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괴롭히는 건

여의주

by 장아연


원천강을 떠난 오늘이가 처음으로 마주한 건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였어요. 이무기는 여전히 여의주 세 개를 든 채 시무룩했어요. 이무기 앞에 선 오늘이는 반갑게 손을 흔들었어요.


"오늘이야. 원천강에 다녀왔니?"

"응. 네 고민을 해결할 방도를 가져왔어."

"뭐? 정말? 그럼 나도 이제 용이 될 수 있는 거야?"


이무기는 몹시 기뻤어요. 그동안 수많은 이무기들이 여의주 하나로 승천하는 걸 보았거든요. 항상 그들을 부러워하던 이무기는 더 강한 용으로 승천하기 위해서 여의주를 세 개나 모았답니다. 하지만 이무기 혼자만 용이 될 수 없었지요.


"여의주 두 개를 버리고 하나만 가지면 넌 용이 될 수 있어."

"이 귀한 여의주를 두 개나 버리라고?"

"그래야 용이 될 수 있어."


이무기는 잠시 고민했어요. 이 여의주를 모은 건 힘들었지만, 그래도 오늘이의 말을 믿기로 했어요. 이무기는 여의주 두 개를 오늘이에게 선물로 주었어요. 그러자 하늘에서 번개가 치더니 이무기의 비늘이 번쩍였어요. 이무기는 그토록 바라던 용이 되었어요.




다다익선이라고 했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말을 굳게 믿었다. 나는 부지런하게 사는 편이었고 쉬는 법을 몰랐다. 한 번에 두세 개의 일을 하곤 했다. 항상 공부와 글,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는 게 내 삶의 낙이었다. 할 게 없거나, 갈 곳이 없으면 심하게 불안했다. 삶을 내 마음대로 직조할 순 없겠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노력으로 가능하다고 여겼다.


실제로 난 또래에 비하면 많은 걸 이뤘다. 도전하길 주저하지 않으며 하고 싶은 건 다 해야 직성이 풀렸다. 사람을 만나고 유흥을 즐기는 대신, 내가 뭘 할 수 있을지 늘 고민했다. 어제보다 오늘 더 나은 사람이 되려면 지금 내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냉철하게 판단했다. 나는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고 다 잘하고 싶었다. 내게 주어진 재능과 자원은 한정적이므로 할 수 있는 건 다 하고 싶었다.


"넌 볼 때마다 무언가 성공하고, 뭔가 하는 거 같아."


친구들은 많으면 한 달에 한 번, 적으면 1년에 한 번 정도 얼굴을 보았다. 잊지 않고 날 찾는 친구들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그들과 최고의 하루를 보냈다. 내 일상은 오로지 성취뿐이었다. 사소한 일들은 다 글쓰기를 하거나, 작품을 집필하거나, 독서하는 것뿐이었다.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번아웃이 당연한 줄 알았다. 번아웃을 이기는 건 번아웃이었다. 난 쉬는 법을 몰랐기에 번아웃이 오면 쉬지 않고 더 오래 책상 앞에 앉았다. 머릿속에 가득한 문장들을 다 쏟아내면 머리가 맑아졌다. 번아웃 따위도 노력으로 이겨냈다고 믿었다. 그게 스노볼처럼 더 방대해진 채 돌아올지도 모르고.


그 4월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무언가를 쓰고자 책상 앞에 나와도 한 문장 쓰기가 고역이었다. 머릿속은 이토록 복잡한데 괴로움에 아무것도 적을 수 없었다. 숨 한번 고르기 버거울 정도였다. 모든 게 다 방전되어 버린 기분이었지만, 난 마감을 앞두고 있는 사람이었다. 내겐 보내야 할 원고가 있었으므로 뭐라도 써야 했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괴롭게 만들었는가? 나는 이 세상을 탓했다. 하지만 천천히 되짚었을 때, 진짜 나를 괴롭게 한 건 세상이 아니었다. 세상은 친절하진 않아도 내게 여러 번 기회가 주었고, 나는 그걸 현명하게 이용했다. 그렇다면 나를 괴롭힌 건 정말 누구일까?


"볼 때마다 넌 너무 열심히 해. 좀 쉬면서 해. 놀면서 하든가."


몇 없는 친구들은 나를 걱정했다. 난 더 세게 채찍질했고, 쉬는 날이 거의 없었다. 안 그래도 공부와 아르바이트로 힘든 와중에 쉴 틈 없이 글만 쓰니까 점차 자아가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그때 깨달았다. 날 괴롭게 한 건 나 자신이라는 걸. '이걸론 안 돼!'라는 내 욕심이 나를 갉아먹었다는 걸.


여의주 2개를 포기한 이무기처럼 일단 누워서 곰곰이 생각했다. 내가 뭘 좋아할까, 이걸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며칠간 하릴없이 누워서 OTT를 시청했으며 밀린 웹소설을 시청했다. 그렇게 사흘째, 마치 하늘의 계시를 받듯이 내가 원하는 걸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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