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장진호 / 글, 김홍주
날도 잘 골랐다. 사우나 스튜디오를 방문한 날은 뜨거운 7월 한낮이었다. 최고 기온 33도. 이곳 저곳 공장이 많은 성수동은 더욱 달아올랐다. 쇳가루가 많아 여름은 더욱 덥고, 겨울은 더 춥다던 문래동 거주자의 얘기가 떠올랐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성수동도 비슷하겠지. 이날 성수동은 이미 사우나였다.
땀을 흘리며 운수회사를 지나치고, 철공소와 구두공장과 구두가게와 알 수 없는 크고 작은 작업실과 공장을 지나쳤다. 그러다 보니 이마트가 나타났고, 학교가 나왔고, 골목에 자리한 시장을 만났다. 스마트폰 내비게이션에 분명 위치를 찍고 가는 길이었지만 자주 보진 않았다. 어차피 초행길, 조금은 길을 잃어도 좋았다. 순간 이동해서 공간만 보는 것은 흥미가 없다. 동네도 함께 보고 싶었다. 동네를 돌다 보니 어느 순간 건물 사이로 목욕탕 굴뚝이 보인다. 내비게이션을 껐다. 오래전부터 저 굴뚝이 사람들에게 그러했듯이, 우리도 굴뚝을 보며 걸었다. 그렇게 굴뚝 그림자를 쫓아 돌다 굴뚝이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며 당황한 순간, 찾던 건물 바로 앞에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굴뚝 바로 밑에선 굴뚝이 잘 보이지 않는 법이다.
보일 듯 말듯 숨은 불친절한 간판과 행사 포스터 하나가 우리를 소심하게 반겨주었다. 그리고 녹슨 계단. 뭐하는 곳인지 알고 찾아가는 우리도 선뜻 오르기 주저되는 계단이 건물 벽을 따라 설치되어 있었다. 안전을 위해 계단을 보강했다고 들었지만 신뢰가 가지 않았다. 어디를 수선했는지 잘 눈에 띄지 않은 탓이다. 오랜 세월 녹슬어 있었을 기존 계단과 이질감이 들지 않도록 완벽하게 보정을 했거나, 계단을 불안해하는 우리를 위해 사장님이 던지신 농담, 둘 중 하나였을 테지. 어쨌든 우리는 떨어지지 않고 무사히 3층에 올라갈 수 있었다.
이 글 제목을 '사장님도 멋졌다'로 하고 싶었지만 꾹꾹 눌러 참았다. 글을 쓰는 나는 남자인데, 혹시나 여자나 동성애자로 오해받을까 봐. 여자로 오해받는 것은 괜찮지만, 동성애를 '비정상'이라고 이야기하는 '정상'인들은 솔직히 좀 무섭다. 내 어쭙잖은 말빨(?)로 그들을 상대하는 것은 가당찮은 일이다. 오해받을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제목을 '사장님도 멋졌다'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실이었다. 같은 남자 입장에서 봐도 샘이 날 정도로. 특히 단정하게 빗은 흰머리가 인상적이었는데, 나이 들어 보이는 새치 같은 흰머리가 아니라 댄디하고 여유 있음을 보이기 위해 선택한 액세서리 같았다. 흰머리가 없었어도 충분히 멋진 분이었겠지만 그것이 있음으로 더욱 빛나고 돋보이게 해주었던. 마치 이 건물의 오래된 굴뚝처럼. 물론 본인은 그 멋을 잘 모를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이미 아는 눈치였다.
이날은 (스스로 잘생김을 이미 알고 계신) 김성재 대표님 혼자 공간을 지키고 계셨다. 공동 대표님과 다른 스텝들은 자리를 비우신 듯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떠난 자리를 혼자 지키고 있는 경우는 둘 중에 하나다. 왕따이거나, 가장 싸움을 잘 하거나. 그중 어느 쪽인지 물어보진 못했다. 다음에 혹시 이 분을 만나면 물어서 알려주시길.
뜨거운 한 여름 햇볕과 온기가 창을 타고 가득 들어왔다. 예전 남자 목욕탕이던 이 곳은 한때 구두 공장으로 변신했다가, 지금은 스튜디오 작업실로 탈바꿈했다. 그들은 강남에서 이곳으로 옮겨왔다. 강남에 있는 흔해빠진 스튜디오를 벗어나 조금은 색다른 공간을 원했고, 이왕이면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곳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애초부터 목욕탕을 생각하며 찾아 다닌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4달간 골목 골목 부동산을 돌다 이곳을 만났고, 목욕탕 굴뚝과 창 밖 풍경에 반해 결정하게 된다. 지난 겨울이었고, 추운 겨울 내내 망치를 두드리며 공간을 다듬었다.
고생스러웠겠지. 강남 인근에 잘 꾸며진 지하 스튜디오가 그리 많은데, 차 다니기도 쉽지 않은 골목 구석 시장 옆 목욕탕 3층이라니. 아마도 작업하는 겨울 내내 스텝 중 누군가는 '내가 왜 이러고 있나' 하며 후회했을지도 모른다. 그럴 땐 담배도 거들어야 한다. 창 밖 기와를 바라보며 하얀 입김인지 담배 연기인지 모를 한숨을 섞어 자주 내뱉었을 거다. 그때 스텝들 눈치를 보던 대표님 머리가 하얗게 변했을까. 그것도 물어보지 못했다.
"저희는 이곳이 멋지다는 걸 잘 모르겠는데, 오시는 분들이 멋지다고 해서 그때 알았어요"
사장님은 멋쩍게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물론 그 말을 믿진 않는다. 그 추운 겨울, 몇 달간 손 때 묻혀가며 수 많은 고민과 토론을 거쳐 다듬었을 공간을 두고 가당찮은 말인가. 장소 선정, 인테리어까지 고생한 이야기를 술술 하면서도 결국은 별스럽지 않다는 뉘앙스로 끝을 맺는다. 이 분 보통이 아니다. 조심해야겠다.
함께 옥상에 올라갔다. 지금 보다는 봄, 가을 풍경이 훨씬 멋지다며 아쉬워하셨지만 뜨거운 한 여름 공기도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주변 건물들과 오랫동안 조화를 이루었던 동네의 랜드마크, 목욕탕 굴뚝 아래서 한참을 서성이며 동네를 바라보았다. 원래 목욕탕은 여름철이 비수기다. 그래서 대표님이 오늘 한가하신 모양이다.
이곳에 계약이 작년 겨울이라고 하니, 이제 올 여름과 가을만 지나면 사계절을 한바퀴 돌게 된다. 오래된 건물 특성상 난방과 냉방에 애로가 있어 올 겨울엔 화목난로를 설치할 예정이라고 하셨다. 아마 자연스럽게 화목난로에서 피어난 연기는 목욕탕 굴뚝에 연결되어 하늘로 올라갈 거다. 동네 주민 누군가는 그 연기를 발견하고 주섬주섬 때수건을 챙겨 목욕탕에 오실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잘생긴 흰머리 사장님을 만나게 되겠지. 뭐 걱정할 필요가 없겠다. 이 분, 보통이 아닌걸 아니까.
+ 서울시 성동구 성수동2가 338-12 3층
+ 스튜디오, 전시, 이벤트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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