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속 엄마의 부재
아들이 어린이집에 다니던 어느 날,
키즈노트에 알림장이 도착했다.
지금도 도무지 펼쳐보지 못할 만큼
그날의 문장은 충격이었다.
그때 나는 공인중개사 시험을 준비 중이었다.
매일같이 공부에 매달리며,
아이들은 하루 종일 미디어와 함께했다.
미디어가 아이의 집중력을 어떻게 흐트러트리는지도 모른 채
나는 오직 나의 꿈만 바라보며 달려가고 있었다.
알림장에는
아이의 산만함과 발음 문제에 대한 선생님의 글이
조심스럽지만 분명하게 담겨 있었다.
그 문장들 사이로
선생님의 지친 숨결이 느껴졌다.
나는 무너졌다.
그리고 알았다.
이건 내 책임이라는 것을.
시험에 합격하자마자
나는 내가 먼저 달라져야 한다고 결심했다.
TV를 가렸고,
책을 사기 시작했다.
한 달에 30권씩,
중고로 전집을 인터넷에서 찾아다니며,
하루 한 시간씩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기 시작했다.
처음엔 버거웠지만
점점 시간이 늘어났고,
책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더 많이 만나기 시작했다.
녹초가 된 몸으로
책을 펼치는 일은
이제 나에게도 아이에게도
하루를 살아낸 사랑의 인사가 되었다.
그렇게 읽은 책이 어느덧 몇천 권이 넘기 시작했고
주기적으로 책을 바꿔주기도 했다.
몇 년의 시간이 흘렀다.
나는 처음엔 아이를 바꾸기 위해 책을 읽었다.
하지만 바뀐 건 아이만이 아니었다.
나의 삶, 나의 감정, 나의 언어, 나의 하루까지도
조금씩 바뀌어갔다.
아이가 유치원에 들어간 어느 날,
상담을 위해 찾아간 선생님께선 이렇게 말씀하셨다.
“수업 집중 잘하고,
선생님 말도 잘 따라요. 사교성도 좋고,
무엇보다 책을 참 좋아해요.”
나는 두 번 물었다.
“정말요? 정말… 집중을 잘한다고요?”
그 순간,
그 말은 나에게 세상의 어떤 상보다 값졌다.
그 후 아이들은 시를 쓰기 시작했고,
글을 짓기 시작했다.
그 글들은 나를 울렸고,
또한 나를 글로 이끌었다.
그렇게 나는,
아이와 함께 매일 책을 펼쳤다.
책장을 넘기며 웃었고,
글자 사이에서 눈물도 흘렸다.
처음엔 아이를 위해 시작한 일이었지만
어느새 책은
나를 위한 시간이 되어 있었다.
읽고 또 읽었다.
아이의 마음은 자라고 있었고,
나의 마음도
조금씩 회복되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한 번도 꿈꿔본 적 없던
‘작가’라는 이름을
조심스럽게 마음에 품게 되었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책을 읽어준다.
아이의 마음이
조금은 덜 외롭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