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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병권 Feb 01. 2023

얀팔라흐와 김상진

한국역사의 가벼움(?)이 아쉽다

유신의 심장을 찌른, 김상진     

여동생에게 전화했다. 매제가 독일친구인데 다음 주에 시댁에 다니러 두 내외가 출발한다고 하길래 부탁 한가지했다.     

혹시 체코 바츨라프광장에 가게되면 프라하의 봄 상징인 학생열사 얀팔라흐와 얀자이츠 표지석사진과 동영상을 찍어오라고.      


1969년 1월 29일.

체코 바츨라프광장, 프라하 국립박물관 앞에 한 청년이 나타난다. 입고 있던 코트를 벗어 난간에 걸쳐두고 준비해온 기름을 온몸에 뿌린다. 그리고 붙을 붙인다. 화염에 휩싸인 그는 바츨라프동상을 향해 뛰어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쓰러진다. 그리고 모여든 사람들에게 자신의 코트안에 있는 유서를 읽게 한다. 그는 구급차에 실려 갔지만 끝내 숨을 거둔다.     


20살 까를대 대학생, 얀팔라흐입니다.     


1975년 4월 11일 

수원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대강당앞 백양나무 잔디밭에 300여명의 학생들이 모여있다. 제3차비상총회겸 학내시위 

곤색바지에 흰색티셔츠를 입은 세 번째 연사가 걸어나와 침착하면서 정열적인 어조로 준비해온 양심선언문을 읽어나간다. 그는 아랫배를 주무르며 선언문 뒷부분인‘이 보잘것없는 생명, 바치기에 아까움이 없노라’에 이르러서 쓰여진 원문과는 달리 “나의 앞으로의 행동에 대해서 여러분은 조금도 동요하지 말고 완전한 이성을 되찾아 우리가 해야 할 바를 명실상부하게.....”  라고 읽는다. 이게 끝이었다.      

길이 20cm의 과도를 꺼내 들었고 칼이 햇빛에 반짝이는 순간 자신의 복부를 찔렀다. 이 과정까지 육성은 고스란히 녹음기로 녹음되었다. 그가 사전에 동료, 선후배에게 부탁한 그대로. 

그는 쓰려졌고 수원 도립병원으로 갔다가 다음날 오전 8시 55분경 서울대학병원으로 올라가는 구급차에서 숨을 거둔다.      


26살 서울농대 대학생, 김상진입니다.


그 어느 누구도 말할 수 없었고 저항할 수 없어 무기력에 빠져있던 1970년대 중반, 박정희유신정권의 절정기에 유신의 심장을 찔러 들어간 것이다.     


<1975.김상진>다큐멘터리를 만들면서 우리역사의 가벼움(?)이 아쉬웠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4.19 김주열, 1970년 전태일열사에 이어 시대를 건너뛴다. 그리고 1980~90년대 열사들로 이어지는 정황들을 곳곳에서 발견하고서부터다. 열사를 연구하거나 언급한 책이나 스쳐 지나가는 스토리에서도 언급이 안되는 경우도 많다. 다행스럽게도 이한열열사 장례식때 문익환목사님의 그 유명한 열사호명 추모사에서는 전태일열사에이어 “김상진열사여”를 불러 주셨을때 얼마나 뭉클했는지 모른다.     


그래 한 가지 작업을 해보려고 한다. 내후년이면 김상진열사가 가신지 50주년.

우선 체코프라하 봄, 얀퍌라흐, 얀자이츠열사처럼 시민들이 공유하고, 기억하고, 주고받는 방법들을 상상하고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1975.김상진> 영화를 출발점으로 가능한 꿈들을, 소소한 열사의 삶과 의미들을 스토리텔링하는 것이다. 자료를 모으고, 이야기 나누다 보면 좋은 실행아이디어들이 나올 것으로 믿는다.      


지금은 옛서울농대 현장에 작은 표지석하나, 그리고 안내판만 덩그러니 놓여있는데 이 공간의 의미를 넘어서 말이다.      


스물여섯 짧은 생애. 

침묵하던 시민들을 깨우기위해  자신을 희생한 한 청년.      

세계사적으로도 드물게 ‘할복하기까지의 과정’을  육성녹음으로 남긴 그 지혜와 안간힘.

그 놀라운 ‘결단’과 ‘역사적 사실’앞에

우리는 열사를 끝까지 기억해야하고 감사함을 느껴야 한다.     


2023년, 이 엉망진창이 된 한국의 민주주의와 마주하며. 

얀팔라흐(좌), 얀자이츠(우), 김상진 열사
체코 바츨라프 광장 두열사 표지석   수원 옛서울농대 김상진열사 할복의거현장 표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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