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그 물건이 왜 거기서 나와?

바지주머니에서 나온 건..?

by 담빛

건조기와 함께 도착한 민망한 하루


아이 둘을 키우며 살림을 하다 보면, 어떤 날은 작은 가전 하나가 세상을 바꿔놓는다.

그날도 그랬다.


그때 나는 아버지의 사업체에서 일을 막 시작한 참이었다.

출근과 퇴근 사이, 아이들 하원 시간에 맞춰 정신없이 살아내던 하루하루.

그런 나를 보고 부모님께서 “수고 많다”며 건조기를 선물해 주셨다.


은근히 바라던 물건이라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건조기에서 따뜻하게 마른 옷을 꺼내는 순간, 정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이건 거의… 아줌마 한 명 고용한 기분이야.”


작은 기계 하나가 시간을 돌려주는 기분이었다.

나는 기분이 들떠서 그날 빨래를 한가득 돌렸다.

남편 속옷과 아이들 옷까지 몽땅 한꺼번에.

그게… 시작이었다.


몇 시간 뒤, 아들을 하원시키러 어린이집에 갔다.

그런데 선생님이 나를 조용히 부르더니,

살짝 당황한 얼굴로 무언가를 손에 쥐여주셨다.



어머님, 아드님 바지주머니에서… 나왔어요.”


남편 팬티였다

나는 그 순간, 어쩐지 인생이 조금은 피곤했다.


선생님의 목소리는 조용했고, 나는 순간 말을 잃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어떻게… 어쩌다…

아들의 바지주머니에서 남편 팬티가 나올 수 있지?



건조기에서 꺼낸 옷을 정리하다가,

내가 무심코 팬티 하나를 바지 위에 얹은 채로 개켜놓았던 것일까, 아님 건조 중에 주머니에 들어갔을까 정말 아직도 궁금하다.


나는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뺨은 홍시처럼 붉어졌고, 눈앞은 새하얘졌다.

그날 이후 며칠 동안, 선생님 얼굴을 똑바로 보지 못했다.


하원 시간만 되면 나도 모르게 고개를 푹 숙이게 되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빨래를 개는 손길에

약간의 경건함을 더하게 되었다.

건조기는 분명히 삶을 바꿔준 고마운 존재였지만,

삶은 가끔 건조되지 않은 민망함으로 나를 찾아오기도 했다.


그래도 그런 순간이 있기에,

이 육아의 날들이 잊히지 않고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 것 같다.

비록 그게 팬티 한 장 때문일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