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와 ‘자기에게 다가온 시대를 온몸으로 안고 받아내서’ 살아가기
영화 ‘서울의 봄’과 ‘2030세대들의 감상 열기’가 서로 맞물리며 뜨겁다. 700만을 넘어간다고 하니 의미롭다. 세상의 흐름이 바뀌는 것인가? 장편다큐멘터리<1975.김상진> 감독으로 ‘암흑의 시대’를 이야기하려는 내게도 시사하는 바 크다.
대학 입학하던해, 1979년, 박정희가 총맞아 죽고 이어진 12.12 군사쿠데타.
그로 인해 역사는 일그러졌다.
전두환 군사반란이후 내가 겪은 2가지 에피소드.
2학년때다. 1980년 5월 광주민주항쟁이 이어질 때 광주에서 빠져나온 전남대생의 이야기를 전해듣는 자리에서 한 선배가 나에게 물었다.
“병권! 어쩌면 우리도 총을 들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수원역 옥상에서....”
“총을 들라면 들수 있겠니?”
이 질문에 이제 막 세상의 불합리에 눈을 뜨기 시작한 나는 ‘용기’보다 ‘겁’이 더 많았다. 이틀 밤낮을 끙끙 앓았다. 결론은 동료·이웃들과 ‘함께라면’으로 어떤 경우의 수로 풀어지리라 마음먹었다. 아마도 혼자였으면 도망 갔을터.
두 번째는 81년 무기정학으로 학교에서 배제당한후 1년만에 복교했다. 해를 넘겨 83년 6월 자취방에서 긴급체포, 수원경찰서 보안분실에 닷새간 구금. 마지막 날인 6월 12일밤
전두환의 보안대는 “안병권, 너 내일 군대간다” 통보.
백골3사단에 단독입영후 들려오는 학생운동·강제징집자들의 군대 내 연이은 죽음의 소식들(의문사). 급기야 그해 12월, 대학 친구 한희철의 의문의 자살소식.
내 의식은 멘붕이 왔고, ‘속수무책 두려움’에 몸을 떨어야 했다.
그렇게 전두환은 내게 ‘두려움’이자 ‘명확한 타도대상’으로 내 삶의 여정과 꽤 오랜기간 동거했다.
이 생각 저 생각.... 마음이 허허롭다.
작년이다. 장편다큐멘터리<1975.김상진> 제작할 때. 열사가 1975년 4월 12일 운명하신후 사흘뒤에 벌어진 광주일고생들의 추모시위를 주동하고 퇴학과 무기정학등 학사처벌을 받은분들 인터뷰때 나온 이야기로 허허로운 마음을 뜨겁게 달군다.
내가 물었다.
“후배세대들이나 이 영화를 볼 사람들에게 남기고 싶은 이야기해주세요”
“모든 젊은이들에게 당대의 문제가 분명히 있을 것이고 자기가 만난 문제를 자기가 풀어내야 한다는 것은 어떤 시대에나 변하지 않는 과제가 돼야 된다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지금 세대들에게 뭘 잘한다 못한다고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자기 삶을 정말 온몸으로 안고 받아내서’ 살아가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아래 영상은 금년초에 두 사람의 젊은 열사를 기억하면서 만든 영상이다.
당대의 문제를 온 생명으로 받아낸 청춘들.
체코의 얀팔라흐, 한국의 김상진.
카톡~
아들·며느리가 보내온 사진에
‘제대탈락 2023년 12월 12일’
묘하게도 9일전 태어난 손자 녀석, 배꼽을 완전히 떼어낸 날.
음~ 12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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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pdN8Oc2ys4s?si=Ru4fEi4Gdrg9Rl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