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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삐꼬 Sep 11. 2023

절에서 찻잎 따 봤니

찻잎 따기 중독 되다


올해 봄에 한창 시골 생활이 바빠지기 시작한 이유는 찻잎 따기를 하면서부터였어요. 학교에서 유학 온 엄마들을 모아 구례 문화 해설 투어를 해 주었는데, 그 투어에서 화엄사의 구층암이라는 암자에서 차를 만드는 스님을 알게 되었더랬죠. 덕분에 5월은 채집의 달이 되었습니다.


같이 유학 온 엄마 중에 수렵과 채집에 능한 분들이 있어 차 프로젝트는 더욱 수월하게 진행되었어요. 한두 번 경험 삼아해보려 하는 것이 아니라 5월, 한 달 동안 꾸준히 올 수 있다면 찻잎을 따게 해 주겠다는 스님의 말에 홀리듯 의지를 다지며 무료 노동력을 제공하기로 단합을 하였습니다.


아이들을 학교 보내고 9시쯤 화엄사로 출발해 11시 30분까지 열심히 잎을 따고 11시 30분 칼같이 공양을 한 뒤, 다시 시간쯤 더 잎을 따는 일정으로 가능한 자주 갈 수 있도록 시간을 맞춰 보았어요. 여러 명이 함께하니 제가 가지 못하더라도 대부분의 평일에는 누군가가 가서 차를 딸 수 있었죠.


찻잎따기 중독 증상 시작

화엄사 구층암의 차나무는 산속에서 자라는 야생 차나무요. 그래서 예쁘게 가꿔져 있는 밭에서 따는, 뭔가 햇살 아래에서 바구니에 한 잎씩 따서 담는 그런 아름다운 모습이 연출되지는 않았습니다. 트레킹화를 신고, 커다란 주머니가 달린 앞치마를 매고, 경사가 있는 지리에서 다리  빡! 주고... 뭐랄까? 좀 더 원초적인 찻잎 따기 모습이 연출되었달까요. (뱀도 두 번 봤어요. "느그들도 내가 무서워 도망갔겠지만, 나도 느그들 보면 무섭거든...")


누군가는 왜 그리 사서 고생을 하냐며 의아해하기도 했지만, 꾸준히 5월 한 달 동안 차를 딸 수 있었던 건 뭐래도 재미있었기 때문이에요. 적게는 두 명, 많게는 네다섯 명씩 같이 가서 차를 땄는데, 시죠? 아줌마들 둘 이상 모이면 심심할 수가 없잖아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찻잎을 따는 느낌에 중독성이 있었답니다. 그 톡! 하고 잎을 따는 느낌... (맛보지 않은 자는 모르는) 나중에는 지나다 찻잎 비슷한 것만 봐도 따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니깐요. (진짜예요.)


그냥 그 톡! 하는 감각이 재미있고 좋아 따기도 하고, 앞주머니에 가득 차가는 잎을 보며 왠지 모를 성취감에 따기도 하고, 하나하나 따는 잎에 나의 바람을 새겨 보기도 하였어요. 그러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차따는 재미에 빠졌더랬죠. 만약 돈을 받고 했으면, 글쎄요... 그렇게 재미있지 않았을 것 같아요.


여유 +1

그리고 노동 후에 맛보는 맛난 절밥도 한몫했다는 것을... 이실직고하겠습니다. 태어나서 절밥이란 걸 처음 먹어봤어요. 채식만으로도 맛난 밥을 먹을 수 있다니! 그리고 밥을 먹은 뒤 사탕 하나 입에 물고 잠깐 툇마루에 앉아 바람을 느끼며 쳐다보는 처마 끝 하늘과 나무는 나에게 하루의 여유 +1을 느끼게 해주는 힐링 포인트였어요.


특별한 경험 +1

스님도 저희가 그렇게 꾸준 나와 약속을 지켜줄 거라고 생각지 않으셨다 하더라고요. 기특하게도 열심히 채집의 삶을 살았더니 나중에 스님이 차를 덖는 체험을 하게 해 주셨답니다. 하루 모여 다 같이 잎을 따고, 다음날 그 잎을 덕고, 그리고 덕은 차를 나중에는 선물로 받았어요. 내가 딴 잎으로 만든 차를 맛보는 경험은 참 특별했습니다.


전에는 커피만 마셨지, 녹차를 즐겨마시진 않았었어요. 그래도 찻잎을 따면서 그 잎에서 나는 달근하면서도 맑은 향을 느껴봐서 그런지 그 이후에는 차를 자주 마시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랬더니 다기를 사고 싶은 충동이...) 또 몸에 좋다는 건 자꾸 하게 되는 나이로 들어서서 그런지 차를 마시며 멍하니 생각을 비우려는 시간도 종종 갖으려 하고 있어요.  뭔가 계획하거나, 보거나, 적어도 는 행위를 하고 있지 않으면 왠지 시간 낭비하고 있는다는 강박 같은 생각을 했었서든요.(물론 지금도...) 거기에서 벗어나 멍하니 뇌에게도 자기만의 시간을 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되돌아보니 저는 구례에서의 삶조금 더 특별해지는 봄을 보냈네요. 유학은 아이들이 아니라 제가 왔나 봅니다.


아이들 데려와 노동력 제공 +0.1 / 스님 정신없음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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