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일상이 지루하게 느껴질 때 나를 지키는 법
몇 해 전 일이다. 어느 날 적막한 사무실에서 인턴이 갑자기 외마디 비명처럼 이런 말을 외쳤다.
“아 놀고 싶다! 다들 어떻게 그렇게 열정을 가지고 일을 해요?”
자신도 모르게 마음속 말을 뱉어버린 인턴이 다들 귀엽다며 넘어갔는데, 그 당시 머릿속을 스치듯 지나간 생각은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은 어떤 날엔 열정도 있겠지만, 또 어떤 날은 ’그냥 해야지’ 하며 책상 앞에 반복해서 앉는 관성의 힘이 아닐까란 생각이었다.
그 인턴 친구처럼 나 역시도 가끔씩은 반복되는 일상이 눈에 너무 잘 보이는 날들이 있었다. 어떤 일이든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르다 보니 긴장감 속에서 일을 시작하지만, 얼마간 시간이 지나고 나면 일이 손에 익으면서 긴장했던 마음은 사라지고, 대신에 무언가 반복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리고 ‘다들 이렇게 사는지’ 궁금증도 생긴다. 그때 나를 도왔던 것을 생각해 보면 이 일의 의미를 찾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반복되는 일상에 져버린 채 해이하게 사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앞으로 나아가는 관성의 힘이었다.
처음에 의미를 찾으려고 했을 때 두 가지가 걸렸다. 의미를 찾으려다 보면, ‘이 일이 정말 내가 평생동안 해야 하는 단 하나의 일이 맞나?’라는 질문을 하게 되고, 정말 내게 딱 맞는 일이라면 응당 매일 심장이 뛰고, 매일 설레면서 해야 할 것 같은데 지금의 나는 영혼 없이 반복하는 것처럼 느껴지고 있기 때문에 지금 내가 하는 일은 한없이 작아졌다.
그리고 이 일이 내 일이라는 생각이 든 상황에서 의미를 찾자니, 그런 의미는 ‘몇 년 후처럼 먼 미래의 일’인 경우가 많았다. 고등학생 때는 지금 공부를 하는 것이 맞고, 의미를 찾자니 수능 이후 대학교에 가서 행복한 내 모습처럼 몇 년 후의 모습만이 의미를 찾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리고 내가 만약 운동선수라고 상상을 해보아도, 의미를 찾으려면 4년마다 있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상상을 하는 것처럼 몇 년 후의 일이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그리는 것이 반복되는 일상을 살아가는데 분명 도움이 될 때도 있겠지만, 가끔은 원하는 미래에 비해 오늘의 나는 그렇지 못하기에 오늘의 내 모습에서 괴리를 더 느끼게 할 뿐이었다.
그렇다고 반복되는 일상에 져버린 채 해이하게 사는 것은 당연히 원하지 않았다. 그때 내가 찾은 방법은 관성의 힘이었다. 먼 미래를 바라보지도 않고, 의미를 찾지도 않고, 그냥 내게 주어진 일이니 그냥 한다는 마음이었다. 원하는 직무를 막 시작했을 때, 원하던 회사에 입사했을 때처럼 무언가를 얻어낸 직후는 열정이 샘솟고 이 자리에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설레고 열정적이었지만, 그 이후 대부분의 시간은 관성의 힘이었다. 보고서를 만들어야 하고, 내일 미팅 준비를 위해 야근을 하고, 그것을 매주 반복하게 될 때는 더는 즐거움이나 설렘이 남아있지 않았다. 그렇게 '내게 주어진 일이니 그냥 한다.', '그냥 해야지 어쩌겠어.' 이유 없는 관성, 그것이 나를 도왔다. 그리고 일에 대한 열정은 어디에서 부여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내 앞에 주어진 길을 묵묵히 걸으면서 그 안에서 성장하는 나를 발견하고 거기서 재미를 찾는 것 아닐까란 생각을 하게 됐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소울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학교 음악 선생님으로 일하면서, 재즈 연주자로 사는 것을 평생 꿈꿔오던 주인공이 여러 우여곡절 끝에 결국 원하던 재즈 팀에서 첫 공연을 마치게 된다. 첫 공연에서 느꼈던 황홀함도 잠시, 퇴근길에 주인공은 무언가 허무함을 느끼고 동료와 이런 이야기를 나눈다.
“다음은 뭐죠?”
“내일 밤 다시 와서 또 하는 거지.”
“평생 오늘만을 기다렸는데 상상하던 기분과 좀 달라서요."
그러자 동료는 큰 바다를 찾는 물고기 이야기를 해준다.
I heard this story about a fish.
He swims up to an older fish and says,
"I'm trying to find this thing they call 'the ocean.!"
"The ocean? the older fish says, "That's what you're in right now."
"This?" says the young fish. "This is water. What I want is the ocean!"
큰 바다를 찾는 물고기에게 지금 있는 곳이 큰 바다라고 말해주자, 그 물고기는 이렇게 말한다.
‘이건 그냥 물이에요. 나는 큰 바다를 찾고 있다고요.’
이 장면을 보면서, 우리가 하는 일에서 계속해서 열정을 찾는 것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했다. 하늘에서 부여된 것 같은 단 하나의 일을 기다리면서, 그런 일을 찾기만 하면 열정을 불사 지르며 열심히 일할 준비가 되어있다고 말하지만, 실은 그런 일은 하늘에서 갑자기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 앞에 주어진 일에서 그런 의미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아닐까 하고.
그렇게 관성의 힘으로, 매일 반복하며 성장하다 보면 어느새 큰 바다 안에서 신나게 살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렇게 또 반복되는 것처럼 느껴지는 일상을 다시 새롭게 살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