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삶을 살아가세요.
당신은 무엇을 망설이고 있나요?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로 사는 것이 정말 당신이 원하는 삶이었나요? 혹시 실패가 두려워 도전을 망설이고 있진 않으신가요?
5년 전 제 통장에는 전재산 50만 원과 빚 1억 5,000만 원이 전부였습니다. 신예디자이너로 선정된 나인데, 중국브랜드에서도 컬래버레이션 하고 싶다고 지목당한 나인데 제가 전재산 50만 원을 들고 서울에서 월세가 가장 싸다는 대학동 산동네 무보증 월세방을 알아보고 있었습니다. 그 와중에도 이것저것 따지는 저에게 부동산 직원은 한마디를 던졌습니다.
현실을 직시하세요!
제가 실패를 하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저는 항상 자신감에 차있었고, 노력대비 운이 좋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정말로 죽고 싶었습니다. 꼬박 5일을 아무것도 먹지 않고 망한 사무실에 한편에 누워서 죽는 방법을 검색했습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 목을 매달아 죽으면 목이 아프겠지?” “높은 데서 떨어지면 어떨까? 만에 하나 안 죽고 장애만 얻는다면 어떡하지? 끔찍하게 죽어서 내 모습을 처음 본 사람들은 평생 트라우마를 얻게 되겠지?” “굶어 죽는 건 어떨까? 25일이나 걸린다고? 너무 힘들어 보이는데.” 다양한 죽음의 방법을 찾아보면서도 아이러니하게도 죽지 않을 이유를 찾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는 6일째가 되던 날 “그래! 죽는 것도 쉽지 않구나. 어차피 살아야 한다면 허접하게 살진 말아야겠다.”라는 다짐을 했고 저는 다시 도전을 했습니다. 실패자로 남고 싶지 않아서, 살아야 한다면 다시 내 방식으로 살고 싶어서 다시 도전했습니다. 그리고 5년이 지난 지금 저는 결혼을 하고 집도 사고 누적매출 25억 원을 달성한 5년 차 사회적 기업가가 되어 있습니다.
저에게는 저와 20살, 정확히는 19년 7개월의 차이가 나는 엄청난 늦둥이의 동생이 있습니다. 엄마가 저를 23살에 낳으셨고 동생은 42살이 되었을 때 낳았습니다. 대학에 입학해 첫 학기 책을 고르고 있던 3월의 책방에서 엄마의 임신소식을 알리는 전화를 받았고, 11월이 끝나갈 무렵 산부인과에서 TV 속의 한 장면처럼 유리창 너머로 갓 태어난 붉은 동생의 모습을 보았을 때 신기하고 감격스러웠던 감정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그리고 저는 맞벌이를 하는 엄마를 대신해 남자친구와의 200일 기념일에도 2주년 기념일에도 동생을 데리고 다녀야 하는 간접 육아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어린 마음에도 육 아란게 얼마나 힘든 것인지 그때 당시 사회적 이슈가 되었던 창문밖으로 아이도 던지고 자신도 자살하는 산후우울증으로 고통받는 엄마들의 마음이 이해가 갈 지경이었으니까요. 그리고 그때의 경험으로 인해 저는 무의식적으로 아이가 있다면 제 커리어가 망가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자리 잡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저와 남편은 아이의 양육 대신에 우리의 일을 지속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저는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양육과 일을 동시에 잘한다는 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요.
그리고 제나이 40살이 되던 시기에 저는 한 경력단절 엄마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가방 창업을 하고 싶다고 찾아온 그녀의 눈빛은 빛나고 있었고 무언가 간절해 보였습니다. 왠지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사실 그때의 저는 지쳐 있었습니다. 죽음까지 결심했던 실패의 고통 끝에 오기로 독기로 회사를 다시 성장시키면서 저는 점점 무망의 상태에 빠져가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렇게 그녀와의 인연이 시작되었고 그녀를 통해 만나게 된 육아를 하며 창업을 도전하는 몇 명의 다른 엄마들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녀들은 진지했고 열정이 넘쳤습니다. 오전에는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일을 하다 4시가 되면 다시 아이들을 유치원에 픽업해야 한다며 떠났습니다. 육아와 도전을 병행하며 만들 수 있는 짧은 시간의 중요성과 다시 얻게 된 기회의 소중함을 그녀들은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들을 만나면 육아와 남편이야기가 아닌 오로지 자신들의 이야기, 자신들이 어떻게 창업을 해나가야 하는지, 어떤 방법을 활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이야기만 했습니다. 아주 사소한 저의 조언도 그녀들을 새겨들었고 세상을 향한 나의 어떤 제안에도 그녀들은 함께 하길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저 또한 그녀들의 열망과 눈빛에 새로운 에너지가 채워지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녀들을 돕고 싶었습니다. 육아로 인해 자신을 잃어가는 경험과 남편들의 저항 끝에 그녀들이 얼마나 힘든 도전을 하고 있는지 저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으니까요.
삶을 살아가는 동안 매 순간 선택의 기로에 서고 또 그 선택과 선택의 집합이 모여 현재의 나를 이루고 있습니다. 매 순간 나의 행복을 위한 길을 선택한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던 지난 몇 년간의 결과로 인해 남은 건 번아웃과 무망의 감정이었습니다. 저는 작년 다시 한번 선택의 기로에 섰습니다. 그리고 그녀와 같은 엄마들을 많이 만나고 그녀들이 다시 사회로 나아가는 길에 먼저 간 선배의 마음으로 힘이 되고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도전하는 엄마들의 이야기 워크맘]이라는 유튜브 채널도 만들고 오픈채팅방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더 많은 엄마들에게 저의 이야기가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 책도 쓰기로 결심했습니다.
워크맘 유튜브 채널을 통해 다양한 도전하는 엄마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픈채팅방을 통해 도전을 망설이는 그렇지만 열망이 있는 엄마들도 만나고 있습니다. 그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녀들은 이미 혼자가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열망은 있지만 남편이 있고 아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도전하고 싶지만 실패할까 봐 두렵습니다. 어떻게든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려고 용기내고 있지만 집에서는 남편이 “돈도 안되는데 애 안 보고 밖에 나가서 뭐 하고 돌아다니냐” 고 합니다. 그리고 도전한다고 해도 방법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인터넷 부업을 자꾸만 기웃거리게 됩니다. 그렇지만 계속 이렇게 지내고 싶진 않습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아이들에게 도전하는 멋진 엄마로 기억되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여자들은 인생의 2번 가장 큰 변곡점을 가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바로 결혼과 출산입니다. 출산을 하면 내가 그렸던 내 인생의 그림이 다 망가져 버리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자신의 인생을 재설정하는 시기가 오게 되죠. 내 인생을 가족에게 거느냐, 나에게 버느냐. 물론 힘든 거 압니다. 주변에 도움도 없는 거 알아요. 하지만 계속 누군가의 엄마로, 누군가의 아내로 살 순 없잖아요. 진정한 나의 길을 가는 것, 나를 찾아가는 것이 결국은 좋은 엄마 좋은 아내가 된다는 것을 자신이 스스로 제일 잘 알고 있을 거예요.
어제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대표님을 워크맘 인터뷰를 위해 찾아갔습니다. 공무원을 하시는 남편은 한결같이 “그렇게 힘들면 때려치워!”를 반복했다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14년을 버텼고 드디어 작년에 남편분이 정년퇴직을 하시게 되었습니다. 대표님은 14년을 한결같이 이어온 자신의 길로 인해 더욱 성장세를 가고 있는데 남편분은 무직으로 할 일이 없게 되어버린 것입니다.
“나 당신 회사에서 일해도 돼? 이럴 줄 알았으면 내가 옛날에 좀 많이 도와줄걸 그랬네.”
전세가 역전되는 순간이었습니다. 통쾌함이 느껴졌다고 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동기부여 할 때 가장 좋아하는 명언 중의 하나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라는 말일 듯합니다. 당장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속도가 나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저 마음속에 진짜 나 자신을 찾기 위한 열망을 가지고 있기만 해도 됩니다. 그리고 당신을 믿어보세요. 당신은 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엄마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