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육아 단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nda Apr 13. 2023

돌잔치 후 30년

아이의 돌잔치를 준비하다가

벌써 아이의 돌잔치를 준비해야 하는 시점이 다가왔다. 인터넷에 돌잔치를 검색해 보니 돌준맘(돌을 준비하는 엄마), 돌끝맘 (돌을 끝낸 엄마) 등의 단어가 있을 만큼 돌잔치는 또 하나의 큰 행사였다. 양가 가족만 모여 간소하게 한다고 하더라도, 어디에서 돌잔치를 할지, 돌상은 어떻게 할 것인지, 의상은 어떻게 할 것인지, 답례품은 무엇을 할지 등등 결정 내려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아이를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여유가 없는데 가족행사까지 준비하는 것이 부담되어 집에서 대충 해버릴까 싶었지만, 문득 이렇게 양가 가족이 모두 모이는 모임이 이번 돌잔치 후면 적어도 30년 뒤 (아이가 결혼을 한다는 가정 하에) 아이의 결혼식 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다 같이 만나는 것이 흔치도 않으니 이왕이면 좋은 기억으로 남을 수 있게 밥도 조금은 더 맛있었으면 좋겠고, 아이도 더 예쁘게 보이면 좋겠다는 생각에 결국 이것저것 열심히 준비하게 됐다.


이제 복귀를 앞두고 있어서 육아를 도와주시기로 한 어머님과 미리 함께 지내면서 육아 합을 맞춰나가고 있는데, 어머님과 돌잔치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양가 가족이 다 같이 만나는 게 돌잔치 다음에는 30년 뒤 결혼식이더라고요. 잘 준비해야겠어요.’ 등의 이야기를 웃으며 나누었다. 어머님은 주말이 되면 본가에 가셔서 쉬고 월요일에 돌아오시는데, 돌아오신 어머님이 내 이야기를 듣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며 이야기 하나를 해주셨다. 주말 동안도 어머님은 아이에게 줄 이유식을 아버님과 만드느라 바쁘셨는데, 두 분이 이유식을 만들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고 했다.


돌잔치 후 30년 뒤쯤에는 나나 당신이나 우리 둘이 없을 수도 있겠네. 우리는 애기 결혼식 못 볼 수도 있겠다.


그런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가 이렇게 이유식 열심히 만드는 것을 영상이라도 남겨놔야 하는 것 아니냐’며 어머님과 아버님은 웃으셨다고 했다. 지금 이렇게 주말마다 이유식을 하고, 도맡아 육아를 하시지만 이 아이의 30년 뒤에는 자신이 없을 수도 있다는 그 이야기를 듣다가 왈칵 눈물이 났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인생의 유한함에 대해 늘 생각하게 된다. 맑고 무해한 아이를 보다가, ‘이 아이가 할머니가 된 모습은 내가 보지 못하겠구나.’라는 생각이 스치듯 난다거나, 어머님의 말씀처럼 ‘돌잔치 후 30년 뒤 우리는 다 같이 만날 수 있을까’라는 생각까지.


지금 순간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인지할 때마다 지금이 너무 소중하게 느껴져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그런 생각도 한 적이 있다. 육아휴직 동안 아이를 안고서 정릉천을 산책할 때, 천천히 걸으며 불어오는 바람도 느끼고, 아이가 나를 보고 환하게 웃고, 어르신들이 아기가 이쁘다며 말을 한마디씩 걸어주실 때, 그 순간순간이 너무 행복했다. 내가 죽기 전에 한 장면을 선택해 그 장면 속에서 죽을 수 있다면, 나는 이렇게 아이를 품에 안고 산책하는 장면 속에서 죽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그만큼 그 순간이 너무 소중했고, 영원 속에 담아두고 싶었다.  


아마 이번 돌잔치에서는 이 이야기를 먼저 하고 행사를 시작할 것 같다.


오늘 돌잔치 이후 또 다 같이 모일 행사는 적어도 30년 뒤 아이의 결혼식 날이 아닌가 싶다. 오랫동안 보기 어려운 만큼, 더 많이 눈을 맞추고 이야기 나누고, 오늘을 충분히 즐기셨으면 좋겠다고.





매거진의 이전글 행복이와 약속한 3가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