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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아웃이 왔을 때 나를 구하는 법

귀여운 것이 세상을 구한다.

by Onda

2년마다 찾아오는 번아웃

그렇게 단단한 마음으로 버틴다 하더라도 계속 달리다 보면 지치고는 했다. 또다시 번아웃이 올 때까지 나를 밀어붙였다. 잘하고 싶었던 마음은 더 잘하지 못한 나를 채찍질했고, 애쓴 만큼 날카로워진 그 마음이 결국 나를 겨눴다. 내가 문제인지, 그동안 강도 높은 회사만 선택해서인지, 2년 주기로 번아웃을 겪고 있다. 그래도 그간 반복되는 번아웃에서 몇 가지 문장으로 나를 돌보는 법을 배우기도 했다.

너무 먼 미래를 생각하지 말고, 오늘을 살 것.
오늘 내가 배운 것, 얻은 것에만 집중할 것.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 커피 한 잔, 예능 한 편을 온전히 즐길 것.


이렇게 나를 돌보지만, 내 에너지도 총량이 있다는 것을 잊은 채 최선을 다하다가 에너지가 바닥나고 나서야 지쳤다는 것을 알아차리기를 몇 년째 반복 중이다. 올여름도 그랬다. 이번 글에서는 번아웃이 왔을 때 어떻게 나를 달래는지 이야기하려 한다. 일을 그만두지 않는 한 오늘도 1인분 몫은 해내야 하는데, 그때 어떻게 지친 나를 토닥이며 일터로 보내는지, 더 나아가 해결책이 있는지 고민하는 글이다.


내 에너지의 총량: 나는 회사에서 얼마를 얻고 얼마를 잃고 있었을까.

번아웃은 힘들어서 오는 게 아니라, 내가 에너지를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클 때, 그래서 내 에너지가 모두 바닥날 때 온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회사라는 곳은 번아웃이 올 수밖에 없나 싶었다. 내가 이 일이 좋고 잘해보고 싶어서 새로운 것을 배우면서 얻는 에너지는 +20, +30 정도의 느낌, 거기에 더해 내가 그동안 얻은 문장들처럼 오늘에만 집중하고, 오늘의 커피 한 잔을 즐기면서 얻는 에너지는 +3, +5 같은 느낌이다. 그런데 수익을 창출해야만 하는 회사 특성상, 이번 달 목표 미달이 예상되어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짜내야 할 때, 회사가 이 일을 왜 제대로 못하는지 되물을 때는 내 에너지가 -60, -70씩 빠지는 느낌이었다. 내가 이 일을 잘하고 싶어 할수록 회사에서의 평가나 일의 압박감은 더 크게 에너지를 뺏어갔다. 그동안 얻은 문장들을 새기며 오늘 배운 것에만 집중했지만, 회사 일에서 더 크게 에너지가 빠지니까 속절없이 에너지가 바닥나고 말았다.


나에게 찾아온 번아웃 신호들

내가 맡은 일이 3개월 새에 4번 바뀌고, 4번째 일에도 얼른 달려서 결과물을 내야 하는데, 내 몸과 마음이 더 이상 달리지 못한다고 경고음을 울려댔다. 예전에는 쉽게 의사 결정 내렸을 상황에도 머리가 멈춰서 모니터만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그리고 일에서 작은 변화를 만나거나 누군가의 말을 들을 때 ‘안 될 것 같은데?’ 부정적인 생각이 떠오르고, ‘하기 싫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리고 동료들과 같이 점심 먹으면서 스몰토크하는 상황이 갑자기 이상하게 느껴졌다. 회사 일에 이렇게 압박감이 큰데 갑자기 점심시간에만 웃으면서 일상을 이야기하는 것이 낯설게 느껴졌다.

회사에서는 늘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막상 퇴근하거나 휴가를 낸 이후에는 회사 생각에 쉬지 못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손도 못 대고 있는 일들, 내가 했던 실수들, 내일 있을 미팅들이 떠오르며 갑자기 한숨 쉬는 나를 발견했다. 그제야 '아 내가 회사 생각을 또 했구나.' 뒤늦게 인지할 뿐이었다. 회사 일은 마음속에 큰 돌덩이가 되어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글 쓰는 것이 내게는 큰 보상이었는데, '내가 지금 일도 잘 못하는데 글 쓸 시간이 어디 있어.', '마케팅, 일하는 법에 대해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해.'처럼 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에너지가 바닥나고 불과 며칠 사이에 내 일상은 빠르게 무너지고, 내가 더 이상 내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번아웃이 왔을 때 직장인이 내릴 수 있는 3가지 선택

예전에 퇴사를 앞둔 동료와 커피챗을 하는데, 자신이 번아웃이라며 이를 해결하려고 이직하게 되었다며 내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자신이 생각하기에는 번아웃에는 3가지 해결책이 있다고 했다. 1) 있는 자리에서 버티면서 개선을 도모하거나 2) 이직처럼 환경을 바꿔서 리프레쉬하거나 3) 퇴사처럼 일단 떠나는 것. 동료는 예전에 그냥 떠나는 것을 선택했는데, 아무 대책 없이 퇴사를 했더니 앞으로의 미래가 너무 걱정돼서 번아웃에 불안증까지 더해져 더 괴로웠다고 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번아웃을 인지한 순간 바로 채용공고를 찾고 면접을 보면서 이직하게 되었다고 했다.


나는 대체로 버티는 것을 선택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그동안 나는 어떻게 했나 돌이켜보는데 대체로 '있는 자리에서 버티는 것'을 선택했다. 아직 이직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지금의 이 시간이 내가 바라는 미래에 필요하다고 믿어서, 또는 다른 것을 선택할 만큼 이 길에 미련을 못 버려서 등등 여러 이유로 악을 쓰든 어르고 달래든 버텨왔던 것 같다.

그리고 어떤 때는 ‘버티는 것’ 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기도 했다. 아이 엄마가 된 후에 회사 생활과 육아를 동시에 하느라 힘들어 번아웃이 왔는데, 내가 아이의 엄마인 것은 바꿀 수도 없고 바꾸고 싶지도 않았다. 그때 심리 상담에서는 이런 조언을 들었다. “어린아이를 키우는 건 본래 힘든 일이니, 회사까지 힘들면 안 된다. 가치관을 재정비해 균형을 찾을 수 있는 회사를 찾아야 한다.” 그 말에 공감하면서도 대한민국에 그런 회사가 존재하기는 할까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키워야 하고, 나 스스로도 ‘균형 잡힌 회사’를 원했지만, 현실은 밥벌이가 먼저였다. 퇴사는 선택지에서 제외됐고, 지금 회사에서 그래도 적응 중이니 결국 ‘버틴다’ 외엔 다른 길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회사는 기다려주지 않았다.

어렵게 버티는 것을 선택했지만, 결코 버티는 것이 환경을 바꾸거나 떠나는 것만큼 쉽지 않았다. 회사라는 곳은 내가 너무 열심히 하느라 지쳐서 번아웃이 왔다고 이를 인정해 주지도, 다시 회복할 때까지 기다려주지도 않는 곳이니까. 몸에서는 비상등을 켜고 저전력 모드로 들어갔는데 내게 주어지는 일과 기대치는 평소와 같고, 그래서 지친 상태에서 더 노력해야만 평소의 아웃풋을 흉내라도 내는 상황이 어려웠다. 지쳐서 쓰러졌더니 모래주머니를 달고 더 달려야 하는 상황처럼 느껴졌다.

어떤 상황이 와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단단한 나를 만나고 싶었다. 버티며 개선을 도모하는 일, 환경을 바꾸는 일, 그곳을 떠나는 일. 무엇이든 정답은 없지만, 가장 먼저 회복되어야 하는 것은 나 자신이라는 것만은 분명했다.


그래서 내가 어떻게 버텼나 돌이켜보면,

그래도 버티는 건 내가 제일 잘하는 것 중 하나인데, 그때 나를 일터로 돌아가도록 달랜 것이 무엇인지 돌이켜보면 다음과 같다.


1. 귀여운 것이 세상을 구한다

회사에 출근하는 것조차 버거울 때 오늘도 버텼다는 생각에 달력에 엑스표를 치기 시작했다. 그러다 내가 마치 출소날을 기다리는 죄수처럼 느껴져서 엑스표 치기를 멈췄다. 대신 포도알을 채우기 시작했다. 무얼 이룰 것도 없이 그냥 오늘 하루를 잘 버텨낸 것에 스스로 칭찬하는 마음으로 포도알 스티커를 붙여줬다. 오늘 일을 잘 못했어도, 글을 못 썼어도 나는 오늘 하루를 잘 살아냈다고 포도알을 선물했다.



내게는 작은 돈으로 나를 확실히 회복시키는 카테고리가 문구인데 지칠 때 문구 쇼핑을 했다. 떡메모지, 작은 노트, 예쁜 펜. 실컷 예쁜 것들을 구경하고 문구를 사서 집에 돌아오는 길은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내 친한 언니는 한 때 비눗방울을 불었다. 삶이 너무 힘드니까, 그냥 짧은 순간이더라도 내게 에너지를 채우는 일들을 일부러 만들었다.

그렇게 내게 보상을 주는 것들을 늘려나가기 시작했다. 물론 지치기 전에도 내게 보상을 주는 것들이 있었지만, 지친 이후에는 그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1번 할 일은, 나를 충만하게 하는 것들로 채우기였다. 일부러 더 그런 것들을 찾고 보는데 시간을 늘렸다.


2. 그리고 시선은 짧게, '오늘'만 보았다. 오늘도 버겁다면 '앞으로 1시간'처럼 내 앞에 놓인 과제만 집중했다. 그리고 더는 의미 부여하지 않았다.

앞으로 해야 할 큰 과업들이 많겠지만, 다 잊고서 투두리스트에 오늘 해야 할 일만 적고 빨간펜으로 지워가는 것에 집중했다.

오늘은 이것만 끝내자.


회사 일에도 더 욕심부리지 않았다. 큰 일들 모르겠고, '내가 정말 꼭 해야 하는 일 펑크 내지 않고 잘 끝내기'만 집중했다. 이 일만 끝내면 나는 오늘 훌륭하게 잘하고 있는 것. 오늘 하루를 버텼다면 그것만으로 나는 오늘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오늘 하루 내가 해야 할 일을 잘 끝내는 날들을 차곡차곡 쌓으며 에너지를 조금씩 채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늘만 보면서도, 내 스스로 기간을 정하는 것도 도움이 됐다. 나만의 떠나는 날을 정해놓고, 디데이를 셌었다. 오늘 할 일에 집중해서 딱 3개월만 해보자. 3개월 뒤에도 괴롭다면 그때는 환경을 바꾸거나 떠나자. 내 스스로를 다독이며 날짜를 셌다.


3. 그러면 다르게 볼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결국 번아웃이 언제 회복되었나 돌이켜보면, 결국 내 에너지가 -50, -60씩 크게 빠지는 상황이 해결되었을 때였다. 에너지가 조금은 채워지도록 내 주변에 귀여운 것을 늘리고, 투두리스트에 오늘 할 일을 지우는데만 집중하면서 에너지를 조금씩 만들어가는 게 시작이었다. 그렇게 루틴처럼 나를 돌보는 활동들이 자리를 잡아가면, 조금씩 지금 일에서 의미를 찾거나 (여전히 힘들지만 그럼에도 내게 도움 된다 라는 의미를 찾거나), 그 와중에도 무언가 배워나가고 해결해 나가면서 +10, +30씩 에너지가 쌓이기 시작했다. 그 일이 조금은 익숙해지거나 혹은 그 상황을 다르게 볼 수 있는 여력이 생기거나, 아니면 이 일이나 회사가 나와 맞지 않는다고 결단을 내려서 떠날 용기를 얻는다던지. 그렇게 나를 다독이면서 바로 눈앞에 있는 과제만 집중하면서 하루를 보내다 정신을 차려보면 더 이상 포도알을 붙이지 않아도, 투두리스트를 지워나가지 않아도 평소처럼 일을 해내고 있는 나를 만나고는 했다.


멀리 떠나고 싶을 때 그때 떠나면 안 됩니다!

최근에 유퀴즈에서 무기력에 대해 이야기하는 윤대현 의사 편을 보게 되었다. 유튜브를 보다 강력한 썸네일에 이끌려 영상을 보게 됐는데, ‘멀리 떠나고 싶을 때 그때 떠나면 안 됩니다.’라는 문장이었다. 그리고 내가 그동안 했던 이야기와 비슷한 이야기들을 해주셨다. 마음 편히 사는 것이 불가능한 것을 인정하고, 대신 불편한 마음을 잘 버텨내며 몸을 건강히 유지하자고 했다. 그리고 오늘 하루만 버티자고 했다. 내게는 커피 한 잔, 글쓰기 시간, 그리고 지난여름은 포도알이었다.


일을 열심히 했고, 그래서 한 템포 늦춰가라고 내 몸이 반응하는 것을 자책하지 않아야겠다고 배웠다. 이번 번아웃은 예전과 다르게 그동안 계획했던 휴직을 앞당기면서 환경을 바꿀 수 있게 되어 자연스레 해소되었다. 그럼에도 다시 나는 열심히 달릴 거고 또 번아웃을 만날 수 있을 텐데, 이제는 이렇게 글로도 정리해 두었으니, 다시 지친다면 이제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지쳤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왜 더 달리지 못하느냐고 나를 공격하지 않기로. 그리고 내게 행복을 주는 것에 집중하고, 오늘 할 일만 끝내면서 조금씩 나를 돌보다 보면, 힘든 상황을 다르게 볼 여유나 일을 조금씩 풀어나갈 힘이 생길 것이다.


누군가 지쳤다면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일, 오늘 하루를 잘 살아내는 일.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모두가 오늘의 내게만 집중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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