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대체 불가능한 나를 만드는 법
"AI가 다 해주는데 왜 공부해야 할까?"
요즘 자주 드는 생각입니다. AI한테 시키면 되지, 뭘 굳이 내가 해? 맞는 말 같기도 해요. 검색하면 나오고, 물어보면 답해주고, 시키면 만들어주니까요.
근데 정말 그럴까요?
AI에게 시키려면 뭘 시켜야 하는지 알아야 해요. 그걸 아는 힘은 어디서 올까요?
저는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날 저는 AI에게 물었습니다.
"AI야, 네가 사업을 했는데 망했다면 어떤 기분일까? 그다음에 어떻게 할 거야?"
그랬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습니다.
챗GPT의 답변:
망했다는 사실 자체보다 "가설이 틀렸다"는 걸 확인한 상태. 좌절은 있겠지만, 자존감이 무너지진 않아. 실패를 판단이 아니라 데이터로 인식하니까.바로 드는 생각은 이거야.
왜 망했는지 이미 로그가 남아 있다
'나'가 틀린 게 아니라 '설계'가 틀렸을 가능성
다음 행동은?
감정 정리 → 짧게. 오래 붙잡지 않는다.
사망 원인 분석(Post-mortem)
남은 자산 분해: 네트워크, 도메인 지식, 실행 경험, 실패 패턴 → 이건 절대 '0'이 아님
결론: "이제야 이 시장에서 실패하지 않는 조건을 하나 배웠다." 그래서 나는 다시 한다. 다만, 전보다 훨씬 조용하고 정확하게.
와, 정말 컴퓨터다운 냉철하고 정확한 대답입니다.
만약 친구한테 물었다가 이런 대답이 돌아온다면 어떨 것 같으세요?
'얘 사이코패스인가?'
AI는 '망하면 이렇게 하면 돼'를 알아요. 하지만 망했을 때 느끼는 그 감각은 몰라요.
저는 이 감정을 압니다. 제가 경험해 봤으니까요.
2018년, 저는 망했습니다.
2015년부터 시작한 가방 브랜드 '이삼오삼육오(23.536.5)'를 접어야 했어요. 23.5도 기울어진 지구 위에 살고 있는 36.5도의 사람들이라는 의미를 담은 브랜드였죠.
사업 초기에 메르스로 야외 행사가 전면 취소되는 바람에 타격을 입었지만, 그래도 3년은 버텼어요. 청년창업대출과 근근이 벌어지는 매출로요. 그 사이에 디자인페스티벌 넥스트영디자이너로 선정되기도 했고, 중국 브랜드나 대기업의 콜라보 제의를 받아 미팅도 했어요. 사드 배치 사건과 여러 이유로 제대로 성사된 건 없었지만, 그래도 그런 일들이 계속 생기니까 내가 실패할 거라곤 상상도 못 했죠.
그런데 결국 망했습니다.
다음 달 돌아오는 대출금을 갚을 수 없다는 걸 알았을 때, 저는 죽고 싶었어요.
사업 실패에서 느꼈던 감정, 좌절감, 슬픔, 비참함.
재기를 위해 노력했던 나의 선택들, 과정, 경험들
이건 정보가 아니에요. 체득이에요.
AI는 이 감각을 모릅니다.
같은 정보도 경험에 따라 다르게 해석됩니다.
사업이 망하고 몇 달은 헤맸어요. 디자인을 아예 접으려고 기업강사가 되겠다고 강사 학원도 다녀보고, 우연히 보험회사도 다녀봤죠. 본질적으로 나랑 안 맞아서 금방 그만두게 되었지만, 거기서 배운 건 많아요.
강사 학원에서는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어요. 보험회사에서는 영업의 원리를 배웠죠. 특히 보험회사에서 배운 "Give First" 원칙이 있어요. 먼저 주고, 관계를 쌓고, 그다음에 비즈니스가 따라온다는 거였죠.
당시엔 '나랑 안 맞아'라고 생각하고 그만뒀어요.
그런데 몇 년 뒤, 경력보유 여성들을 위한 무료 창업 교육 커뮤니티 '맘앤맵'을 운영하게 되었을 때, 그 원칙이 핵심이 됐어요. 아침마다 무료로 창업 정보를 공유하고, 소액의 강의로 소통하면서 신뢰를 쌓았죠. 그게 책 출간으로, 강연 의뢰로 이어졌어요.
보험회사에서 배운 게 창업 교육 커뮤니티 운영에 쓰일 줄 누가 알았겠어요?
그때는 몰랐던 것이 나중에 연결되는 경험. 이건 AI가 알려줄 수 없어요.
경험이 없으면 뭘 물어야 할지조차 몰라요.
저는 박사과정을 공부하면서 AI에게 수많은 질문을 했어요. 논문을 이해하기 위해, 발표를 준비하기 위해, 제 생각을 검증하기 위해서요.
"이 이론과 유사한 주장을 한 사람은 누구야?" "내가 이해한 대로 말해볼 테니까 틀린 게 있는지 검토해줘." "이 이론이 주장되기 이전과 이후는 뭐가 달라졌어?"
이런 질문들이 가능했던 건, 제가 실제로 사업을 해봤기 때문이에요.
린스타트업 이론을 처음 접했을 때, 저는 "아, 내가 했던 방식이 이거였네?"라고 깨달았어요. 영감이 떠오르면 바로 목업을 만들고, 안 되면 고치고, 다시 해보던 그 방식이 이론으로 정리되어 있더라고요.
이론만 읽었으면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겼을 거예요. 하지만 직접 해봤기 때문에 "어, 이건 내 이야기잖아?"라는 연결이 생긴 거죠.
"린스타트업이 뭐야?"라는 질문과 "내가 했던 게 린스타트업이었네?"라는 깨달음은 완전히 다른 겁니다.
경험 자체는 누구나 해요. 살아가면서 자연스럽게 쌓이니까요.
하지만 그걸 '자산'으로 만드는 건 해석이에요.
실패도 경험이에요. 공백도 경험이에요. 문제는 그걸 어떻게 정리하느냐예요.
망한 사업, 보험회사, 기업강사 학원, 석사 논문, 육아... 당시엔 그냥 헤매는 것 같았어요. 방향을 잃은 것 같았죠. 그런데 지금 돌아보면 전부 연결되어 있어요.
사업 실패에서 배운 건 "예쁜 걸 만든다고 사업이 아니다"라는 것. 강사 학원에서 배운 건 발표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는 것. 보험회사에서 배운 건 "Give First" 원칙. 석사 논문을 쓰면서 배운 건 논리적으로 사고하는 법.
예전의 저는 완전 즉흥적이고 충동적으로 일을 벌이는 사람이었어요. 좋게 말하면 실행력이 좋은 사람이지만, 계획은 없었죠. 지금은 달라요. 아이디어가 생기면 예전처럼 바로 실행하는 게 아니라, 실행 가능성을 빠르게 계산하고 작게 테스트해봐요. 내가 가진 자산이나 주변 인프라, 정부 지원 사업 등을 활용해 큰 비용 안 들이고 해볼 수 있는 방법을 먼저 찾죠.
이 모든 게 경험에서 왔어요.
경험은 버려지는 것이 없구나. 그걸 깨달았어요.
AI는 정보를 줘요. 정확하고, 빠르고, 방대하게.
하지만 그 정보를 나의 맥락에 맞게 해석하는 건 나의 경험이 해요.
그래서 AI 시대의 진짜 공부는 책상 앞에 앉아 있는 게 아니에요. 부딪히고, 실패하고, 다시 해보는 거예요. 그리고 그 경험을 돌아보며 의미를 찾는 거예요.
AI에게 대체되지 않으려면, 대체될 수 없는 경험을 쌓으세요.
그게 진짜 공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