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어가는 문
"모든 건 절제하지 못해서 생기는 일이다."
스토아학파는 이렇게 말했다. 서양에선 쾌락에 관한 철학을 내세운 학파가 여럿 있었다. 그중 하나, 스토아학파는 인간의 3대 본능을 제외한 모든 걸 절제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들은 부동심을 강조했으며 금욕에 가까운 생활을 이어갔다. 그와 반대되는 에피쿠로스 학파의 의견은 조금 달랐다. 에피쿠로스 학파는 적당한 쾌락을 즐기되, 과한 소비나 중독에 빠지는 걸 제하라고 하였다.
에피쿠로스가 말한 쾌락은 인간의 본능이자 즐기려는 욕망이다. 문화생활을 즐기는 건 허락이지만 무분별하게 짧은 영상만 보는 건 안 된다. 적당한 아타락시아를 즐기는 건 삶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했다. 이걸 들은 18살의 어느 날. 나는 에피쿠로스가 되고 싶었다.
현대 문명의 발달은 인간에게 마냥 이롭지 않았다. 특히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삶은 편안해졌지만 나이 불문하고 도파민을 자주 접하게 되었다. 인간에게 적당한 도파민과 엔도르핀은 필수적이지만 이게 과하다면 큰 소용이 없었다. 특히 중독성이 짙은 게임, 술과 담배, 향락 등등. 우리는 너무 많은 도파민에 노출되었다.
나는 중독에 취약한 인간이다. 하나에 빠지면 끝장을 보는 성격이다. 물론 그 한계점을 찍으면 자연스럽게 흥미를 잃고 빠져나가지만 몰입성이 짙기 때문에 신중하게 선택해야 했다. 이게 소비하는 작품이면 괜찮지만 사람이 된다면 그때부터 불행은 시작이다. 실제로 나는 사람에게 집착한 적이 꽤 되었다. 이 또한 성장하는 과정이니 그러려니 했다.
어쨌거나 한때 나는 에피쿠로스 같은 삶을 꿈꿨다. 문화생활을 즐기며 독서하고, 글을 쓰고, 간간이 영화와 드라마 같은 시청각 자료를 보면서 즐기는 삶. 얼마나 멋진가! 하지만 인생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나는 즉각적인 자극이 좋았다.
카페인이 잔뜩 들어간 커피, 10분 내외로 끝나는 동영상들, 끝없이 이어진 사람과의 약속, 의미 없는 짓에 몰두하기, 몸에 나쁠 걸 알면서도 오직 맛으로 먹는 음식들.
무언가를 소비하고 버리는 건 즐거운 일이었다. 특히 시간처럼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걸 소비하는 건 두 배로 즐거웠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 시간들은 내 성장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허무하고 허망했다. 내 손으로 나를 해한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스토아학파가 되기로 했다. 모든 걸 절제하고 근원과 뿌리를 공부하기로 하였다.
"본능 외엔 불행만 자초한다."
인간은 하나를 손에 얻으면 더 큰 걸 가지고 싶어 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누군가는 설화가 고리타분하고 재미없다고 하였다. 설화의 내용은 어렵고 한자어가 아주 많다. 어떤 면은 판타지스럽고 어떤 면은 지나치게 현실적이다. 이걸 웹소설이라고 칭할 수도, 장르문학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말 그대로 분류가 어려운 글이다.
설화는 모든 서사의 원형이다. 그 말은 즉, 설화의 구조를 분석하고 해체하면 다른 서사가 어떻게 굴러가는지 알 수 있다는 거다. 항상 나는 근원과 기원, 뿌리 찾는 걸 좋아했다. 집안의 조상이 누구인지, 그 사람은 어떤 배경을 가지고 있는지. 식물이 잘 자라는지 알기 위해선 뿌리의 크기를 보라는 말이 있었다. 그처럼 나는 어떤 것의 시작점에 관심이 많았다.
8개의 설화를 다시 읽고, 정리하고, 내 이야기로 치환하는 순간. 그 설화가 마치 내 것이 된 거 같은 착각에 빠졌다. 오랜 설화는 현대의 내가 읽어도 거부감이 없을 정도였다. 평범한 사람이 모종의 시련과 고난을 이겨내어 신성을 얻는다. 이 간단한 플롯이 지극히 평범한 내게 많은 힘이 되어주었다.
"너다운 걸 해. 남 따라 하려고 하지 말고."
내가 오랫동안 찾아 헤맨 건 내 존재의 뿌리다. 운명론을 믿는 입장에서 대체 나는 어떤 사람인지 몹시 궁금했다. 마치 '원천강 오늘이'에서 오늘이가 자신이 누구인지 알기 위해서 여행을 떠나는 것처럼 말이다. 오늘이처럼 여행을 떠나기엔 먹여 살려야 할 내가 있다. 현실과 타협한 나는 대신 이것저것 알아보았다.
가장 기본적인 건 사주와 점성술이다. 하늘에 기초한 내 운명은 얼추 맞는 듯했다. 늘 생각하는 건 하나였다. 나는 사실 모든 답을 알고 있는데 그걸 까먹은 거 아닐까? 타인의 말을 듣는 것보다 내가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했을 때 결과가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좋을 때도 있었다.
지난 8개의 설화 중, 가장 좋아하는 설화는 '원천강 오늘이'다. 모든 건 오늘이로부터 파생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인 자아 찾기 프로젝트는 잠시 휴식 중이다. 나는 지난 2년간 수많은 변화를 겪었다.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구했다. 짧게나마 직장 생활을 건강 상의 이유로 그만두었다. 고대하던 학사 졸업 후, 대학원에 진학했으며 논문 및 책과 친해지는 중이다. 어쩌다 보니 전공이 세 개나 되었다. 우연하게 상을 받은 작품을 마감 중이다. 한 발짝씩 내디딘 자그마한 성취가 부메랑처럼 돌아왔다.
아직 나는 진정한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알 길이 없었다. 설화 속 인물이 겪는 고난과 시련은 전 생애에 걸쳤으니까. 21세기 에피쿠로스가 되고 싶다는 꿈은 변함이 없었다. 에피쿠로스가 주장하는 쾌락은 단편적이지 않고 장기적이다. 성질이 급하고 무엇이든 빠르게 해결하려고 하는 내가 인내심을 가질 수 있을까?
"한 우물을 파. 넌 그게 어울려."
친구들은 고민이 한 보따리인 내게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었다. 나는 오랫동안 내가 하고 싶은 걸 하지 못했다. 설화를 차용하여 글을 쓰거나, 동양풍 소설을 쓰는 건 현재 시류에 맞지 않았다. 잘 읽히거나 많이 팔리는 글을 써야만 했다. 그래야 뽑히니까. 수없이 미뤄둔 내 꿈은 고이 접힌 채 곰팡이가 폈다.
에피쿠로스 학파의 맹점은 '육체적 고통이 없는 평온한 상태'. 즉, '아타락시아'이다. 내가 삶을 사는 것도, 꾸준히 글을 쓰며 무언가 투고하는 것도 전부 행복을 위해서다. 힘에 부쳐 잠시 주저앉은 지금. 나는 다시 설화를 펼쳤다.
그 속에 담긴 수많은 인물을 다시 살피며 나를 찾는 여행을 다시 떠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