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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병권 Dec 27. 2023

재미난 일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죽산아이


재미난 일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1906년에 지어진 집을 리모델링하고 2년째. 와이프 그림작업 공간과 이야기농업연구소 작업실로 쓰다가 농가민박 외부공유 요청이 있어 내부 리셋중입니다. 11월부터 두달째 특별한 일 아니면 두문불출 매달리고 있습니다. 집 안팎 구조는 리모델링할때 큰 틀에서 재구성되어 크게 준비해야 할 일은 없습니다. 닦아내고, 털고, 오일스테인칠, 흰색페인트칠, 날카로운 부분(못, 기타 이물질) 제거, 내부 문짝 만들기가 일입니다. 거기에다 살림집 ‘마당 꾸미기’가 더해져서 뻐근하게 노는 요즘입니다. 


  한옥은 구조상 작업하기가 고약합니다. 예를 들면 서까래 사이사이 작업은 생각만 해도 침이 마릅니다. 하지만 일꾼들에게 맡겨 보조역할만 했을 때와 달리 주인장의 시선으로 cm미터 이하 공간까지 ‘눈으로 확인’하고 ‘해야 할 일의 순서’를 결정하고 실행하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그중 ‘칠’ 작업이 대부분인데 목재는 오일스테인 칠, 내외 흙벽은 흰색페인트칠이 주인공입니다. 그런데 이게 그냥 덥석 칠하는 문제가 아니라 해당 면에 덧칠해진 이물 지우기, 청소하고, 마스킹테이프를 붙이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틈나는 대로 집중하지만 시간이 많이 들어갑니다. 오늘은 날이 많이 풀려서 작업하기 좋았습니다. 예전 부엌을 개조해 제 작업실로 쓰다가 손님침실로 쓸 요량으로 준비 중입니다. 물론 11월에 오일스테인과 내벽 페인트칠 1차 진행한 상태였구요. 2차 ‘칠’이죠.

여기 이 공간은 어디일까요? 


  옛날에 아궁이와 솥들이 놓여있던 자리, 돌출이죠. 안방이나 거실에서 보면 벽장·수납장·다락 올라가는 디딤 계단 밑이죠. 그 밑을 청소·손질하려고 누워서 닦고 조이고 기름쳤습니다. 전혀 볼 수 없던 세상이 시야에 들어옵니다. 천장 상량문대들보 윗면(공간)도 못 보던 영역이었지만 ‘누워야 제대로 보이는 공간’이 집 안에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웠습니다. 뭔가 덧칠한 잔해들이 자주 떨어져도 쓸어내기에 바빴지 무슨 이유인지 알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누워서 보니 보이는 겁니다. 그 자세로 한참을 누워 휴식겸 생각겸.


  새까맣게 그을린 나무판들에 얇게 발라진 백세멘트 혹은 페인트류. 면 구분 없이 넘나든 칠 흔적들이 역력합니다. 다행히 120년 된 나무판들과 기둥, 버팀목들은 짱짱했고. 새까만 그을음도 운치가 있습니다. 여하튼 그을음과 이물질 닦아내고, 백세멘트 털어내고, 신나 칠로 하얗게·누렇게 묻은 페인트를 깨끗하게 처리했습니다. 물티슈로 수십 번 닦고, 먼지 및 잔해물 쓸어 담고.


종종 쓸데없는 못들이 박혀있거나 뾰쪽 나와 있기도 합니다. 전동 그라인더로 잘라냅니다. 날카로운 나무 흔적·모서리들은 사포로 손질합니다. 오후 내내 침실에서 그 작업하며 놀았습니다. 다락 마루판과 벽 연결면등 평소 안보던 공간들도 살펴서 오지게 털어내고 닦아냈습니다. 이 방에 침대와 책상이 들어옵니다. 눕거나 앉은자리에서 바라보이는 장면장면에 소홀함이 없고. 혹 아이들 다칠까 싶어 꼬맹이들 시점(視點)으로 모든 경우의 수를 염두에 둡니다. 악착같이 붙어볼 요량입니다.


저녁 6시경 배가 출출합니다. 달달한 커피 한잔하고 저녁 먹으러 올라왔습니다. 500cc컵에 막걸리 한 잔. 안주는 갈치 튀김과 이웃집에서 주신 무김치. 와이프와 맛난 저녁을 즐겼습니다. 내일은 침실 2차 작업을 실행할 생각입니다. 


  해결해야 할 일은 제때 처리하고 넘어가야 하겠더라구요. 이런저런 이유를 대면서 그냥 넘겼다간 후일 반드시 더 비싼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지난 3년간 ‘집 일’을 직접 해보면서 맛본 ‘일머리 원칙’입니다. 더디 가는 것이 빠른 지름길입니다. 아마도 인생사도 마찬가지 아닐까 싶습니다.


내년 2월에는 에어비엔비에 농가민박으로 공식 업로드 할 계획입니다.

‘동학농민혁명’과 소설 ‘아리랑’의 중심 김제 죽산에 이야기가득하고, 설득력 있는 숙박·공유 공간 ‘죽산아이’가 태어납니다. 평상시에는 우리 내외 ‘문화놀이터’, 손님들이 오는 날엔  숙박·작품전시·시골체험공간으로 변신합니다. 


겨우내 차근차근 걸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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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부엌 아궁이와 가마솥이 걸려있던 부뚜막자리.


며칠전 눈이 많이오던날, 쪽문에서 바라본 죽산아이 풍경


흰페인트칠을 위한 마스킹테이프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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