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봄에 한창 시골 생활이 바빠지기 시작한 이유는 찻잎 따기를 하면서부터였어요. 학교에서 유학 온 엄마들을 모아 구례 문화 해설 투어를 해 주었는데,그 투어에서 화엄사의 구층암이라는 암자에서 차를 만드는 스님을 알게 되었더랬죠. 덕분에 5월은 채집의 달이 되었습니다.
같이 유학 온 엄마 중에 수렵과 채집에 능한 분들이 있어 차 프로젝트는 더욱 수월하게 진행되었어요. 한두 번 경험 삼아해보려 하는 것이 아니라 5월, 한 달 동안 꾸준히 올 수 있다면 찻잎을 따게 해 주겠다는 스님의 말에 홀리듯 의지를 다지며 무료 노동력을 제공하기로 단합을 하였습니다.
아이들을 학교 보내고 9시쯤 화엄사로 출발해 11시 30분까지 열심히 잎을 따고 11시 30분 칼같이 공양을 한 뒤, 다시 한 시간쯤 더 잎을 따는 일정으로 가능한 자주 갈 수 있도록 시간을 맞춰보았어요. 여러 명이 함께하니 제가 가지 못하더라도 대부분의 평일에는 누군가가 가서 차를 딸 수 있었죠.
찻잎따기 중독 증상 시작
화엄사 구층암의 차나무는 산속에서 자라는 야생 차나무예요. 그래서 예쁘게 가꿔져 있는 밭에서 따는, 뭔가 햇살 아래에서 바구니에 한 잎씩 따서 담는 그런 아름다운 모습이 연출되지는 않았습니다. 트레킹화를 신고, 커다란 주머니가 달린 앞치마를 매고, 경사가 있는 지리산에서다리힘빡! 주고... 뭐랄까? 좀 더 원초적인 찻잎 따기 모습이 연출되었달까요. (뱀도 두 번 봤어요. "느그들도 내가 무서워 도망갔겠지만, 나도 느그들 보면 무섭거든...")
누군가는 왜 그리 사서 고생을 하냐며 의아해하기도 했지만, 꾸준히 5월 한 달 동안 차를 딸 수 있었던 건 뭐래도 재미있었기 때문이에요. 적게는 두 명, 많게는 네다섯명씩 같이 가서 차를 땄는데, 아시죠? 아줌마들 둘 이상 모이면 심심할 수가 없잖아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찻잎을 따는 느낌에 중독성이 있었답니다. 그 톡! 하고 잎을 따는 느낌... (맛보지 않은 자는 모르는) 나중에는 지나다 찻잎 비슷한 것만 봐도 따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니깐요. (진짜예요.)
그냥 그 톡! 하는 감각이 재미있고 좋아 따기도 하고, 앞주머니에 가득 차가는 잎을 보며 왠지 모를 성취감에 따기도 하고, 하나하나 따는 잎에 나의 바람을 새겨 보기도 하였어요. 그러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차따는 재미에 빠졌더랬죠. 만약 돈을 받고 했으면, 글쎄요... 그렇게 재미있지 않았을 것 같아요.
여유 +1
그리고 노동 후에 맛보는 맛난 절밥도 한몫했다는 것을... 이실직고하겠습니다. 태어나서 절밥이란 걸 처음 먹어봤어요. 채식만으로도 맛난 밥을 먹을 수 있다니! 그리고 밥을 먹은 뒤 사탕 하나 입에 물고 잠깐 툇마루에 앉아 바람을 느끼며 쳐다보는 처마 끝 하늘과 나무는 나에게 하루의 여유 +1을 느끼게 해주는 힐링 포인트였어요.
특별한 경험 +1
스님도 저희가 그렇게 꾸준히 나와 약속을 지켜줄 거라고 생각하지 않으셨다 하더라고요. 기특하게도 열심히 채집의 삶을 살았더니 나중에 스님이 차를 덖는 체험을 하게 해 주셨답니다. 하루 모여 다 같이 잎을 따고, 다음날 그 잎을 덕고, 그리고 덕은 차를 나중에는 선물로 받았어요. 내가 딴 잎으로 만든 차를 맛보는 경험은 참 특별했습니다.
전에는 커피만 마셨지, 녹차를 즐겨마시진 않았었어요. 그래도 찻잎을 따면서 그 잎에서 나는 달근하면서도 맑은 향을 느껴봐서 그런지 그 이후에는 차를 자주 마시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랬더니 다기를 사고 싶은 충동이...) 또 몸에 좋다는 건 자꾸 하게 되는 나이로 들어서서 그런지 차를 마시며 멍하니 생각을 비우려는 시간도 종종 갖으려 하고 있어요. 뭔가 계획하거나, 보거나, 적어도 듣는 행위를 하고 있지 않으면 왠지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다는 강박 같은 생각을 했었서든요.(물론 지금도...) 거기에서 벗어나 멍하니 뇌에게도 자기만의 시간을 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되돌아보니 저는 구례에서의 삶이 조금 더 특별해지는 봄을 보냈네요. 유학은 아이들이 아니라 제가 왔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