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원천강에 도착한 오늘이는 난생처음으로 부모님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어요. 처음으로 음식을 배부르게 먹고, 폭신폭신한 침상 위에서 잠을 청했지요. 오늘이 덕분에 비로소 원천강은 활기를 되찾았답니다. 원천강의 왕과 왕비는 딸이 돌아온 걸 기뻐하며 잔치를 벌였어요. 오늘이는 맛난 음식을 잔뜩 먹으면서도 한편으론 불편했답니다.
오늘이가 원천강을 향할 때 마주했던 수많은 자가 떠올랐어요. 매일이, 연꽃나무, 장상 도령, 이무기까지. 그들은 지금도 매일 책을 읽고 공부하며 연꽃이 피지 않거나, 승천하지 못하는 걸 슬프게 여기겠지요. 밤낮없이 고민하던 오늘이는 결심했어요.
다시 돌아가서 그들의 고민을 이뤄주기로!
"그래도 여기 있는 게 편안하지 않겠니? 다시 돌아가면 그 고생을 또 해야 할 텐데."
"하지만 약속했는걸요?"
"네 뜻이 정녕 그렇다면 고민을 들어줄 수 있도록 지혜를 빌려주마."
왕과 왕비는 오늘이의 귓가에 속삭였어요. 그들의 고민을 들어줄 수 있는 지혜를 들은 오늘이의 두 눈이 커졌어요.
그렇게 오늘이는 만반의 준비를 마친 후, 원천강을 나섰습니다. 저 멀리 왕과 왕비가 손을 흔들었어요. 오늘이는 고민을 들어주기로 다짐하며 굳세게 나아갔습니다.
내 전공은 문예창작이다. 사실 처음부터 그 전공을 갖고 싶은 건 아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어릴 적 나는 더 글쓰기에 진심이었다. 쉬는 시간 10분을 쪼개서 공책에다가 글을 적었고, 시험기간에 주어지는 자습 시간 내내 글을 썼다.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매번 글만 써서 모두의 걱정을 샀다. 이렇게 막살다가 18살, 슬슬 생활기록부를 챙겨야 하는 시기가 도래했다.
사실 그 당시 내 꿈은 상담사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심리 상담사가 아닌, 정신건강 임상심리사였다. 심리학과에 진학해서 데이터 위주로 분석하는 임상심리사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내 성적의 극심한 반대로 그 꿈은 눈물을 흘리며 접게 되었다. 대신 나는 가장 잘할 수 있는 글쓰기를 선택했다. 한 번도 문예창작을 선택한 걸 후회하지 않았다. 왜냐고?
어차피 심리학과에 진학했어도 나는 어떻게든 문예창작을 했을 거다. 문예창작과 졸업 후에 학사를 따기 위해 심리학과에 진학했던 것처럼. 그렇다. 내 학사 전공은 무려 두 개다. 겁도 없이 심리학과에 진학한 후, 몹시 후회했다. 심리학은 방대하고 어려웠다. 학자가 왜 이리 많고, 이론은 뭐가 뭔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최악의 성적으로 올해 겨우 졸업했다. 괜히 심리학 학사가 적힌 걸 보면 뿌듯하기도 했다.
난 상담사는 아닌 심리학 전공자이지만, 어디 가서 전공자라고 말하기에 부끄러웠다. 대단한 것도 아니었으며 그냥 재미 삼아 시도한 공부에 불과했다. 그래도 전공이 두 개라는 점은 굉장한 메리트가 있었다. 사람을 분석하길 좋아하는 나는 여러 심리 이론을 통해 유추가 가능했다. 또 어쩌다 보니까 친구들이나 제자의 고민 상담을 들어주게 되었다. 이상하리만큼 사람들은 내게 자주 고민을 털어놓았다.
"뭔가 너한텐 다 얘기하게 돼. 그만큼 편하다는 건가?"
위로를 잘하지도, 어쭙잖은 조언조차 해주지 못했다. 내 특기는 그저 들어주기였다. 가끔 내게 냉철한 판단을 원하는 사람에겐 현실을 직시해 주는 것 빼곤 난 상담사로서 제 기능을 못했다. 길잡이가 되어주지도 않고, 그저 두기만 했다. 내게 본인 이야기를 털어놓은 사람들은 왜인지 홀가분해져서 갈길을 떠났다. 그 점이 재밌고도 신선했다. 나라는 존재가 대체 무엇인지 궁금하기도 했다.
나는 나를 볼 수 없기에 정확한 판단은 내 주변인에게 맡겼다. 그들은 내가 생각보다 다정하고 좋은 사람이라고 말해주었다. 내가 보는 나는 명절 때마다 마주치는 백수 삼촌 같은 느낌이었는데... 나쁘지 않은 평가에 흡족했다. 누구보다 나 자신이 궁금한 사람으로서, 어쩌면 심리학을 선택한 건 무수한 이유가 있으리라고 여겼다.
내가 바라는 건 상담사라는 직업이 아닌, 나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게 아니었을까? 문득 그런 의문이 들었다. 타인의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고 싶었다. 유체이탈을 할 순 없는 노릇이므로 나는 심리학에 몰두했다. 그 속엔 수많은 학자의 지혜가 서려 있으며 나는 그것들을 탐독하면서 가끔 정신이 번뜩였다. 아, 이래서 내가 그랬던 거구나?
깨달음이 차곡차곡 쌓이면 언젠가 내가 원하는 걸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오늘도 나는 도서관에서 심리학 도서를 대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