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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병권 Dec 16. 2023

최고령, 최신형 자기복제자

죽산아이




나는 유전자 ‘죽산 安’이다(DNA)


염색체 23쌍, 46개로 이루어져 있다. 사람들은 나를 ‘자기복제자’라고 부른다.


머나먼 영원으로부터 걸어와 2023년 12월 3일, 새 몸에 탑재하고 21세기를 활보하기 시작했다. 나보다 「35살 어린 것」(인간족은 ‘아버지(안상훈)’라 부른다)이 그 전「63년 어린 것(할아버지 안병권)」이 그랬듯 내가 새로 태어난 곳(부천)에 출생신고 했다.  몸은 따로 분리 되어 나왔지만 여전히 나는 이전 생존기계들의 ‘무조건 배려’에 힘입어 한동안의 삶을 헤쳐나갈 것이다. 더 고무적인 일은 죽산안씨의 특장점에 [31살 어린 것,박지은」(엄마) 쪽의 매력적인 유전자와 지향점들이 합쳐져서 더할 나위 없는 내가 되었다는 점이다. 


내 이름은 안우진(安禹昣)이다.  베풀 ‘우’ 밝은 ‘진’이다. 지금부터 최소 100년의 주인공이다. 우진은 나의 생존기계(survival machine)다. 내 영속성을 위해 맹목적이지만 우연,치밀, 헌신, 사랑의 결실로 설계된 ‘DNA운반자’중의 하나다. 


이로서 나는 ‘새로운 관계’가 생겼다. 내가 있고, 세상이 있고, 사물이 생겨난 것이다.  ‘역동적인 공동체’ 대한민국의 일원이 된 것이다. 나는 기본 관계를 중심으로 ‘수많은 연결연결’로 이어지면서 살맛 나는 세상을 만들어 가는데 구체적이고도 강렬하게 한몫을 감당할 생각이다. 생존기계인 안우진의 삶이 충만하게 펼쳐져야 그 다음에 펼쳐질 내 앞길에 탄탄대로가 열리기 때문이다. 


내가 걸어오는 동안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우여곡절을 겪었다. 이전 생존기계들의 삶에서 잘못하는 부분들은 하나하나 배제했고 잘하고 보탬 되는 일들은 차곡차곡 쌓아왔다. 나 또한 살아가면서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를 겪을테지만 담대하게 받아내 소화하면서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는 존재로 남으려고 한다. 


겉모습은 세상에 나온지 며칠 안되지만 내심은 저 영원으로부터 내려온 무궁무진 속사정의 총합(總合)이 나다. 그런 나를 애기중의 애기라고 포대기로 꼭꼭 싸맨 채 ‘만지면 터질세라 불면 날아 갈세라’ 난리들이 아니다. 은근 부아가 나서 째려보면 어쩌면 이렇게 이쁘냐고 생 난리다. 그들의 무한사랑은 막을 방법이 없다.

 특히 ‘90년이나 어린 것(할머니)’은 나에 대해 뭔 걱정을 그리 많이 하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그래도 속마음은 다 나를 위해, 내 편에서 대응하는 것이니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이뻐 죽겠다’의 다른 표현인 줄로 안다. 


며칠 후에는 나보다 「63년 어린 것」이 저 멀리 김제에서 나를 보러 온다. 「90살 어린 것」하고 같이 온다. 자기들끼리 이미 내 모습이나 소리를 주고 받은 것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마음은 조금 설렌다. ‘낯설지 않은 이어짐’이 주는 즐거움이 있어서다. 사람들은 그것을 ‘행복’이라 부른다. 


나는 시대를 불문하고 암묵적으로 내 생존기계인 ‘인간들’에게 이렇게 명령했다.


“너는 특별하고 절대적인 존재다. 최선을 다해 경쟁하고 이웃과 함께 연대하여 살아남아 너 자신을 지켜라. 그리고 자손을 생산하라!”


사람들은 그 명령에 ‘인생’으로 화답했고. 그 결과물이 오늘의 나 안우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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