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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삐꼬 Mar 04. 2023

시골에서 그냥 되는 건 없다

쪼까 불편해도 허벌나게 웃응께 괜찮치라

1. 다이소에서 십만 원 쓰기

바리바리 싸 들고 왔지만 여기저기 필요한 것 투성이네요. 회사에 다닐 때에는 기본적인 살림을 친정 엄마가 해줬었기 때문에 사실상 내 살림이 처음인 느낌입니다. 꽤 규모 있는 소꿉놀이를 위한 완벽한 준비를 하고 싶은 마음이었나 봐요. 그래서 사고 싶은 것들은 아주 조금의 망설임만 갖고 살 수 있는 다이소로 향했습니다.


약 두 시간쯤 지나서야 개미지옥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고, 그전에 다이소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금액을 결제하게 되었죠. 가장 비싼 품목이 오천 원. 그런데 십만 원이 나왔네요. 부족함 없이 사는 환경이 아이들에게 좋지 않다고 생각해 시골에서 좀 모자란 듯, 불편하게 살아보려 했는데... 정작 애미가 모자라게는 못 사나 봅니다.


그래도 돈 좀 쓰고 왔으니 그중에 꽤 마음에 들었던 아이템 몇 개를 소개해 드릴게요. 갑자기 등장한 코너, 다이소에서 꼭 사야 하는 공간 활용 시골 생활필수품!


(1) 타올걸이거치선반 5,000원

작은 욕실에 선반은 딱 하나. 아무래도 물건 올려놓을 장소가 부족했는데 타올걸이 위에 턱 하니 두면 선반이 하나 더 생겨요. 양 옆의 고리에는 이것저것 걸 수 있으니 너무 좋아요.


(2) 올스텐 옷걸이형 빨래집게 2,000원

중형 옷걸이 하나를 3.5인 가족이 쓰려니 이틀에 한 번은 빨래를 해줘야 했는데요, 이때 빨래 건조대의 공간을 확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어요.


(3) 조립식 신발 정리대 5단 5,000원

신발장이 없어서 뚜껑이 있는 신발장과 고민을 하다가 구매했어요. 출입구 쪽에 놓으니 냄새도 나지 않고, 꽤 많이 신발을 정리할 수 있어서 공간 활용면에서 좋아요.



2. 주방에 세탁기 설치하기


세탁기 설치를 위해 기사님이 오셨습니다. 학교 교무 부장님이 소개해 주신 시설 관리 주무관님이 연결해 주신, 호기로운 의용소방대원으로 추측되는 기사님이셨습니다. (시골에서는 아는 분의 아는 분의 아는 분까지 가면 다 해결되는 것 같아요.)

 

주방에 수도꼭지를 만들어 싱크대의 배수 시설에 연결하여 설치하는 까다로운 작업 탓에 꽤 애를 쓰셨어요. 도중에 일이 잘못되어 한 번 할 작업을 두 번을 해주셔서... 화가 나신 것 같은 분위기를 애써 외면하며 안절부절 세탁기 설치를 보조했습니다.


"시궁창 밑에서 일하려니께 기분 드럽고만."

"......"


자꾸 자리를 피하고 싶어져 결국 남편에게 일임하고 저 멀리서 애들과 놀아주며 설치가 끝나길 기다렸습니다. 무사히(?) 설치를 마치고 나서


"연결 잘 되었고이, 물도 잘 내려갑니다."


하시며 한껏 (순박하게) 웃으시는 표정에서 아까 그 험악한 분위기는 진짜 화가 나셨던 건 아니었구나 싶었어요. 경상도에서 살면서 진한 사투리로 대화하는 모습을 보고 처음에 싸우는 게 아닌가 오해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아따 전라도도 그라네요. 사실 저희 할머니의 사투리도 허벌라게 살벌했는데, 잠깐 잊고 있었나 봅니다.




아무 생각 없이 콘센트를 꽂으면 바로 사용할 수 있었던 전기 제품들도 5kw라는 제한된 용량을 각하고 쓸 수밖에 없습니다. (옆집과 함께) 세탁실에 설치가 가능했던 세탁기도 포복 자세로 두 시간 넘게 공사를 해주 기사님이 있어서 설치할 수 있었고요. 바로 문 앞의 마당도 내가 쓸어야 하고, 분리수거와 재활용도 수거일을 지켜서 내놔야 합니다. 벌하게 싸워대는 길고양이의 격투 소리에 이른 새벽에도 강제 기상하고, 자꾸 거미줄을 쳐대는 부지런한 거미들 때문에 더 부지런하게 거미줄 제거도 해야 하고요.


당연했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은 시골에서는 그걸 위해 지불되는 비용이나 시간이 생각보다 많았어요. 하지만 (고작) 일주일의 시골 생활에서 누린 것들을 생각하면 충분히 넘길 수 있는 작은 불편함 들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일어나자마자 내복에 외투만 걸쳐 입고 마당에서 뛰어 나가 놀아요. 아직 이른 봄에 피어난 로즈메리의 꽃에 찾아와 준 벌도 너무나 반갑고 신기하게 맞아주고요. 오일장에서 키우고 싶어 하던 파리지옥을 사줬더니 먹이를 잡아 주겠다고 잠자리채를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기도 합니다. 길고양이랑 친해질 수도 있고, 밥이 지어질 때 틈나면 신나게 배드민턴도 칠 수 있어요. 뛰지 말란 소리 하지 않아도 되고, 밤에 마음껏 소리 내며 웃고 떠들어도 괜찮습니다. 애들이랑 놀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밀린 빨래는 밤에 돌려도 눈치 보이지 않아요.



아직 갈 길이 구만리 남은 시골 생활이지만 본격적으로 아이들이 학교 생활에 적응하고 저에게도 좀 더 여유가 생긴다면 더 많은 '오길 잘했다 포인트'가 쌓이지 않을까요?


(... 그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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