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임신, 그리고 또 다른 시작
첫째가 두 돌이 되면
다시 영어 강사 일을 하고 싶었다.
오랫동안 가르쳤던 아이들이
좋은 대학에 합격하면
나 역시 함께 성장한 듯한 기쁨과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첫째 아이 두 돌만 손꼽아 기다렸다.
그런데 그해, 나는 둘째를 임신했다.
지금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사랑스러운 내 딸이지만,
그때는 솔직히 두려운 마음이 더 컸다.
산만한 내가 하나도 힘든데 둘을 과연 잘 키울 수 있을까
그 마음이 죄책감으로 오래 남아
나는 지금도 딸에게 더 정성껏 사랑을 쏟으려 노력한다.
그리고 둘째의 태명은 '세인'이었다.
sane, 영어로 '제정신'이라는 뜻.
산만한 나를 닮지 않기를 바라는
작은 기도가 담긴 이름이었다.
그리고 나의 꿈을 접기로 마음 먹었다.
기다리던 원장님과 학생들에게
기약 없는 약속만 남기고
나는 강사 일을 그만두었다.
그 뒤로 나는 운전을 배우며
앞으로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매일 고민했다.
강사 일은 대부분 오후 늦게 시작되기에
아이 둘을 키우며 이어가긴 어려웠다.
그래서 둘째를 낳고,
조용히 새로운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둘째를 낳고 1년 후,
나는 공인중개사 시험 공부를 시작했다.
두 아이를 키우며
2년 동안 수험생활을 이어갔고
밤마다 책을 펼쳤고,
아이들이 잠든 시간에 외웠다 지웠다를 반복했다.
그리고 2년 만에 자격증을 땄다.
그때 느낀 기쁨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다.
그 시기, 아파트 값이 가파르게 오르기 시작했다.
마침 친정아버지의 사업도 잘 풀리던 때라
아버지는 더 넓은 평수로 이사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아버지의 아파트는 매도 의사를 밝힌 상황이었고
계약금도 이미 들어온 상태였다.
그런데 그 사이
아파트 가격이 무려 1억이상 이나 올랐다.
나는 조심스럽게 아버지께 제안드렸다.
“계약금 배액상환하고, 조금만 기다렸다 파세요.
이미 갈 집은 좋은 가격에 매수했으니까
이건 정말 좋은 기회예요.”
공부하면서 머릿속에 그려보던 흐름이
현실에서 맞아떨어졌던 순간이었다.
주변 사람들은 모두 말렸지만
아버지는 내 의견을 믿고 선택해주셨다.
결국 계약을 취소하고 배액상환했다.
그리고 더 높은 가격에 집을 매도하실 수 있었다.
그때 느꼈다.
내가 지나온 모든 버겁고 힘들었던 시간들이
이렇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날이 오는구나.
이런 방식으로라도
아버지께 작은 효도를 할 수 있어
참 행복했다.
내가 포기했던 꿈과 선택했던 길이
결국 내 가족의 삶을 지탱한 순간이었다.
그건,
생각보다 훨씬 큰 보상이었다.
“지금은 부동산 일을 하진 않지만
그때의 나는 뭔가 해낼 수 있다고 믿고 싶었고,
그 마음 하나가… 나를 지켜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