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봉이와 잼, 그리고 사랑이 담긴 너
결혼 후 처음 머문 집은
엘리베이터 없는 오래된 빌라였다.
신혼집에 아빠가 냉장고를 사주셨다.
애 키우려면 이 정도는 있어야지!”
그런데…
현관으로도 못 들어오고,
창문으로도 못 들어왔다.
그토록 갖고 싶었던 양문형 냉장고는
결국, 어떤 방법으로도
우리 집에 들어올 수 없었다.
우리 집 창문은 작았고,
냉장고는 컸고,
배달기사님과 함께
몇 분을 문 앞에서
말없이 서 있었다.
결국 환불.
원래 그 자리에서 환불을 하면
반품배송비를 받지만,
너무 속상해하는 나를 보고 반품 배송비도 받지 않으셨다.
작은 냉장고를 다시 샀다.
냉장고는 못 들어왔지만
큰 걸 사주고 싶었던
아빠의 마음만은
가슴 깊숙이 들어왔다.
그 해 겨울이었다.
차가운 수돗물 대신
당연히 온수로 야채를 씻었다.
딱히 다른 이유는 없었다.
“따뜻한 물 나오는데 굳이 찬물로 씻을 이유 있나?”
싶어서, 그냥 그게 편해서였다.
그날도 딸기를 따뜻한 물에 담가두었는데
옆에서 보던 남편이 슬쩍 말했다.
여보… 혹시 잼 만들려고…?”
"아니? 그냥 찬물은 손 시려서 온수로 씻고 있지.”
남편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 지금 딸기들이 살짝 익고 있는 느낌인데…”
그때 남편은 '앗 이 결혼 취소하고 싶다 '이런 표정이었다.
그리고
한참을 웃었다.
딸기 맛이 어땠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그날의 웃음만은 아주 진하게 남았다.
그 집에서 나는 첫아기를 가졌다.
태명은 ‘희봉이’.
내 이름에서 따온 ‘희’,
남편 이름에서 따온 ‘봉’.
우리 둘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 꺼내
소중히 엮은 이름.
‘희봉아.’
그 이름을 입에 담는 순간마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애틋함이 밀려왔다.
찌는 듯한 여름이 오고 있었다.
햇살은 창문을 뚫고 들어와
방 안을 무겁게 눌렀다.
바람 한 줄기 없던 날,
나는 처음으로 ‘에어컨’이라는 단어에 절실함을 느꼈다.
밤이면 선풍기 바람으로도 해소되지 않는 열기에
나도, 아이도 쉽게 잠들 수 없었다.
결국 남편과 나는 안방에
벽걸이 에어컨을 설치하기로 마음먹었다.
설치 날짜까지 잡아두고
서로 “잘했어”라고 말하며 안도하던 그날,
집주인아주머니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에어컨요? 안 됩니다.
벽 뚫으면 건물이 흉해져요.
다음 세입자들한테도 민원 들어올 수 있어요.”
순간,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이의 열을 식혀주고 싶다는 그 작은 바람조차
허락을 받아야만 가능한 일이라니.
그날 밤,
희봉이가 밤새 뒤척였고
나는 아이의 땀띠가 오른 배 위를
손끝으로 쓰다듬으며
가만히 눈물을 삼켰다.
다음 날 아침,
나는 희봉이의 땀띠가 선명하게 찍힌 사진을 보여주고
집주인 할아버지를 조심스레 찾아갔다.
말없이 사진을 내밀었다.
할아버지는 그것을 오래 바라보셨다.
그래요. 달아요, 에어컨.. 이 아이 몸이… 안쓰럽네”
며칠 뒤, 기사님이 벽을 뚫고
실외기를 설치하는 망치 소리가
집 안 가득 울렸다.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감정이 북받쳤다.
에어컨 하나 달기까지
엄마는 이렇게도 많은 감정의 절벽을 오르고 있었다.
그날 밤,
희봉이는 처음으로 땀 흘리지 않고 잠들었다.
나는 조용히 옆에 누워
작은 배를 어루만지며 속삭였다.
엄마가 조금은 지켜낸 것 같아.
우리 희봉이, 시원하지?”
그 이후, 위층에선 종종 다툼 소리가 들렸다.
할아버지와 아주머니의 말다툼.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알 수 있었다.
그 시원한 바람 한 줄기에도
누군가의 고집과 누군가의 양보가
뒤섞여 있었음을.
그 여름 이후,
나는 조용히 다짐했다.
다음 집은,
누구의 허락 없이도
내 아이의 계절을 지킬 수 있는 집이면 좋겠다.
에어컨 하나쯤,
‘눈치 없이도’ 달 수 있는 집.
바람 하나에
마음이 미안해지지 않아도 되는 공간.
그리고 그 다짐은
조금 무리한 선택이었지만
우리를 아파트로 데려다주었다
돌이켜보면
그 여름의 바람 한 줄기 속엔
엄마가 된 나의 첫 결심이 깃들어 있었다.
에어컨 하나 때문이 아니었다.
그건 세상을 향해 내민
작은 용기였다.
그때는 이해되지 않던 집주인의 반대가
지금 돌아보면
우리 가족이 ‘진짜 집’을 갖게 된 시작이었다.
답답했던 그 시절의 불편함이
결국 우리를 움직이게 했고
그 한 걸음 끝에
지금의 집이 생겼다.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나는 알게 됐다.
그 반대마저도
고마움으로 남을 수 있다는 걸.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엄마로서 아이에게 처음으로 시를 써 내려가고 있었다.
《사랑이 담긴 너》
글. 담빛
너는
하늘이 우리에게 준
소중한 선물이야.
엄마는
네 몸 하나하나에
사랑을 담아
조심조심 키우고 있어.
내 품에 안겨 잠들던 너,
내 손보다 작았던 너의 작은 발,
처음 입을 열어 들려준 너의 옹알이,
그리고 활짝 웃는 너의 눈빛
그 안에는
엄마가 매일 쏟아낸
따뜻한 사랑이
살며시 녹아 있단다.
이 말을 오래오래 간직해 줘.
스스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건,
엄마의 마음까지
소중히 안아주는 일이란 걸.
“매주 화.목요일 오전 11시에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