스쿨버스 앞에서 정해진 시간에 만났는데 사람이 많아 안전모 색을 기준으로 두 팀으로 나눴다. 한 명씩 나무 의자에 앉아 지금 신고 있는 신발이 적합한지, 새로 등산화를 대여해야 하는지를 확인받았다. 방한 부츠를 신고 간 나는 부적합 판정을 받았고 결국 사진에 보이는 낡은 등산화를 빌려야 했다. 다행히 대여 비용은 15,000원! 그래도 발목을 튼튼하게 받쳐 주는 신발을 신으니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안전모를 쓰고, 강아지에게 채우는 것과 동일한 구조의 하네스를 착용하니 마지막 관문은 아이젠이었다. 스쿨버스가 있는 곳부터 빙하까지는 약 20분 거리였기에 우리는 기다란 낫처럼 생긴 장비에 아이젠을 끼고 먼저 이동했다. 저 낫(이름을 잘 모르겠다!)은 사실 쓸 일은 거의 없었고, 탐험가처럼 보이는 사진을 찍는 데에만 유용하게 쓰였다.
그런데 이동하는 중간부터 갑자기 생각보다 거센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내 패딩은 스키 패딩이지만 방수가 되지 않는 재질이라 겉면이 계속 빗방울로 축축해졌다. 들고 간 카메라 렌즈에도 자꾸 빗물이 묻어 안경닦이로 닦아내면서 저벅저벅 빙하로 향했다. 빙하 탐험을 하고 싶은 분들이 있다면 신발은 가볍게 신고 여기 와서 대여를 받는 것을 추천하고, 꼭 방수가 되는 옷을 입고 오길 바란다!
아이젠을 차는 것도 생각보다 고난도였는데, 한라산을 오를 때 신는 아이젠처럼 후다닥 고무만 끼우면 되는 것이 아니라 긴 끈 형식이었다. 빗속에서 가이드님이 알려주신 방법대로 하나하나 묶으니 추위 속에서도 땀이 뻘뻘 났다. 거의 한 시간 반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빙하 한 번 보기 참 어렵다.
드디어 멀리서 보이는 빙하의 말간 얼굴! 날씨가 좋았다면 더 파랗게 보였겠지만, 생각보다도 점점 더 거대해지는 빙하를 마주 보니 힘들었던 마음이 사라지고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사진으로 담으면 그냥 얼음덩어리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그 크기가 어마어마하다. 아래 사진 속 사람의 크기와 비교해 보면, 저 빙하 한 덩이가 건물 한 채만큼 크다는 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백 년 전 폭발한 화산재가 빙하 위를 덮고 있어 마치 수묵화의 한 장면처럼 보인다. 날씨가 흐렸음에도 수천 년의 세월을 담고 있는 딱딱한 빙하는 청자처럼 푸른빛을 보였다. 오히려 안개가 잔뜩 낀 덕분에 신비로운 분위기가 느껴지기도 했다.
빙하는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 딱딱하다. 미끄러운 곳에서는 성난 펭귄처럼 걸으며 아이젠의 스파이크를 얼음 위로 박아 넣어야 한다! 가이드를 따라 한 줄로 서 천천히 이동했는데, 가까이 갈수록 거대해지는 빙하를 눈으로 담으면서도 사진도 남기느라 애를 먹었다. 그만큼 정신없이 아름다웠다.
빙하 탐험 코스 중 하나는 엄청 깊은 크레바스에 들어가는 것. 얼음벽 아래로 내려가 멋진 낫을 들고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실제로 몇 미터에서 몇백 미터까지 한다는 크레바스 아래 들어가 있으니 진짜 모험을 하는 기분이었다.
다른 빙하는 깨끗하고 푸른 얼음으로만 이루어진 경우가 대부분인데, 우리가 걸어 올라갔던 솔헤이마요쿨은 바스러지는 화산재가 가득 덮여 있어 오히려 뜻밖의 아름다움이 있었다. 얼음의 굴곡과 재의 굴곡이 만들어내는 차이가 절묘하게 어울려 독특한 그림 속에 들어와 있는 듯했다.
빙하 투어의 최종 목적지는 큰 빙하의 첫 번째 꼭대기. 여기 위에 올라서면 그동안 걸어왔던 길이 한 번에 보인다. 여기 빙하 사이로 흐르는 물은 세상에서 가장 깨끗한 물 중 하나다. 장갑을 벗고 손을 담가 찢어질 듯 차가운 물을 마셨다. 비도 맞고 땀도 흘리면서 쌓였던 피로가 녹아내리는 맛이었다.
눈에 보이진 않지만 저 멀리에는 우리가 처음 만났던 스쿨버스가 있는데,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그 노란 버스까지 빙하가 가득했다고 한다. 빙하의 크기는 정말 금방 줄어가고 있었다. 또 몇십 년 뒤에는 내가 밟아 왔던 이 빙하도 몽땅 녹아버리겠지. 교과서에서만 배웠던 기후 위기가 몸으로 느껴졌던 순간이었다.
내려오는 길의 풍경은 또 달랐다. 한 줄로 스파이크를 박으며 내려와, 아이젠을 벗고 흐르는 물에 씻어 정리했다. 무거운 신발과 안전모, 하네스까지 벗어던지면 드디어 긴 여정이 끝났다!
가장 좋아하는 빙하 사진으로 투어를 마무리한다. 이 사진에는 귀여운 나무늘보와 작은 아기곰 빙하가 보인다. 이 두 얼음 조각은 빙하를 밟을 사람들을 기다리며 느릿하게 작아져가겠지.
투어를 끝내니 허기짐이 몰려왔다. 너무너무 배가 고파 빠르게 동네에서 유명한 블랙 크러스트 피자로 이동! 화산재를 반죽에 넣어 도우가 까맣다. 한 판에 5만 원 내외로 정말 비싸지만, 맛은 살면서 먹었던 모든 피자 중 압도적으로 맛있었다.
특히 초록색 피자는 작은 랍스터 친구인 랑구스틴을 올렸는데 살이 탱글 하고, 루꼴라&치즈와 조합이 너무 좋았다. 페페로니 피자도 리뷰에서 추천해서 먹어봤는데, 쌈장 같은 맛이 나는 저 갈색 소스가 바삭한 치즈&페페로니와 어울려 입 안을 달고 짭조름하게 가득 채운다! 느끼할 무렵 올라오는 산뜻한 바질향도 최고.
이 날은 역대급으로 피로가 쏟아졌던 날이었다. 무거운 몸을 끌고 크로난에 들러 과일과 야채, 감자와 소시지를 사고 간단히 안주를 만들어 가족들과 한 잔 하니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그대로 바로 오래오래 잠들었다. 바삭한 빙하에 맨몸으로 오르는 꿈을 꾸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