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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육아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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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da Nov 03. 2022

행복이와 약속한 3가지

조리원에서 아이를 안고서 했던 약속들

아이가 태어난 지 어느새 5개월이 되어간다. 아이를 매일 보면서 어른의 하루와 아이의 하루, 그 밀도가 다름이 느껴진다. 하루가 다르게 아이의 뼈가 여물고 살이 오르는 것을 느끼면서, 그래서 나보다 더 밀도 높은 하루들을 살아가고 있는 딸아이를 보면서, 조리원에서 아이를 안고서 했던 약속들을 다시금 생각해본다. 태어난 지 며칠 되지 않아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는 아이를 안고서 했던 3가지 약속이었다.


1. 행복이의 마음이 평온하도록, 도움이 필요할 때 버팀목이 될 것. 행복이의 성격이 혹여나 나를 닮아 성공에 대한 압박 같은 것들에 괴로워하는 성격이라면, 33살의 나는 이것을 어떻게 컨트롤하는지 알고 있으니, 행복이가 이와 비슷한 스트레스를 받게 될 때 이를 가장 잘 알려줄 수 있는 사람이 나니까, 행복이가 도움을 필요로 할 때 버팀목이 되어주겠다는 것.

아이의 이름을 짓기 위해 아이의 생년월일시를 작명가에게 전달하고, 사주풀이와 함께 이 사주에 어울리는 이름을 받았었다. 작명가가 말하길 아이가 총명하고 재능이 많은데, 또 그만큼 욕심이 많다 그랬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난 직후라 이 약속이 첫 번째 약속이 되었다.

10대, 20대 때의 나는 늘 마음이 시끄러웠다. 누구보다 바쁘고 열심히 살고 있으면서도, 이렇게 나태하게 있으면 안된다며 늘 스스로를 채근했다. 남들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한 채 원했던 것들을 달성하기도 하고, 또 그것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닫기도 하면서 그제야 마음이 평온해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표창장 대신에, 매일의 루틴을 지키는 것, 내 생각을 글로 풀어내는 것들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고 있다. 그래서 혹여나 아이의 성격이 나를 닮는다면 (물론 이 성격으로 얻은 것들이 많기도 하다.) 오늘을 사는 법이나, 남들의 시선에 독립하는 법처럼 지금의 나만이 알려줄 수 있는 것을 차근히 알려줘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아이의 이름 후보들 중에서 재산을 많이 모을 수 있다는 이름 대신 마음이 평온해질 것이라는 이름을 택했다.


2. 행복이가 살아가는 것, 독립하는 것을 걱정하지 않도록 비빌 언덕이 되어 주겠다는 것. 어느 순간 작아져버린 부모 대신, 도움을 줘야 하는 부모 대신에 아이가 언제든 기댈 수 있는 비빌 언덕이 되어주겠다는 것.

<아이 낳기를 고민합니다>라는 브런치북에 썼듯, 내가 내 밥벌이를 하려고 독립하려는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독립할 때 ‘내가 이 세상을 혼자 살아가는 존재구나.’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누군가 대신해줄 수도 없고, 그렇다고 기댈 곳도 없이 스스로 부딪혀야만 하는 상황들을 마주하면서 그렇게 외로울 수가 없었다. 그렇게 겨우 밥벌이를 시작하자 나의 엄마는 그 세대가 당연하게 했던 것처럼, 이제는 내가 부모님께 용돈을 드리며 키워주신 은혜를 갚아야 할 차례라고 말했다. 내 20대가 왜 그렇게 힘들었을까 생각해보면, 안 그래도 독립하는 것이 쉽지 않은 세상에서, 부모님 역시 은혜를 되갚기를 바랐기 때문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행복이는 혹여나 앞으로도 나에게 되갚을 필요 없이, 되갚아야겠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게, 그렇게 늘 비빌 언덕으로 자리를 지켜야겠다고 생각했다. 버릇없게 키우진 않을 테니, ‘엄마가 있어서 다행이야.’라는 생각을 하도록. 독립할 때 조언이든 그 무엇이 되었든 어떤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이 들 때마다,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들 중 하나로 내가 떠오르길. 그래서 더 열심히 돈을 벌고, 열심히 사회생활을 지속해야겠다고 생각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parenthood


3. 행복이와 보내는 시간을 1순위로 할 것. 나의 자아실현도 중요하지만 내가 이 세상에 행복이를 데려온 이상 나는 행복이에 대한 ‘책임’이 있으니까, 무조건 행복이와의 시간을 1순위로 할 것.

언제나 비빌 언덕이 되기 위해 열심히 살아야겠지만, 그럼에도 아이와 보내는 시간을 1순위로 하겠다고 다짐했다. 엘론 머스크의 말처럼 아이는 스스로 태어나겠다고 선택한 적이 없다. 내가 아이를 가지기로 선택했고, 그래서 아이는 내게 빚진 것이 아무것도 없고, 내가 아이에게 모든 것을 빚졌다는 말을 늘 기억한다. (“My children didn’t choose to be born. I chose to have children. They owe me nothing. I owe them everything.”) 남편과 내가 아이와 함께 하는 삶이 더 행복할 것 같아서, 우리를 닮은 아이가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 라는 이유로 아이를 이 세상에 데려왔는데, 아이가 태어난 것을 후회하지 않도록, 아이의 행복에 빚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이가 이 세상을 힘들다, 외롭다 느끼지 않게 비빌 언덕이 되어주면서도, 아이와 보내는 시간을 1순위로 두겠다는 것. 아이가 금세 크고 나면 부모보다 친구가 더 소중해질 날이 올텐데, 그 유한한 시간 동안 아이가 서운해할 일이 없도록 바쁘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3가지 약속을 했었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는 아이가 살아갈 세상이 어떤 모습이면 좋을지,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 할까 등의 고민을 했다면, 막상 아이가 태어나고 나니 내 고민들은 참으로 원초적으로 변했다. 왜 아이가 우유를 적게 먹는지, 왜 오늘은 낮잠을 적게 자는지 등등 그렇게 아이의 성장에만 고민하다 보면 내가 아이를 세상에 데려올 때의 다짐을 잊고는 한다. 잊지 않도록 글로 다시 한번 기록해본다.


아이가 자신의 태명처럼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를, 그래서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내가 해야 할 일들에 대해 오늘도 고민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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