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사가 되었습니다

터를 내어주세요

by 장아연


그의 이름은 오늘이었다. 어제도, 내일도 아닌 오늘. 오늘이는 푹신한 가죽 의자에 앉아 몸을 돌렸다. 의자가 뱅글뱅글 움직였다. 오늘이가 앉은 넓은 책상 앞엔 명패가 적혔다.


‘화원 상담사 정오늘’


그렇다. 오늘이 오늘인 이유는 이름이 정오늘이기 때문이었다. 끝없이 돌아가던 오늘이가 두 발을 책상 위로 올렸다. 편안하게 몸을 뉘어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수도 없이 쏟아지는 뉴스와 다양한 사건, 이름 모를 누군가의 죽음, 그리고 폭력들. 오늘만 해도 벌써 네 명의 사람이 살해당했고, 두 명이 실종되었으며 열 명은 병원 신세를 지는 중이었다.


오늘이는 컴퓨터 전원을 뽑아버렸다. 따분했다. 재밌는 일도 없고, 상담 의뢰는 일주일째 들어오지도 않고. 내 하루를 이런 곳에서 허비해도 괜찮은 건가? 시간은 벌써 오후 2시, 퇴근까지 3시간 남짓했다.


“지겨워죽겠네. 이 일을 때려치우든가 해야지.”


오늘이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도무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나는 누구인가, 내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원천강을 찾기 위해선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몰랐다.


“때려치우는 건 뭐, 쉽니?”


서랍 속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오늘이는 서랍을 열어 수정 구슬을 꺼냈다. 그 속엔 대왕 선녀의 얼굴이 비쳤다. 대왕 선녀는 눈썹을 찌푸리곤 호통 쳤다.


“너는 그게 문제야. 어린애가 말이야, 벌써 끈기가 없어서 되겠니? 내가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신입 선녀였을 땐 말이야…….”


또 그 소리였다. 오늘이는 귀를 막았다. 똑같이 반복되는 레퍼토리, 신입 선녀에서 대왕 선녀가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난과 역경이 있었는지 궁금하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이는 올해로 103세가 되었다.


“아, 몰라! 나 지금 물 주러 가야 해. 말 걸지 마!”

“야! 이게 얼마나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이야기인데!”


오늘이는 책상 뒤편에 우뚝 솟은 도구 더미를 들고 사물을 나섰다. 책상 위에 덩그러니 놓인 수정 구슬에선 대왕 선녀의 목소리가 윙윙댔다.


‘오늘의 화원’ 팻말이 걸린 곳엔 커다란 밭이 있었다. 약간의 거리를 두고 만들어진 네 개의 밭엔 사계절이 담겼다. 오른쪽 위엔 진달래와 개나리, 그 옆엔 수박과 참외밭, 밑엔 눈이 소복하게 쌓였으며 마지막으로 남은 곳엔 형형색색 낙엽이 가득했다. 오늘이는 정성껏 꽃들에 물을 주고, 다 자란 과일들을 수확해 카트에 넣었다. 갈퀴로 낙엽을 쓸어내고 삽으로 눈을 퍼냈다. 그나마 오늘이는 출근해서 하는 일 중 이 작업을 가장 좋아했다. 대왕 선녀와 수정 구슬로 대화하는 건 오늘이가 제일 싫어하는 일이었다.


100평이 넘는 밭들을 정신없이 관리하면 퇴근 시간이 코앞까지 다가오기 때문이었다.




이 소설은 지금으로부터 5년 전에 적었던 도입부였다. 기억도 나지 않는 원죄를 씻기 위해 상담사가 되어야 하는 오늘이와 어쩌다 보니까 상담소에서 일하게 된 심청이, 아기장수 우투리까지. 세 사람이 사람으로 환생한 설화 속 인물들의 고민을 들어주며 성장하는 소설이었다. 잘 되었느냐고? 글쎄. 만일 이 소설이 잘 되었으면 난 센세이션 작가로 남지 않았을까.


매년 수십 개의 소재를 수집하고, 그것 중 서너 개를 작품으로 만들었다. 그중에서 살아남는 건 고작 한두 개. 어떤 날엔 아무것도 건지지 못할 때도 있었다. 이걸 쓸 당시엔 나름대로 센세이션 하다고 생각했다. 그만한 능력이 되었는진 모르겠지만. 어쩌면 이 소설로 하여금 브런치에 연재할 에세이들의 소재를 모았을지도 몰랐다. 최선을 다해서 글을 적었고 기대에 잔뜩 부풀어서 이곳저곳 투고했다.


나는 어릴 적부터 상담을 굉장히 좋아했다. 비밀 유지가 기본인 자그마한 공간에서 상담사는 정해진 시간 동안 내담자의 말을 들어주었다. 설화 속 오늘이는 남의 고민을 들어주는 해결사이자, 상담사였다. 그 작은 호기심으로 시작한 소설은 아무것도 되지 못한 채 컴퓨터 파일 안에 들어갔다.


"너 소설은 뭐랄까. 되게 신선한데 교과서 같아."


방학 때면 동기들과 서로 작품을 공유하며 합평하는 스터디를 했다. 난 소설과 시 스터디를 3년 넘도록 했다. 내가 보는 내 작품과 남이 보는 내 소설은 확연히 달랐다. 나름대로 부드럽게 썼다고 생각해도 상대가 느끼는 건 천차만별이었다. 내 소설은 잘 짜인 작품이라고 말했다.


너무도 정교하게 짜여서 오히려 부담스럽다고 했다. 그럼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어려웠다. 한창 글이 써지지 않고 힘들 땐 과거의 내가 적은 소설을 살폈다. 대체 어떻게 쓴 거지? 싶은 소설들과 이게... 소설? 스러운 글들이 난무했다.


과거를 솎아내면 내일을 바라볼 힘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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