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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병권 Feb 01. 2023

느티나무 도마

딸아이 입주선물


요리하는 사람의 ‘생각’이 ‘에너지’로 변해 칼끝을 타고 흐를 때 그 노릇을 오롯이 감당하는 존재, 도마.


그 도마가 주방의 크기에 비해 너무 작으면 ‘재물’이 모이지 않는다.

좁은 공간에서 놀다 보면 알게 모르게 마음 폭이 옹색해지고 세상살이가 전전긍긍하게 된다. 그렇다고 너무 크면 마음 또한 흩어져서 재물이 모이지 않는다. 그저 내 형편에 내 마음에 꽉 차면 된다.


느티나무 도마

사람은 명리(名利)를 쫓아 ‘욕심’으로 크지만 느티는 ‘청량함’으로 큰다. 느티나무는 살아가는 방식이 느긋하고, 늠름하다. 느티나무 아래는 서두를 수 없는 느림의 공간이며, 수많은 생명을 끌어안는 어머니 나무다 


딸아이가 서울 금호동 작은 아파트로 살림을 났다. 그동안 원룸생활 여러 해. 좁고 옹색해서 공부하기 만만찮았는데 좀 더 쾌적하게 자리 잡았다. 


입주 선물로 6년전, 안동 느티나무 도마 장인 지영흥선생 영상 제작할 때 선물로 받아놓은 것을 보냈다.  딸이 살림 날 때 주려고 꽁꽁 보관해둔 것이다. 6년전, 도마를 연결고리로 느티나무와 함께 생을 엮어가는 한 남자를 스토리텔링하면서 마음먹었던 일을 이제 마무리한 셈이다. 


겨울에서 봄이 시작될 무렵, 지리산 자락에서 느티나무를 구해 제재소로 가져와 통나무 상태로 야적한다.  나무는 크면 클수록 좋다. 1년여... 나무의 진이 빠지는 시간이다.


통나무를 켜서 안동공방 앞마당에다 쌓는다. 그 상태로 다시 3~5년, 장마, 뙤약볕, 혹한, 눈보라, 비바람

이것을 견딘 나무는 밀도가 뛰어나고 나무 본래의 습성이 그대로 남는다. 동시에 나무가 도마로 태어 날 때 가지고 있으면 '해(害)가 되는 것'들을 다 토해내는 과정이다.


수평을 맞추고 바람이 통하도록 굄목을 씨줄날줄로 댄다.

사통팔달 치우침이 없이 마르도록 하는 과정이다. 비틀림과 균열 방지한다. 도마가 실내와 바깥 온도의 차이를 이겨내는 동력이다. 해인사 팔만대장경판 보관하는 것과 원리가 같다.


지영흥선생은 이렇게 4~5년의 준비과정을 거친 나무로 도마를 만든다.


식재료가 음식이 되기 위해서는 파쇄, 절단, 껍질 제거, 다지기, 대기, 검수, 이동의 과정을 거친다

요리하는 사람의 ‘생각’이 ‘에너지’로 변해 칼끝을 타고 흐를 때 그 노릇을 오롯이 감당하는 존재, 도마


예전에 좀 있다 하는 집 딸, 혼수품 1호

큼직한 느티나무 도마, 단단하고 질기고 물기는 쉽게 마르고, 칼자국이 남지 않고 칼이 밀리지 않는다

움켜쥐듯 여유롭다. 그러면서도 칼을 내치지 않는다. 이 물질이나 세균의 침투를 예방하고 곰팡이도 안 핀다


일체의 화학물질을 쓰지 않은 자연品, 오랫동안 길들이며 내 것이 되는 살림밑천.

택배포장하면서 손맛이 보태지는 것처럼 딸아이의 인생이 맛있어지고 깊어가길 바랬다.


딸아이 전화다.

“아빠, 잘받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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