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레아 페페로미오이데스
파티오에게 친구가 생겼다. 동글동글한 잎이 사방으로 포물선을 그리며 자라는 필레아 페페 로미오이데스이다. 동그란 잎 모양으로 Chinese money plant, UFO plant, Pancake plant 등의 귀여운 별명을 여럿 가졌다. 미국에서는 Pass-it-on plant(나눔 식물)라고 부르기도 한다. 식물이 어느 정도 자라면 같은 화분에서 새로 자라는 새끼 페페를 주변에 쉽게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페페 3세 역시 엄마 페페의 3대째 자손이다.) 페페 3세는 우리 집에 놀러온 채에게 선물받았는데, 우연히도 같이 놀러온 수 역시 채에게 줄 괴마옥(파인애플을 닮은 작은 다육식물)을 들고 왔다. 문득 내 친구들이 이런 애들이라는 것이 좋았다. 한 손에 식물이 담긴 가방을 둘 다 덜렁덜렁 들고와서는 고마워 고마워하며 나누어 가지는 게 너무 귀엽잖아.
좀 더 본격적으로 내 친구들 자랑을 해보자면, 채는 자기가 줄 수 있는 것은 뭐든지 간에 최선을 다해 주는 아이다. 이번 집들이에서만 해도 그렇다. 뻔뻔한 집주인(나) 때문에 집들이에서 음식을 얻어먹지는 못할망정 출장 요리사가 되었는데, 파스타를 만들어 준다고 마늘, 버터, 치즈, 치즈 가는 도구, 심지어 으깬 통후추까지 비닐팩에 포장해서는 두 시간 반 걸려 우리 집까지 와주었다. 맛은 또 얼마나 훌륭한지 모른다. 매번 채가 만든 음식 사진을 보면서 왜 요리사 데뷔를 안 하나 궁금했는데, 이번에 맛을 보고 채는 정말 요리와 관련한 일을 해도 크게 성공할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수에게서는 아주 멋진 가구를 선물받은 일이 있다. 내 침대맡에 든든하게 자리한 사이드 테이블 겸 수납 가구인데, 견고한 오크목에 앞면은 라탄 케인으로 장식되어 더 내추럴한 무드를 가졌다. 한때 목공방에 다니던 수가 집에 책을 아무렇게나 쌓아두고 있던 나를 위해 직접 만들어서 선물해 주었다. 이전에 집을 그리고 나를 어느 정도 내버려 둔 나는 수의 자취방을 보면서 많이 반성하였다. 수의 집은 모두 수의 손에서 나온 목가구와 뜨개 소품으로 가득하다. 정직한 시간과 손때가 깃든 물건으로 채워진 수의 공간은 얼마든 깊고 아름답다.
이렇게 쓰고 보니 나는 아무래도 받기만 하는 사람인 것 같네. 채와 수를 포함하여 나는 언제나 내 주변의 친구들로부터 배우고 받는다. 이 레터의 경우는 진이 재촉해 주었다. 뉴스레터 같은 것 써 봐 경희야! 나 근데 자신 없는데. 에이 뭐래 너 이거도 잘 하고 저거도 잘 하잖아. 그냥 하는 말이래도 좋다. 정말 해볼까? 하게 된다. 그러면 나도 친구들에게 무언가 멋진 걸 내놓으라고 간간이 귀찮게 굴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친구들의 소중한 애정과 관심, 손 내밀어 주는 마음이 있어 종종 빼죽한 나는 귀퉁이가 둥글어진다.
내 창가에 빼죽한 파티오와 둥글한 페페 3세가 나란한 모습이 재미있고 귀엽다. 파티오는 파티오대로 길쭉하고 시원스러운 매력이 있고, 페페는 페페대로 친화력 좋고 사랑스러운 매력이 있다. 파티오는 페페처럼 보다 풍성하게, 페페는 파티오처럼 보다 기세 좋게, 서로 좋은 영향을 받으면서 자라난다면 더욱 좋을 것 같다. 정반대의 얼굴을 가졌지만 아무튼간에 둘이 함께 있으니 외로워 보이지 않는다. 나의 공간은 풍요로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