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 인문학
철도공사장에서
「맞소, 우에 것들이 정신 못채리고 왜놈들허고 똥창 맞대고 돌아가이 나라 꼴이 될 택이 있겄능교.」
그 느닷없는 말에 지삼출은 고개를 후딱 돌렸다. 그 야무진 말에서 무언가 짚이는 것이 있었던 것이다. 지삼출과 강기호의 눈길이 마주쳤다. 서로를 마주 보고 있는 두 사람의 눈이 무슨 말인가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의 입가에는 실바람처럼 엷은 웃음이 내밀하게 번지고 있었다.
「그러요?」
지삼출이 빠르게 하늘을 눈짓했다. 입술을 말려들도록 입을 꾹 다문 강기호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지삼출이 하늘을 눈짓한 것은 <인내천>을 믿느냐는 것이었고, 그건 곧 갑오년 출병을 뜻하는 것이었다.
「반가우요. 어지께보틈 어째 좀 달부다 싶드만이라.」
지삼출은 소리죽여 말하여 가만히 손을 내밀었다.
「나도 이바구 쪼매 들어보고 퍼뜩 그리 맘믹히드마는.」
강기호도 조심스럽게 말하며 지삼출의 손을 잡았다.
두 사람은 서로의 손을 으스러져라고 맞잡았다. 그들은 뜨거운 그 무엇이 팔을 타고 올라 가슴에서 휘도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이 장면은 갑오년에서 10년이 지난 시점, 1904년경.
소설 아리랑 제1권 ‘철도공사장 일꾼’ 편에서 지삼출이 강기호를 만나는 장면이다. 동학농민혁명은 전봉준, 김개남, 김덕명등 지도부들의 죽음과 함께 실패로 끝난 것이 아니라 ‘기반기억’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에피소드다. 두 사람의 만남은 이후 다이나믹하게 서로가 서로에게, 주변 동료들에게 삶의 동력으로 연결된다. 왜적에 대한 지치지 않는 싸움으로 평생을 관통한다.
‘원평백정 동록개’를 만난 이야기를 하러 간다.
2023년 10월 19일, 오전 10시 금구행정복지센터(2층)
금구도서관 길위의 인문학(2023) ‘호남평야의 중심, 김제에서 동학농민혁명의 뿌리를 찾다’
전체 11강중 제8강 강사로 김제시민들을 만난다. 나는 이번 과정에 수강생이면서 동시에 강사로 참여한다.
내게 김제는
‘지평선의 고향’ 보다는 ‘동학농민혁명의 뿌리이면서 동시에 소설 아리랑의 출발지’라는 시·공간으로서의 의미가 더 매력적이다. 물론 전자와 후자는 연결되지만.
지난 2014년 김제강소농 이야기농업학교 교육생들과 함께 지역문화유산투어 일정을 진행했다. 김제와 첫 인연. 그때 원평에서 구미란 무명동학군무덤과 원평집강소와 백정동록개 이야기를 듣고 보고.
운명이랄까.
2017년에 경기 화성을 끝으로 수도권 생활 30년을 접고 원평으로 이사했다.
그리곤 차곡차곡 금구·원평, 정읍등 전북일대를 돌아보고 기록하고 영상을 찍었다. 훗날 어떤 방식이든지 쓰일 것이라 믿고.
내 첫 작품 장편 다큐멘터리<1975.김상진>에 이어 <동록개의 꿈>을 다큐영화로 셋팅하려고 준비중이다.
2017년 김제로 귀촌하고, 원평에서 4년, 죽산에서 2년째.
김제 죽산 집도 병오년(1906년)에 지어진 집이다. 소설 <아리랑>의 출발 시점에 무대 한복판 죽산에 지어졌다. 상량문에 앉아있는 그 역사가 좋아서 리모델링했다. 그 안에서 다양한 스토리를 구상하며 살고 있다.
이번 강의의 콘셉트.
1.김제와의 인연
2.동록개의 꿈(현장과 시나리오)
3.이야기클럽을 만들자
금구도서관 ‘길위의 인문학’은
발끝·손끝 인문학이면서 동시에 ‘머리끝 상상스토리’의 출발점이다. 작년에 이어 김제시민들에게 유용한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 자리에서 내 꿈(?)을 이야기하려니 마음이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