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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삼일 프로젝트 Aug 21. 2015

9명의 수다 #책

AZIT9 다섯 번째 이야기 @사우나스튜디오

여행처럼 만난 9명의 수다, AZIT9.

8월 18일 다섯 번째 만남의 자리는 

예전에 소개해드렸던 

성수동 '사우나 스튜디오'에서 진행되었습니다.

목욕탕이 스튜디오로 변신한 멋진 곳이죠.


사우나 스튜디오 소개글
https://brunch.co.kr/@231project/10

이번 주제는 '책'입니다.

곽효정 편집장님이 호스트를 맡아 주셨어요.


참가한 분들에게 

각자 인상 깊은 책이나 최근 읽고 있는 책을 소개해 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누군가 책을 읽어주는 소리를 오랜만에 들어봅니다.

책에 따라, 목소리에 따라 다르게 읽히더군요.



참가자 분들이 소개해준 책과 

직접 읽어주신 한 구절을 소개해드립니다.




곽효정님 -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밀란 쿤데라)
쮜리히에서 프라하로 돌아오는 도중 토마스에게는 자기와 테레사의 만남이 여섯 번의 불가능한 우연에 근거했다는 생각에 일종의 불쾌감이 들었다. 하지만 어떤 사건은 그것의 발생을 위해 필연적인 우연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욱더 의미가 많아지고 더욱더 중요하게 되지 않는가? 오직 우연만이 메시지로서 이해될 수 있다. 필연성에서 발생하는 것, 예측할 수 있는 것, 매일 반복하는 것에는 메시지가 없다. 오직 우연만이 무엇인가를 이야기해 준다. 우리는 우연에서, 마치 집시 여인들이 잔의 밑바닥에 그려진 커피세트의 무늬를 보고 점을 치듯 무엇인가를 읽으려 애쓴다. 그 호텔 식당에 토마스가 나타난 것은 테레사에게는 절대적 우연의 계시였다. 그는 책을 앞에 펴두고 탁자에 앉아 있었다. 그는 테레사를 쳐다보고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꼬냑 한 잔 줘요!” 
(중략)
마술처럼 신비스런 것은 필연이 아니고 우연이다. 사랑이 잊을 수 없는 것이 되자면 처음 순간부터 우연들이 사랑 위에 내려앉아 있어야 한다. 마치 성자 프란츠 폰 아시시의 어깨 위에 내려 앉은 새들처럼.

(P65~67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송동준 옮김)



장진호님 - 태도에 관하여 (임경선)
일을 바꾸는 것은 과거의 나를 완전히 지우는 것 같지만 자신의 본질적 자산은 그 어디에도 가질 않고 내 안에 고스란히 남아 지금 하는 일에 힘이 되어준다. 변화라는 개념은 전혀 새롭거나 화려하지 않다. 변화는 변하지 않는 것에서 온다.

인간관계를 가급적 관리하지 않고 살았으면 좋겠다. 내가 나다울 수 있는 인간관계를 제외하고는 부디 놔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인간관계에서 무리하면 안 되는 이유는 무리한 대가를 언젠가는 상대에게 딱 그만큼 받아내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무겁고 힘든 관계의 서막을 예고한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것을 감당하려고 애쓰는 것은 착한 게 아니라 비굴한 것이다.

관계에서 그 사람의 존재 자체가 주는 기쁨이 가장 크려면,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을 힘을 키워야 한다.

서로를 좋아한다는 증거는 사실 무척 간단하다. 모든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간절히 보고 또 보려고 노력하는 것인데 누군가 한쪽은 그 노력을 언젠가부터 하질 않게 된다.

사랑에서 취해야 할 단 하나의 태도가 있다면 나 자신에게는 '진실함', 상대한테는 '관대함'인 것 같다. 사랑하면 상대 앞에서 자신 있게 무력해질 수가 있다.

정말로 슬픈 것은 한때 서로를 사랑했던 관계가 강자와 약자,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로 변했을 때다.

(태도에 관하여 中 / 임경선 에세이 / 한겨레 출판)


원은영님 - 지상의 양식(앙드레 지드)
우리의 나아갈 길들이 확실치 않아서 우리는 일생동안 괴로워했다. 그대에게 뭐라고 말해야 좋을까? 생각해보면 선택이란 어떤 것이든 무서운 것이다. 의무를 인도해 주지 않는 자유란 무서운 것이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낯설기만 한 고장에서 하나의 길을 택해야 하는 것이니, 사람은 저마다 거기서 '자신만의' 발견을 하게 되는 것이다. 
분명히 말하지만 그 발견이란 오직 자기 자신만을 위한 것이다.

(지상의 양식 中 / 앙드레 지드)
김홍주님 - 공무도하 (김훈)
나는 나와 이 세계 사이에 얽힌 모든 관계를 혐오한다.나는 그 관계의 윤리성과 필연성을 불신한다. 나는 맑게 소외된 자리로 가서, 거기서 새로 태어나든지 망하든지 해야 한다. 시급한 당면문제다. 나는 왜 이러한가. 이번 일을 하면서 심한 자기혐오에 시달렸다. 쓰기를 마치고 뒤돌아 보니, 처음의 그 자리다.

남은 시간들은 흩어지는데,
나여, 또 어디로 가자는 것이냐.

(공무도하 작가의 말 / 김훈)


박영호님 - 존 버거의 글로 쓴 사진 (존 버거)
여인은 새 한 마리를 손에 올려 놓더니, 머리를 흔들고 팔꿈치로 쳐내면서 다른 새들을 쫓았다. 여인이 가슴께로 올려 안은 그 새는, 털이 군데군데 빠지고 탁구공보다 좀 더 작은 둥근 머리는 털이 반쯤 벗겨져 대머리가 되어 있었다. 빵 부스러기를 주었으나 받아 먹지 않았다. 여인이 다른 비닐 봉지에서 무언가를 뒤적이며 찾는다. 그것은 우유가 조금 담긴 아기 젖병이었다. 비둘기의 입을 벌리더니 부리 속으로 몇 방울 떨어뜨려 넣었다. 옥스퍼드가(街)에 쇼핑 나온 한 무리의 사람들이 멈추어 서서 샤프카를 쓴 이 여인을 바라보고 있다. 노숙자 여인이 그 대머리 새에게 말했다. 글쎄, 두터운 벽 너머에 숨겨져 있는 것을 저들이 볼 수 있을까. 하지만 이 풍요한 정원을 꼭 보고 싶어 한다면 보도록 내버려 두지 뭐.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존 버거의 글로 쓴 사진 / 유모차의 여인 / 본문 35쪽)


김한나님 - 수선화에게 (정호승)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 숲에서 가슴검은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수선화에게 / 정호승)
박상환님 - 대성당(레이먼드 카버)
나는 그가 말한 대로 눈을 감았다. “감았나?” 그가 말했다. “속여선 안 돼.” 
“감았습니다.” 내가 말했다. 
“그럼 계속 눈은 감고.” 그가 말했다.
“이제 멈추지 말고. 그려.” 그는 말했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했다.
내 손이 종이 위를 움직이는 동안 그의 손가락들이 내 손가락들을 타고 있었다. 
살아오는 동안, 내 인생에 그런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때 그가 말했다. “이제 된 것 같은데. 해낸 것 같아.”
그는 말했다. “한번 보게나. 어떻게 생각하나?” 하지만 나는 눈을 감고 있었다.
조금만 더 그렇게 눈은 감은 채로 있자고 나는 생각했다.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나는 생각했다. “어때?” 그가 물었다. “보고 있나?” 
나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나는 우리 집 안에 있었다. 그건 분명했다. 
하지만 내가 어디 안에 있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이거 진짜 대단하군요.” 나는 말했다. 

(대성당 中 / 레이먼드 카버)
권지원님 - 불안 (알랭드 보통)
우리의 '에고'나  자아상은 바람이  새는 풍선과 같아 늘 외부의 사랑이라는 헬륨을 집어넣어  주어야 하고 무시라는 아주 작은 바늘에  취약하기  짝이 없다

혹시 남의 애정 덕분에 우리  자신을 견디고 사는 것은 아닐까? 

(불안 中 / 알랭드 보통)


다음 AZIT9의 주제는 '습관'입니다.
각자 자신이 자주 하는 행동과 말의 버릇들을 되돌아보고, 

이야기 나누려고 합니다.
(9월 1일 / 저녁 7시 예정)





+ AZIT9은
- 매월 첫째, 셋째 주 화요일 저녁에 진행됩니다.
- 매회 한 가지의 주제를 정해 이야기를 나누게 됩니다.
- 참석 가능한 9명이  모집되면 마감합니다.

http://azit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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