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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텨야 할 때와 그만두어야 할 때를 구분하기

버티는 시간이 필요는 하지만,

by Onda

작은 행복을 하나씩 채우고 나만의 베이스캠프를 만들어 마음을 회복하더라도, 회사 일이 나와 맞지 않거나 일이 너무 힘들거나, 내가 놓인 상황 자체가 힘들면 여전히 내 마음은 다칠 수밖에 없었다. 그럴 때는 내 마음을 지키기 위해서 언제 버티고 언제 떠나야 하는지 구분하는 힘이 필요했다.


나는 대체로 버티는 것을 택했다.

회사 생활이 쉬웠던 적은 없고, 나는 대체로 버티는 것을 택했다. 애초에 내가 빡센 곳만 선택해서인지 회사는 늘 빨랐고, 전속력으로 달려야 했다. 새벽까지 일하고 택시에 몸을 욱여넣을 때, 오늘 하루 일을 잘 끝냈다는 뿌듯함 대신, 아직 끝내지 못한 일에 마음이 불편했다. 너덜너덜해진 마음 때문에 퇴근하고 더는 일할 수 없으면서도 머리는 아직 끝내지 못한 일, 보고서의 숫자 실수들이 떠오르면서 팽팽 돌아 잠도 쉬이 들지 못했다. 그리고 다음 날 다시 전속력으로 달리고, 또 새벽 택시를 타던 시간은 계속되었다.


버티는 시간이 필요한가?

버티던 당시 내가 갖고 있던 질문은, 버티는 게 맞나? 언제까지 버틸 수 있나?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버티나? 등등 ‘버티는 시간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이었다. 이 길이 맞는 것 같아서 버티기는 하는데, 마음은 고통 속에 있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사나 이야기를 찾아보면 자신이 선택한 일에 희열을 느끼면서 달리는 사람들의 이야기, 또 다른 한편에는 너무 지쳐서 퇴사하고 어딘가로 떠나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만 있었다. 자신이 서 있는 곳에서 버티는 사람의 이야기는 들을 수 없었다.

버티는 것과 관련된 수많은 이야기들이 나를 헷갈리게 했다. 오늘부터 행복해야 한다는 말과 미래의 나를 위해 오늘을 투자해야 한다는 말 사이에서 괴로웠다.


적어도 이 버팀이 내게 도움이 될 거란 믿음

그 당시 버티는 시간이 필요한지도 모르겠고, 어떻게 버티는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 버팀이 내가 원하는 미래에 도움이 될 거란 믿음은 있었다. 그 당시 나는 마케터로 무언가를 하고 싶었고, 여기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서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지금, 11년 차가 되어서 버티는 시간이 필요한가 라는 질문에 ‘이 일이 내 미래에 도움이 된다면, 버티는 시기가 필요는 하다’라고 답을 내리게 되었다. 운동을 할 때도 더는 못할 것 같을 때 한 번 더 해야만 근력이 생기듯, ‘헤맨 만큼 내 땅이다’라는 말처럼 버틴 시간들 덕분에 내가 지금 살만해진 것도 맞아서, 버티는 시간이 필요는 하다고 생각이 바뀌었다.


버텨야 할 때와 그만두어야 할 때를 구분하는 지혜

그런데 더 고민해 보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작정 버티는 맷집도 아니고, 그만두는 끈기 없음도 아니고, 그 둘을 구분할 수 있었던 지혜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나는 다음 두 가지 구분 기준이 생겼다.


1. 이 버팀의 시간이 내가 원하는 미래에 도움이 되는가?

지금 버틸수록 내가 원하는 미래와 멀어진다면 떠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대체로 버티는 것을 택했다고 했지만, 첫 회사는 6개월 만에 퇴사했었다. 업무 난이도는 오히려 그동안 경험했던 회사 중에서 낮은 편이었고, 오래 다니려면 다닐 수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첫 회사는 편의점 MD 자리였고, 이 일을 버틸수록 내가 원하는 모습과 멀어진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버티는 게 오늘의 월급이라면 그만두어야 한다.

그리고 누군가 지금 여기서 버텨서 ‘돈을 벌어야’ 내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면, ‘오늘의 나에게 집중할 것’에서 말했듯 조승연 님이 말한 911 테러에 죽은 월스트리트 형님들 이야기를 다시 말해주고 싶다. 월스트리트에서 10년만 버티면 원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말하던 형들, 매일 죽고 싶다고 말하면서 8년, 9년 버티던 형들이 죽었다고. 우리가 기다리는 ‘나중’이라는 순간이 오지 않을 수도 있다고.

지금 좋아 죽겠는 일을 선택해도, ‘버티는 시간’은 무조건 필요한데, 좋아하지도 않는 일을 돈 때문에 버티는 건 너무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다.



스스로에게 여정이 보상인 삶을 사는 것

송길영 님이 유튜브에서 했던 이야기를 곱씹는 편이다. 고양이를 좋아한다면 돈이 되지 않더라도 당장 지금부터 고양이를 키우고 관찰하라고. 10년쯤 뒤에 고양이가 대세가 되면 나는 고양이 전문가로 돈을 벌게 될 거라고.


만약 고양이가 대세인 시대가 오지 않는다면?


그럼 어때요!
10년 동안 좋아하는 고양이를 실컷 보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잖아요.




2. 이 일이 미래에 아무리 도움이 되더라도, 지금의 나를 망칠 것 같은가?

그리고 나를 망치면서까지 해야 할 일은 없다. 아무리 이 일이 내가 원하는 모습에 가깝게 데려가준다고 할지라도, 오늘의 내가 망가지면 미래는 없다. 나는 미련해서 내가 망가질 때까지 버티는 걸 선택하는 편이었는데, 시간이 지나고 그 시기를 돌아보면 내가 좀 안쓰럽다.


그렇게까지 버틸 일은 없었는데.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 일은 없었는데.


버티는 시간이 미래를 생각하면 도움이 되는 것도 맞지만, 특정 임계치를 넘어서면 원래의 성격을 잃고 변형되어 버리는 광물처럼, 아무리 버팀의 시간이 도움이 된다 할지라도 나를 잃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나도 나를 지키기 위해 그만두는 것을 잘 못하기는 했지만, 이제 엄마가 되어 ‘내 딸이 지금 이 상황이라면?’이라는 질문을 던져본다. 내 딸이 이 상황에 있을 때 미래를 위해 버티라고 할 것인가? 내 딸이 자신을 잃어가면서까지 버티는 걸 상상도 하고 싶지 않다. 내 딸을 대하듯 소중하게 나를 대하려 한다.




그 기준으로 가장 최근에 있었던 이커머스에서 보내던 시간이 버텨야 할 때인지 그만두어야 할 때인지를 본다. 그리고 전환점 앞에 서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몇 년 전 P&G에서 버티던 시간을 보낼 때 원하던 미래는 ‘마케터로 일하기’ 하나였고 그 시간들이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었던 것도 맞다. 하지만 이커머스에서 버티던 때는 내가 브랜드사에게 좋은 마케터가 되는 데에도 직접적인 도움이 되지 않았고, 또 내 새로운 방향인 '글을 쓰는 것'에 집중하고 싶다는 목표에도 맞지 않았다.


다시 정리하면 좋아하는 일을 하던 싫어하는 일을 하던 모든 일에는 숙련으로 가기 전까지 버티는 시간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무엇을 선택하든 버티는 시간이 필요하다면 그 여정이 스스로에게 보상일 수 있도록 자기가 좋아하는 일로 버티는 게 낫지 않겠나, 이 일이 내 미래와 연결되는지를 생각해 본다. 물론 오늘의 나를 다치면서까지 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


다음 글에서부터는 만약 버티는 것을 선택했다면 어떻게 버틸지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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