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 그만둬야 할 때라면,
그동안 내가 선택한 길에서 어떻게 버티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 일을 잘하고 싶어서 버티지만 내가 끝내기로 마음먹는다면 언제든 그만둘 수 있다는 것도 누군가는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버텨야 할 때와 그만둬야 할 때를 구분하기’에서, 1) 이 일이 더 이상 내가 그리는 미래에 도움이 되지 않을 때, 2) 내가 다칠 때는 그만둬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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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지킬 용기, 나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나는 일을 하면서 내가 다치는 순간까지도 자꾸 조건을 달았다.
이 회사 3년은 채워야지
이직될 때까지는 버텨야지
커리어만 생각했을 때는, 이력서만 생각했을 때는 맞을지도 모른다. 잦은 이직은 흠이 되다 보니 한 회사를 오래 다닐 수 있으면 좋고, 다음 행선지를 정해놓지 않고 퇴사하는 것은 다음 이직 시에 많은 질문을 남기는 행동이니 이직이 결정된 후 퇴사하는 것도 맞다. 하지만 그렇게 버티는 와중에 내가 다치고 있다면?
나는 커리어보다 더 큰 존재다. 커리어만 생각하느라 내가 다치는 것을 더 이상 묵인하면 안 된다. 이 글을 찾아 읽는 사람은 버티고 또 버티다 더는 어쩔 수 없는 상황까지 온 사람일 텐데, 그런 사람에게 이 이야기를 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드라마 닥터슬럼프에 우울증에 걸린 주인공이 일을 그만두면서 했던 말이기도 하다.
내가 아프면서까지 지켜야 될 건 없습니다.
그만둬야 새로 시작할 힘도 생긴다
P&G에서 일할 때, 회사는 내가 정말 잘하는 사람인지 시험대에 올렸다. 첫 번째 시험대에서 내가 가진 역량을 보여주었고 회사는 한동안 내 쓸모를 의심하지 않았다. 그리고 1년 후 비즈니스 상황이 또다시 좋지 못하자 다시 질문이 돌아왔다. 그제야 나도 단순히 버티는 것이 아니라 이 상황을 객관적으로 평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자리에서 계속 버티는 게 의미가 있을까?
버티려고 한다면 더 버틸 수야 있겠지만 이곳이 나와 맞지 않는 곳임은 이미 알고 있었고, 이미 그렇게 3년을 버텨왔던 터였다. 그동안은 내 미래에 도움이 될 거라는 믿음으로 다칠 때까지 버텨왔는데, 이제 내가 원하는 미래에 더 이상 지금 회사의 경험은 필요가 없었다. 이미 내가 해볼 수 있는 모든 것을 했고, 그냥 내가 잘하는 환경으로 가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스타트업으로 다시 나가서 신나게 일하자.’ 그렇게 깔끔하게 인정이 됐다.
그리고 손에 쥐고 있는 것을 놓아야 새로운 것을 잡을 수도 있었다. 예전에는 버티기도 해야 하고 이직도 해야 하다 보니, 에너지는 고갈되는데 내가 해야 할 과제들은 점점 늘어났다. 그만두겠다고 마음먹고 나자 새로운 것을 쥘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이제는 내게 맞는 환경으로 가는 것에만 집중할 것’
그리고 새옹지마처럼 떠나고 나서 내가 좋아하는 일에 더 다가가고, 회사에서 배운 것들을 글로 쓸 여유도 생기면서 내가 원하는 모습에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안 그만뒀으면 큰일 날 뻔했다, 그날이 아니었어도 곧 그만뒀겠다, 어차피 일이 이렇게 풀렸겠다 생각뿐이다.
이거 그만둬도 너 인생 안 끝나
회사에서 버티고 있다 보면 이 일이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느껴진다.
다른 곳도 비슷할 텐데
이 회사도 못 버티는데 다른 일을 어떻게 할 수 있나
그냥 그만두면 나중에 질문이 들어올 텐데
다른 옵션은 없고 여기서 버티는 것만이 세상의 전부인 것 같아 버티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지금 잠시 멈추는 것은 내 긴 인생에 아무 영향도 없는 작은 결정이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그리고 만약에라도 다음 이직 때 이 작은 결정에 대해 문제 삼는 회사가 있다면? 내게 합당한 이유가 있었고, 더 나은 나를 위해 재정비한 것을 이해 못 한다면? 그런 회사는 나도 가지 않겠다고 그냥 조금은 편하게 생각했으면 한다.
가장 친한 친구가 혹은 내 가족이 이렇게 힘들어한다면
탈출구가 있다는 것을 되새기지만 나 역시도 어떻게든 버티는 것을 먼저 선택하고는 한다. 그리고 내게 주어진 일을 잘 끝내야겠다는 책임감이 가끔은 나를 옥죄고는 한다. 마음이 다칠 때까지 버티다 심리 상담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때 선생님이 이런 질문을 했었다.
“지금 현숙님이 겪는 똑같은 상황을 가장 친한 친구 아니 따님이 겪고 있다면 뭐라고 말해주고 싶나요? 스스로에게 말하듯 버티라고 할 건가요?”
그때 나는 고민할 필요도 없이, 내 가장 친한 친구 혹은 내 딸이 이런 힘든 상황을 털어놓는다면 두 말 없이 그만두라고 하겠다고 대답했었다.
이거 그만둬도 너 인생 안 끝나
이거 그만둬서 좋은 회사 못 가면 어때. 이미 잘하고 있는데
주변 소중한 사람들에게는 버티라는 말을 하지 않는데, 왜 우리는 자신에게만 계속 버티라고 다그치는 걸까? 이제는 그 다그침을 멈추고, 스스로에게 가장 따뜻한 말을 해줘야 한다. 나를 다치면서까지 버텨야 하는 일은 없다. 나 자체만으로 소중하다. 이렇게나 해줄 말이 많은데 왜 우리는 그 말을 우리 스스로에게는 못한 채 가혹한지. 이제 그 말을 내가 나에게 해준다.
미래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본다면,
마지막으로 미래의 내가 되어 지금을 본다. 죽기 직전의 할머니가 되어 지금 순간을 보았을 때 뭐라고 말을 할까? 죽기 직전의 할머니가 되면 커리어골도 의미 없고, 명예, 돈도 다 필요 없고, 그냥 내가 더 행복하게 살 걸 이 후회만 남지 않을까?
왜 그렇게 미련하게 버텼어
그리고 할머니가 아니더라도, 몇 년의 시간만 흘렀을 뿐이지만 지금 와서 과거에 버텼던 나를 돌아봐도 똑같은 말을 하고 있다. 그때 결국 버티지 않고 떠남을 선택했지만 여전히 나는 잘 살고 있다. 인생사 새옹지마처럼 그만두고 더 커리어를 잘 그리고 있고, 이후 내게 더 맞는 일을 찾고 행복하게 지냈던 것을 아는 나는 그때 버티던 내가 안쓰러울 뿐이다.
내가 잘하고 싶은 일이어서 버틴다 하더라도 탈출구는 있다는 것을 잊지 말 것. 내가 선택한 괴로움일 뿐, 언제든 그만둬야 할 때라고 판단되면 내가 떠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언제든 이 괴로움을 끝낼 수 있는 옵션이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있어야 그다음도 그릴 수 있다.