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은 바로 돌절구

설화 '범인은 돌절구'

by 장아연
돌절구: 재판에서 범인으로 몰리다.


어느 마을, 두 친구가 살았다. 그중 한 친구의 물건이 도둑맞았고 두 사람은 포도청에 왔다. 피해자는 다른 친구를 의심했다. 범인으로 몰린 친구는 한사코 부인했다. 그 광경을 가만히 보던 원님은 말했다.


"저 물건을 도둑맞은 집에서 돌절구를 가져와라. 둘 다 훔치지 않았다니 돌절구가 범인이다!"


원님은 돌절구를 둘 사이에 두고 심문했다. 당연히 말 못 하는 돌절구가 대답이 없자, 원님은 불 같이 화를 냈다. 이 모습을 본 사람들은 너무 웃겨서 재판에 관심을 가졌다. 진짜 범인이 나올 때까지 원님은 돌절구를 심문하고 고문했다. 마을 사람들이 다 모이자, 원님은 판결을 내렸다.


"이놈, 돌절구야! 갖은 고문에도 입을 열지 않는다니. 안 되겠다. 너를 귀양 보내서 도둑들의 본보기로 삼아야겠다!"


그때 범인으로 몰린 친구가 나타났다. 사실 그 친구는 돌절구의 주인이었다.


"사실 제가 훔쳤습니다! 전 이 돌절구가 없으면 살 수 없습니다. 부디 용서해 주세요."


돌절구를 끌어안고 엉엉 우는 친구를 보던 원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백한 친구에게 돌절구를 돌려주며 용서해 주었다. 친구는 도둑질을 한 걸 깊이 반성했다. 마을 사람들은 원님의 지혜에 감탄했다. 물건을 훔친 친구는 이 일을 토대로 새 사람이 되었다.




가볍고 재밌는 설화다. 요즘 같은 시대에 잘 어울리는 흥미로운 설화다. 이 설화를 알게 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설화를 공부하다가 우연히 만났다. 무겁고 가슴 아픈 설화와 달리, 이건 처음부터 끝까지 굉장히 웃겼다. 보자마자 이거다! 싶은 마음에 냉큼 저장했다.


어릴 적부터 그랬지만 나는 웃긴 게 좋았다.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예능프로그램을 챙겨보았다. 특히 나는 추리와 심리적 압박이 결합한 예능을 좋아했다. 대탈출이나 여고추리반 같은 어드벤처형 프로그램을 참 좋아했다. 나는 단순한 사람이라서 조금만 웃기만 박장대소했다. 사람들은 내가 웃는 소리만 들어도 행복해진다고 할 정도였다.


일요일만 되면 온종일 텔레비전으로 예능 프로그램을 보았다. 리얼 버라이어티, 스튜디오 예능, 공개 코미디 등등. 과거 일요일은 오후 내내 텔레비전을 시청하는 날이었으며 일요일 밤이 되면 모든 숙제를 마친 양 홀가분했다. 웃긴 게 좋았다. 누군가를 웃기는 건 힘든 일이다. 웃으면 복이 온다는 말처럼 나는 마음 놓고 깔깔 웃는 걸 즐겼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웃음을 잃었다. 내가 미소를 지을 땐 입가에 굳어졌을 때였다. 민망하거나, 곤란한 거나, 유순해 보이고 싶을 때는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무해하지 않다는 걸 드러내는 자기 방어 기제였다. 진짜 웃겨서 웃는 경우가 있을까? 정말 재밌어서 웃었던 기억은 점차 희미해졌다.


"넌 교과서적인 사람이야. 네 글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들어."


11개월의 입시를 겪어 원하던 전공을 가졌을 때, 나는 이미 정답을 알았다. 전공 창작 수업에서 어떻게 하면 교수의 입맛을 맞출지, 내가 쓰고 싶은 것보다 더 독특하고 뛰어난 거. 그래서 남들과 다른 걸 추구했다. 왜 이렇게 쓰면 안 되는 표현이 많은지, 수십 번을 고쳐도 왜 비문은 남았는지. 내 글은 굉장히 건조했고 구조적으로 훌륭했다. 매년 창작 수업마다 나는 만점을 받았으며 합평 때마다 교수의 칭찬이 자자했다. 단지 그뿐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행복하지 않았다. 학기 중엔 공부에만 전념하고, 방학엔 미리 작품을 만들었다. 소설 공장을 돌리는 공장장이 된 기분이었다. 이런 걸 써야지만 성공한다면 나는 포기하고 싶었다. 동기들은 내 글이 많은 걸 나타낸다고 했지만 막상 읽기엔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그건 인정했다. 나조차도 문장이 뚝뚝 끊기는 기분을 많이 받았으니까.


졸업 후, 많이 방황했다. 이젠 학교라는 그늘이 없으니 나 혼자 일어나야 했다. 창작자로 남는 동기들은 한 줌이었다. 대개 먹고살 길을 도모하느라 무언가를 쓰고 기록하는 법을 잊었다. 나는 창작자로 남고 싶었으나, 예전처럼 살고 싶진 않았다. 홧김에 아주 유치한 이야기를 적어서 공모전에 냈다. 놀랍게도 대상을 받았다.


지금까지 나간 공모전을 어림 잡으면 500개가 넘었다. 10년 정도 나는 계속 도전하고 부딪히고 깨졌다. 탈락의 고배를 마시는 건 이제 익숙했다. 오히려 안 뽑히는 게 당연하다고 여겼다. 내게 당선은 자극적이었다. 이런 글이 당선된다고? 내가 쓴 무수한 교과서적인 이야기들은 본심은커녕, 소리소문 없이 사라졌다.


"한 우물을 파. 넌 그게 잘 어울려."


나는 내가 진지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돌절구 설화를 보며 함박웃음을 지었고, 재미와 진지함의 줄다리기를 타는 소설을 쓰면서 즐거움을 느꼈다. 어쩌면 나는 유치한 사람일지도 몰랐다. 유머를 사랑하고 유치함을 즐기는 사람.


그리고 내가 쓰고 싶은 걸 썼을 때 반응이 더 좋았다. 돌절구를 심문하는 연극을 벌여서 범인을 찾아낸 원님의 지혜처럼 나도 내가 좋아하는 걸 찾기 위해서 이런저런 시도했다. 조금은 엉뚱하고 웃길지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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