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삼일 프로젝트 Jul 09. 2015

권태

글, 김홍주


때로 그들의 연애는 강박에 시달리는것 같았다.


함께 할수 있는 시간이 나면 어떻게든 함께 있어야 하고, 함께 해야 하고, 서로에게 표현해야 했다. 함께 있음에도 나른함이 끼어든다면 그것은 위험의 징조처럼 여겨졌고, 그럴 때면 여지없이 '사랑해'라는 감정의 토로나 '사랑해?'라는 의미없는 질문으로 공백을 메꿨다.


그때 사용된 '사랑'이라는 단어는 우리가 쉽게 유추하는 그 의미라기 보다, '난 너가 옆에 있어서 절대 나른하거나 무료하지 않다'는 뜻으로 해석되는게 옳아보였다. 사랑이 바뀌는 것은 강박의 대상이 바뀌는 것일 뿐이었다. 어차피 대상이 중요하지 않았다. 삶의 무료함을 채울 건더기가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먹고 남은 그것들은 싱크대 수채구멍에서 딩굴며 잊혀진다. 늘 그 과정은 자연스럽게 인식되었고, 진짜 사랑하지 않았던것으로 애둘러 표현되었다. 스스로를 마치 '진짜 사랑'을 찾기 위한 순례자 쯤으로 포장하며, 언젠가는 수세기 감춰졌던 성배와 조우하며 할렐루야를 외치는 날이 반드시 올거라는 믿음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 믿음의 허약함은 대상이 아닌 권태에서 이유를 찾아야 한다. 

ⓒ 화양연화



가끔 생각한다. 현대인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권태'가 아닐까 하고.
쉴새없이 무언가를 봐야 하고, 읽어야 하고, 들어야 하고, 남겨야 하는 것은 그 무언가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우리의 권태로움를 피하기 위한 몸부림처럼 느껴졌다. 여행 또한 그들에게는 권태를 피하기 위한 하나의 선택처럼 보였다. 어쩔수 없이 다가오는 여행의 여백은 멋진 풍경과의 만남을 위한 인내의 대상으로 추락해버리곤 했다.

권태에서 사람들은 비참하고 슬픈 자기에 직면한다는 파스칼의 표현에 동의한다면, 우리가 권태를 두려워하는 것은 '실제 자신과 직면하기가 두려운' 것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저마다 '진정한 나'를 찾겠다며 외쳐 대지만 정작 본질의 나와 마주하는것을 두려워한다. 어떻게든 피할 방법을 찾고, 외부적 시각과 청각과 촉각으로 콘크리트를 양생하듯 부어버린다. 두꺼운 외피로 굳어가는 회색빛 더미 속 어느 방에 감춰버린다. 스스로도 만나기를 두려워하고 창피해 하며 가는 길을 막아버렸다.

그렇게 권태는 길을 잃었다.그리고는 말한다.

'나를 모르겠어요'




페이스북에서도 만날수 있어요.

> 231프로젝트 페이스북


글이나 사진은 메일로 보내주세요.
> 이메일 : 231@231.co.kr

매거진의 이전글 여행의 마지막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