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나무엔 꽃이 늦게 핀다

설화 '나무도령'

by 장아연


나무도령: 인간과 나무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


옛날 아주 먼 옛날, 지상으로 내려온 선녀가 나무의 정기를 받아 아들을 낳았다. 그 아들은 선녀를 따라 하늘로 올라가지 않고 나무를 아버지라고 부르며 놀았다. 밤송이 같은 머리를 지닌 나무도령은 매일 나무 위에 앉아 놀고먹었다. 나무는 흡족하며 나무도령을 아들이라고 칭했다.


"만일 지상에 큰 비가 내려 만물이 떠내려가도 너는 내게 꼭 붙어 있어라."


나무의 말처럼 며칠 후, 엄청난 폭우가 쏟아졌다. 나무도령은 나무에 꼭 달라붙어 다행히 떠내려가지 않았다. 대신 떠내려가던 개미 떼들이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나무도령은 그들을 불쌍하게 여겨 구해주었다. 날개가 물에 젖어 날지 못하는 모기떼들도 구해 주었다. 그리고 마지막. 저 멀리 나무도령 또래의 소년이 떠내려왔다.


나무는 소년을 구하기를 반대했다. 인간들은 은혜를 모르는 족속이라고 흉보았다. 하지만 마음씨 착한 나무도령은 소년을 구했다. 비가 멎고 모든 게 평안을 되찾았다. 나무도령과 소년은 먼 여정을 떠났다. 두 사람은 어느 부잣집에 들어섰다. 그 집에선 수양딸의 남편을 고르고 있었다.


가난한 집안 출신 소년은 수양딸과 혼인에 눈이 멀었다. 구해준 은혜도 모르고 부잣집 사람들에게 나무도령을 모함했다. 이를 알게 된 대감은 나무도령에게 어려운 시험을 시켰다.


"내 수양딸과 여종의 뒷모습을 보고 한 명씩 고르면 된다. 하나는 내 수양딸과, 하나는 여종과 혼인하게 되겠지."


뒷모습만으론 구분되지 않았다. 하나는 고운 비단옷을 입고 있었고, 하나는 누추한 옷을 입었다. 나무도령이 비단옷 여인을 선택하려던 때, 목숨을 빚진 개미와 모기가 나무도령에게 누가 수양딸인 줄 알려주었다. 알고 보니 수양딸은 일부러 누추한 옷을 입었다.


그렇게 나무도령은 수양딸과 혼인하고, 은혜 모르는 소년은 여종과 혼인했다. 나무도령 내외는 생이 다할 때까지 남을 도우며 어질게 살았다.




세상은 선하게 사려는 사람을 멸시했다. 선을 저버리고, 악을 행하는 건 절대 자랑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설령 생존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악을 선택했다고 하더라도 그건 변명이 될 수 없었다. 이 설화는 전래동화 전집 100권 중 하나였다. 내가 유년기 시절에 몇 번이고 읽은 설화기도 했다. 어린 내가 가장 좋아했던 부분은 은혜를 잊지 않은 개미와 모기가 나무도령을 도와주는 장면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나는 불운하게도 철학에 빠졌다. 윤리와 사상 수업 담당 선생님은 쿨하고 멋진 분이었다. 교과서를 달달 읽지 않고 직접 만든 학습지로 수업을 진행했다. 윤리와 사상, 생활과 윤리는 사회탐구 과목 중에서 비슷한 부류이다. 둘 다 철학을 기반으로 수업한다.


하지만 윤리와 사상은 동양부터 서양, 근대에 이르기까지 철학자의 주장과 개념 이름을 달달 외워야 했다. 사실 이해하고 넘어가야 외우는 것도 쉬웠다. 하지만 철학이 쉬울 리가 없었다. 고작 18년 살았던 아이들에게 공자 왈 맹자 왈은 '뭔 소리여.'를 자아했다. 나는 동양 철학이 싫었다. 하늘이니, 자연이니, 참 태평한 소리 한다고 여겼다. 그 당시 나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학교와 마감을 병행했다. 이것마저 벅차서 과감하게 공부를 포기했다.


윤리와 사상 점수가 바닥을 쳤다. 철학광인 친구들 덕분에 50점을 겨우 넘으면 거의 꼴찌였다. 만점자가 수두룩했다. 대학이 멀어지는 기분에 서양 철학을 시작하면서 다시 공부했다. 그때 철학의 매력에 눈 떴다. 내가 두둔했던 동양 철학을 다시 보는 순간, 무슨 말인지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 당시 나는 장자를 정말 좋아했다. 욕심 없이 자연의 순리대로 흘러가라는 제안이 꽤 매력적이었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라.


난 이 사상도 정말 좋아했다. 성인이 된 후, 철학을 다시 되짚어 보니 깨닫는 지점이 많았다. 사주를 보러 가면서 가장 많이 듣는 건 '늦게 피는 꽃', '대기만성형 인간'이었다. 남들은 무엇이든 잘하는데 나는 아니었다. 수백 번 노력을 기울여야 하나 될까 말까였다. 대기만성형 인간의 좋은 점은 남보다 늦는 대신 그 성공이 오래 지속된다고 했다. 굉장히 좋은 특성이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성격이 몹시 급하기에 그걸 인정할 수 없었다. 그런 게 어디 있어. 나는 지금 성공하고 싶다고! 소리쳐도 결과는 늘 똑같았다. 그럴 운명이 아니었던 거다. 거의 2~3년을 번아웃에 허덕였다. 쓰고 싶은 것도 없고, 뭘 써야 할지 몰랐다. 어떤 장르를 쓸지, 훗날 어떤 직업을 가질지 고민만 했다. 2025년이 시작될 무렵부터 내 삶은 변했다.


생각 없이 넣은 공모전에서 여러 차례 상을 받았다. 심지어 상금도 쏠쏠했다. 지원한 사람이 별로 없어서 뽑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공모전들은 지원자가 너무 많아 발표일도 연기되었다. 정말 운명이란 게 있는 걸까? 기회는 주어진 사람에게 찾아왔다. 나무도령이 개미와 모기를 구해주지 않았더라면 수양딸과 혼인하지 못했을 거다. 그저 인간에게 배신만 당한 채 암울하게 살았을 거다.


최근엔 새로운 환경에 놓였다. 반년 동안 잡고 있던 작품이 완결을 향해 달려갔다. 막상 놓으려니 아쉬운 마음이 들지만 이젠 보내야 했다. 그래야 다른 기회가 찾아오니까. 꾸준히 도전하면 무엇이든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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